김조광수: <죽어도 해피엔딩>에서 흉기로 돌변한 선반을 양팔로 들어올리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많이 웃더라.
예지원: 원작에도 있는 장면인데 우리가 더 재밌어요.
김조광수: 왜?
예지원: 원작에선 선반장면이 임팩트가 있지 않고 뭉뚱그려가는데 여기선 배우들 각자의 표정도 살고, 웃기는 포인트가 있어요. 지난해 8월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이하 올미다) 찍고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는데 감독님이 강조하는 게 블랙코미디이고 상황극이니까 개인기를 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하시는 거야. 그래, 집중을 해야지 웃기기 위해서 뭘 하면 안 돼, 진심으로 해야지. 다이어트를 해야 해서 예전에 요가하던 때의 물구나무서기를 모처럼 했더니 어깨가 결린 상태였어. 선반을 드는데, 진심이어야 하니까 있는 힘을 다하는데 바로 담이 걸린 거야. 고개가 안 돌아가. 큰일났지. 그날 밤새워 24시간 찍는데 스트레칭하면서 찍고 또 스트레칭하고. 바스트숏으로 찍는데, 이건 정말 진심으로 해야 하는데 괴로워하는 느낌이 스스로도 잘한 것 같아. 모니터로 갔는데 감독님이 연기는 좋은데 이건 너무하지 않냐는 거라. 보니까 얼굴 일그러지고 내가 봐도 너무 흉한 거야.
김조광수: 하하하. 그래도 여배우 캐릭터니까.
예지원: 연기를 떠난 다른 어떤 거더라. 다시 찍었죠. 그날 새벽에 세컷만 찍으면 끝난다는데 아무것도 못 먹고 있으니까 너무 안됐다고 누가 비타민을 줬어. 왜 빈속에 비타민 먹으면 속 뒤집어질 때 있잖아. 담 걸리고 속 뒤집어진 상태에서 나머지를 찍는데 육체적으로 제일 힘들었어.
김조광수: <무릎팍도사> 보면 ‘예지원 4차원’ 이런 식으로 나오잖아. <올미다> 촬영 때 없었던 우리 신입사원이 “예지원, 정말 제대로 4차원이던데요” 하더라. 엉뚱을 넘어 외계인스럽다고 보는 시각이 불만스럽거나 그래?
예지원: 난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 독특하신 분들이 많아서. 더한 분들이 있기 때문에 난 귀엽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재밌나보다 하고 생각하죠. 근데 내가 정말 4차원 같아요?
김조광수: 6∼7년 알아온 사이로서 4차원이나 외계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쁜 의미는 아니고, 정상은 아니지. (웃음) 일반적인 캐릭터가 아니긴 하니까. 영화 캐릭터와 닮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부담은?
예지원: 닮아 보이면 너무 좋지. 배우로서는 그래요. 진짜 배우로 인식해주는 계기가 됐어요. <생활의 발견> 때부터. 내가 30대인데 계속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게 쌓여서 그런 게 아닌가.
김조광수: 웃음이 있으면 절대 안 되는 진지한 역할을 놓고 감독이나 제작자가 예지원이란 배우는 안 맞네 이렇게 될 수도 있잖아?
예지원: 운명인 거지, 운명. 난 그 작품들이 너무 좋아.
김조광수: 성격이 낙관적인 건가.
예지원: 아니, 지금 하는 역할이 좋은 거지. 같이 했던 사람들이 일도 잘하고 연기자를 볼 줄도 알고, 심지어 편안하게 해주기까지 하니까 그 소중함은 대단한 거야.
김조광수: 대중적 인기가 없었어도?
예지원: 대중적 사랑은 오면 좋은 거고. 아니래도 그 이상의 것을 받았기 때문에 뭐. 배우로 인정을 받았으니까. 이걸 놓고 다른 역할 못 맡으면 어쩔까 하는 건 나한테 안 좋은 일이에요. 앞의 세편 때문에 <죽어도 해피엔딩>을 할 수 있었던 거고, 또 <얼렁뚱땅 흥신소>를 하게 됐고.
김조광수: 나는 어떤 면에서 제일 좋은 게 <꼭지> 때의 제주도 섬처녀 예지원이야. 본인은 <뽕>을 포함해 어떤 캐릭터를 제일 좋아해?
예지원: <뽕>은 스물다섯에 찍은 데뷔작인데 그때 맡은 역할이 30살이었어요. 이름이 안협댁이었어. 그런데 서른살쯤에 <귀여워>의 순이 역할을 했는데 순이는 열아홉이었어. 이런 건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나이를 거꾸로 먹으니. <귀여워> 때 19살이라는 걸 인터뷰 때마다 외치고 다녔는데 아무도 신경 안 써, 하하하. 같은 배우들도 신경 안 써, 하하하. 근데 질문이 뭐였지?
김조광수: 본인이 좋아하는 캐릭터. 혹은 나랑 제일 가깝다는 캐릭터.
예지원: 단순한 건 비슷비슷한데 다 나보다 셌어. 역할들이 세서 내가 더 4차원으로 보이겠다 싶어.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내 취향이 그쪽인가봐. 보이는 작품도 그렇고 캐릭터도 그렇고 한국에 없던 작품과 캐릭터. 그래서 특이해 보였겠지.
김조광수: 그런 점에서 미안해. <귀여워>의 순이를 시키고, <올미다>의 미자를 TV에서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영화로 또 한번 보여주게 하고.
예지원: 아냐,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데.
김조광수: 그건 좋지만 예지원을 엉뚱, 4차원, 외계인 이런 걸로 규정….
예지원: 아니에요. 왜냐하면 시대가 원하고 있어요, 그런 캐릭터를. 맡은 역할들이 주인공인데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거죠. 순서로 봐도 끝에서 몇 번째거나 이상한 양념처럼 왔다갔다하는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주인공이고 당당히 사랑도 받고. 시대를 잘 태어난 거죠. 근데 왜 청년필름이에요?
김조광수: 영화제작소 청년이라고 독립영화단체가 먼저였어요. 사회과학서적 중에 <청년이 서야 조국이 선다>라고 유명한 사회과학서적이 있었는데 이상인 감독이 그걸 감명있게 보고 이름을 붙였어요.
예지원: 맞는 말이야. 우리 청년이 살아야 영화가 잘된다, 하하하.
김조광수: 거기서 출발해서 상업영화 회사도 청년으로 하자 했던 거지. 지금은 청년이 아니지만.
예지원: 중년필름이라고 바꿀 수는 없잖아요. 15년 됐나?
김조광수: 아니 청년필름은 10년.
예지원: 대학 때부터 했다며?
김조광수: 영화제작소 청년은 17년. 올해 10주년영화제도 할 거야. 오는 11월이 되면 10편의 장편이 나오더라고.
예지원: 나는 영화 데뷔가 11년째인데 10편. 그럼 우리 같이 할까. 두편이 겹치는데 제일 좋아하는 영화예요. <올미다>는 대중적으로 날 열어준 것도 있고.
김조광수: <죽어도 해피엔딩>은 프랑스영화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를 리메이크한 건데 외국영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것 때문에 부담은 없었어? 여배우랑 비교될 수도 있잖아.
예지원: 캐릭터가 완전히 다른데 뭐. 원작이 좋은 영화이지만 프랑스 정서에 맞는 영화인 것 같고 지금 우리의 대중 코드에 딱 맞는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지금 정서로는 우리 영화가 훨씬 더 잘 맞는 것 같아.
김조광수: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는데.
예지원: 칸이 아니고 깬느. 발음하기 나름인데,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으나 영화에선 굉장히 중요한 영화제죠.
김조광수: 깬느영화제로 여우주연상 받으러 떠나기 전날의 영화배우 예지원 역할이잖아요. 배우 예지원을 연기한다는 게….
예지원: 아니에요. 영화배우와 예지원이라는 건 맞지만 캐릭터는 완전히 달라요. 여기가 좀더 이중적이고. 그래서 무대인사를 할 때 항상 얘기해요. ‘안녕하세요 영화배우 예지원 역의 예지원입니다. 직업과 이름은 같지만 성격은 조금 다르니까 감안해서 봐주세요’라고. (웃음) 연기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철이 없을까 싶어요. 그런 배우가 있긴 있어요. 저랑 친하지는 않고 멀리서 본 적은 있는데 그때는 좋은 모습이 아니었는데 하면서 보니까 귀엽더라고요. 한편 부러운 건 하고 싶은 말을 어쩌면 저렇게 다 하고 살까. 나도 가끔은 그러고 싶거든요. 술도 안 먹은 맨 정신으로. 매니저에게도 요구할 거 하고. 아니 못되게 굴고.
김조광수: 굉장히 이기적이고 맘도 몰라주고.
예지원: 그렇게 되기까지는 매니저 두찬(임원희)도 책임이 있는 게 10년 동안 너무 많이 받아준 거예요. 초반에 교육을 잘못해 철이 없어진 거죠.
김조광수: 보통 매니저와 배우의 관계는 영화와 다른 거야?
예지원: 배우마다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얘기 못하겠어요.
김조광수: 본인하고 비교하면?
예지원: 그렇게 못해요. 나이도 안 어린데 어렵잖아요.
김조광수: 포털에 예지원 검색하면 베드신 동영상 두개가 딱 뜨는데 그러면 기분이 어때?
예지원: 얘기는 들었어요. <생활의 발견> 끝나고 여배우 베드신 모음 종합편이 돌아다녔대요. 많은 여배우들이 했고, 내가 해왔던 일들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김조광수: 다시는 베드신 안 찍을 거야, 이런 생각?
예지원: 다음에 베드신 찍을 때는 몸을 만들고 싶어요. 감독님들이 항상 뚱뚱한 걸 요구해서. ‘팔뚝 보고 너무 놀랐어요’ 이런 댓글도 있었어요. <생활의 발견> 때 팔뚝 보고 나도 너무 놀라서 다시 찍자고 했는데 좋다고 안 된대. 지금까지 찍은 베드신은 누가 뭐래도 좋아요. 그런데 앞으로 찍을 일이 있을까. 말릴 거죠?
김조광수: 글쎄 여배우들이 상처받는 것 때문에. <해피엔드>도 있었고 <귀여워>도 노출신이 있잖아. 영화에 대한 평가가 좋아도 이후 세상 사람들이 여배우를 다른 시선으로 보고, 그것 때문에 상처받는 거보면서 내가 나쁜 짓 했나, 베드신 없는 걸 찍어야 하나 하고 걱정할 때가 있어.
예지원: 저도 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한 거거든요. 나의 모든 것을 다 준다라고 하나. 말이 좀 이상하네. 하고 나서 몇몇 사람들이 심하게 얘기하고 그래서 힘들었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그 선을 넘어선 것 같아요. 매스컴에 노출된 사람들은 베드신을 찍든 안 찍든 칭찬받기도 하고 욕도 먹고, 하지도 않은 게 크게 이슈화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찍든 안 찍든 똑같은 것 같아.
김조광수: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후 검색순위 1위를 했잖아요. 그때 소감은?
예지원: 몰랐는데 내 검색순위가 1000등이었나봐요. 아니 내가 1000배가 올랐어, 하고 놀랐어. <무릎팍도사> 대단해. 파로레 노래는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어요. 너무 많이 불러 주변에서 괴로워하고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도 불렀고 해서 안 하고 다음에 빤짝이 옷 입고 멋있게 부를 거다 그랬는데 강호동 오빠가 안 본 시청자를 위해서 부르라고 해서 한 거지. 반짝이 옷 입고 나갈 것 그랬어.
김조광수: <올미다>의 미자를 해서 그런지 안티는 별로 없는 것 같아. 미자는 대한민국 대표 노처녀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
예지원: 미자 때문인 것 같아요. 자기 모습 같잖아요. 털털하고. 미자는 나이만 30대이지 순정만화에 많이 나오는 캐릭터 같아. 어설프고 굼뜬 것도 있는데 속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일 닥쳤을 때 딱 해결하는 현명함도 있고. 근데 착해서 어느 날 멋진 남자가 프러포즈한다는 게 순정만화 같아. 내가 한 작품 중에 유일하게 로맨스가 있었던 작품입니다. 예쁜 사랑을 한 게 <올미다>가 처음이에요. 그래서 너무 좋았어요. 그전에는 태극기를 사랑한다거나 백화점을 사랑한다거나 뻥뛰기를 사랑하고. 이번에는 네 남자에게 사랑받지만 다이아몬드와 트로피를 사랑하는 여자고.
김조광수: 이틀 뒤에 촬영을 시작하는 드라마 제목이 뭐였더라?
예지원: <얼렁뚱땅 흥신소>.
김조광수: 거기도 4차원?
예지원: 4차원이라기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인데, 보는 사람은 좀 이상하다고 그래요.
김조광수: 우하하하. 4차원이네.
예지원: 하하하. 진지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에요.
김조광수: 만약에 <뽕>을 다시 리메이크한다면 어때? 김태용 감독이 의욕을 보이기에 하자고 했는데 <가족의 탄생>을 먼저 하더라고.
예지원: 굉장히 잘 만들겠는데요.
김조광수: 김태용 감독과 상관없이 <뽕> 리메이크를 한다면 다시 출연할 의지가 있어?
예지원: 글쎄, 옛날에 했는데 내가 또 나가면 사람들이 좋아라 할까. 그만큼 미모가 안 따라주는데. 제가 <뽕> 한 것에 스트레스가 없어요. 하자고 하면 생각해봐야겠지만,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는 건 있어요.
김조광수: 물론이지. 그런데 영화 성격상 노출을 해야 하는데.
예지원: 운동해야지. (웃음) 항상 감독님들 요구가 뭐였냐면, <뽕>만큼 예쁘게 나왔으면 좋겠다였어. 그때는 어리고 젖살도 있을 때였거든. <귀여워>의 김수현 감독님도 그랬고.
김조광수: <올미다> 보면 미자의 똥배가 딱 보이잖아. <생활의 발견>에서는 이따만한 팔뚝이 보이고, 또 <귀여워>할 때는 김수현 감독이 부어서 오면 좋아하고 좀 빠지면 그건 안 된다고 하고. (웃음)
예지원: 혼나고 그랬지. <올미다> 감독님이 지금 보기 좋다고, 빼지 말라고 해서 잘 먹고 잘 지냈지. 무대 인사 80번 하면서 매일 맛있는 거 먹고, 삼시 세끼 먹고 끝나고 또 먹고. 그러다보니 <생활의 발견> 때만큼 찐 거야. 그런 줄도 모르고 적응해서 살았는데 <죽어도 해피엔딩>의 테스트 촬영 때 모두 너무 놀란 거지. 카메라 반갑다고 막 예쁜 포즈 취하고 자연스럽게 했으니까 보여주세요 하고 모니터 앞에 갔는데 아무도 말을 안 해. 정적이야. 다들 공포에 떨어. 설정이 여배우이고 드레스를 입혀야 하는데 찍어보니…. 크랭크인이 2주 반 남았는데 그때부터 열심히 뺐지. 긴장은 다른 식으로 해왔는데 다이어트로 긴장하면서 촬영한 건 아주 오랜만이에요. 드레스가 뼈 튀어나온 것부터 속옷 라인까지 다 보이니까. 오랜만에 몸적으로 긴장하는 걸 찍었어요. 잘 먹지도 못하면서 찍었는데 하여간 내 체력은 알아줘야 해.
김조광수: <죽어도 해피엔딩>의 여배우는 아이큐 50부터 200까지를 왔다갔다한다고 했는데 상황에 따라 아이큐가 급변하는 게 예지원도 그런 건 아닐까 궁금해.
예지원: 뒤섞여 있지. 200이란 건 엄청난 일을 당했을 때 자기도 모르는 슈퍼 힘이 나온다는 것인데, 이 캐릭터는 너무 철이 없는데다가 본인은 우아해지고 싶은데 요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아요. 공부는커녕 책도 안 보는 거야.
김조광수: 초밥 시키는 거 보면 알지.
예지원: 그렇지. 큰 영화상을 받는 건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타고난 배우인 거야. 보니까 과거에 잘나갔어.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전환이 된 거고, 자꾸 주목을 받으니 여배우로서 우아해지고 싶고 지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가급적이면 말을 안 하는 여자인 거야. 데니스가 왜 이 여자를 좋아할까. 그 비하인드를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이유는 영어를 못 알아듣기 때문에 그냥 웃으면서 끄덕끄덕하면서 오케이하니까 데니스에게는 신비의 여인인 거지, 하하하. 남자들이 말 많은 여자 싫어한다며? 최 사장(조희봉) 같은 경우는 돈을 꿔준 것 같아. (웃음)
김조광수: 아하, 그러니까 막 나올 수 있는 거구나.
예지원: 손 한번도 안 잡아봤는데, 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어떤 큰 도움을 받은 거야. 원래부터 빅스타가 아니라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거고, CF도 안 찍는데 어떻게 이런 집에 살아.
김조광수: 복층 빌라를.
예지원: 정말 수상한 여자야. 박 감독(박노식)은 예술영화 한 건데 항상 말이 어눌하잖아. 도대체 무슨 말일까, 하고 현장에서 굉장히 답답했던 거지. 상대역이 정두홍인데 정말 터프하잖아. 외계인 둘과의 작업이었던 거야. 너무 힘들었는데 갑자기 상을 받게 돼서 한편으로 놀라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고. 유 교수(정경호)는 요즘 나오는 가짜 학위처럼 학교와 몇번 연결시켜준 거지. 이렇게 도움을 받은 인물들이어서 함부로 내쫓을 수가 없는 거야.
김조광수: 파시스트를 팥으로 알아들으면서. (웃음) <귀여워> 때, 순이란 캐릭터를 많은 여배우들에게 줬는데 캐릭터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 배우들이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인가 생각하다가 <생활의 발견>을 보고 이 여자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줬는데 100%보다 더 많이 이해를 하는 거지. 이런 배우가 있었던가 싶은 거지. 영화를 못 찍을지도 몰라 했는데, 그 고마움 때문에라도 친해져야겠다 생각했는데 이후 <올미다>도 같이 하면서 편안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뽕>이 아니더라도 다음에 또 하고 싶은. (웃음)
예지원: 뭐든 꼭 같이 해. 그런데 얼마 전 <올미다>의 제작자가 검색순위 톱에 올랐다는 거야. <디 워> 보고 뭐라고 했다고. 어쩐지 그날 목소리가 우울하면서 촉촉했어.
김조광수: 근데 바로 다음날 예지원이 검색 톱에 오른 거야. 깜짝 놀라서 이 친구도 <디 워>를 깠나 했는데 <무릎팍도사>에 나온 직후인 거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화한 거야.
예지원: 전화받고 다음날 위로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집에 들어가서 TV를 켰는데 <100분 토론>에 나온다는 거야. 그래서 봤지. 손석희 아나운서가 오늘 7천건이 들어왔습니다 하고 심각하게 말하는데 뒤에 어른어른 그림자가 보이는 거야. 할 얘기가 얼마나 많을까, 빨리 마이크 줘야 하는데. 그렇게 화면 잘 받고 말씀 잘하시는데 왜 MC 안 시키지.
김조광수: 연기자로서의 한계 같은 건 없었어?
예지원: 한계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줄 거야 했지. 우하하하. 40, 50대 선배들 보면 아~ 하는 발성부터가 다른데 그걸 어떻게 쫓아가. 그냥 노력할 뿐이죠. 좋아하니까 했지 아니었으면 떠날 사람 1번일 거야.
김조광수: 연기가 된다고 느낄 때는 언제?
예지원: 작품마다, 그날그날마다 다 다른데. 예컨대 오늘 컨디션이 너무 좋아, 아까 얘기했던 선반 딱 잡고 진심으로 했어, 그래서 그분이 오셨다 하고 랄라라 했는데 모니터 보니 이게 뭐야 이렇게 되니까. 어떤 때는 찍었는데 뭔가 이상해. 그래서 감독님 한번 더 하죠 하면 지금이 딱 좋습니다 하고 안 찍어죠. 나중에 편집한 거 보면 그게 딱 맞는 거야. 딱 적당한 데서 끊은 거지.
김조광수: 그러니까 감독님이지.
예지원: 감독님을 잘 만나서 맘 놓고 하는 것도 있지만.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잘될 때가 있어. 그러면 이번 작품 끝났어 하하하 했지만 다음날 안 될 때도 있고. 항상 긴장해야 돼.
김조광수: 영화 말고 관심사는?
예지원: 드라마. 하하하.
김조광수: 일 말고는?
예지원: 일 말고? 없어요. 왜냐하면 일이 겹쳐서 들어가니까. 일주일만 쉬면 개울가라도 다녀올 텐데.
김조광수: 그래 우리 뉴욕 가자 해놓고 못 갔잖아. 나는 뮤지컬 제작해보고 싶고, 자기는 출연해보고 싶어서 뮤지컬 보러 가자, 좋은 뮤지컬 만들어보자고 해놓고. 제주도 가자 해놓고 또 못 가고. 그럼 일이 없는 평상시에는 뭐해?
예지원: 쉬고 싶지 않은데 1년 10개월 뜻하지 않게 쉰 적이 있다. 금전적으로도 힘들었는데 다행히 인맥에 의해서, 제 주변에 언니들이 많잖아요. 저렴한 가격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안은미 선생님의 무용, 나중에 돈 드릴게요 하고 공짜. (웃음)
김조광수: 노래도, 불어도.
예지원: 불어도 아는 언니가 차비도 안 나오는 돈 받고 일주일에 두 시간 이상씩 해줬어.
김조광수: 불어는 왜?
예지원: 그냥 좋아서. 누구나 그냥 좋아하는 게 있지 않나. 그게 나에게는 샹송이었고, 프랑스영화, 프랑스 배우였던 거지. 옛날에 줄리엣 비노쉬를 정말 좋아했어. 얼굴은 백설공주를 닮았지만 다리는 약간 닭다리잖아. S라인 몸매가 아닌데 아주 자신있게 미니스커트 입고 수영복 입고 하는 데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어요. 연기를 잘하니까. 정말 좋은 배우다 싶었지. 그 배우 나오는 영화를 다 보고 그러다보니 나중에 웃는 연기가 안 되는 거야.
김조광수: 왜?
예지원: 줄리엣 비노쉬 같은 표정을 짓느라. 연기 초짜인데 그 신비한 표정 흉내내느라.
김조광수: 우하하하. 알 것 같아.
예지원: 오래전이지. 프랑스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서 마구 볼 때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도 봤어. 영화 보고 나서 뭐라고 쓴다거나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글쎄요 말고는 할 말이 없을 때인데도 호기심이 넘쳐날 때였어.
김조광수: 돈 많이 벌면 뭐하고 싶어. 어떤 작품을 제작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 해?
예지원: 제작할 능력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연기를 안 한다면 할 수 있을지 몰라.
김조광수: 예전에 박정자 선생님이 <내 사랑 히로시마>를 제작하고 연기하면서 토크쇼에서 제작까지 하는 이유를 물으니까 내가 제작하지 않으면 누가 나한테 이 역할을 시켜주겠어요, 내 얼굴에 남자 이렇게 써 있는데 이러시는 거야. 내가 해보고 싶은 어떤 게 있는데 그걸 가장 잘하기 위해서 제작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아.
예지원: 아하, 아까 걱정해주던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을 때 돈 벌어서 제작하면 되겠네.
김조광수: 나는 돈 많이 벌면 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학교도 짓고 싶고 <메종 드 히미코>처럼 게이를 위한 어떤 안식처를 만들고 싶기도 한데, 한편으론 영화는 좀 어렵고 연극을 제작하고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은 좀 들어.
예지원: 하세요.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데. 그보다 <오프라 윈프리 쇼> 같은 프로그램의 MC를 해보세요. 케이블부터 시작하세요.
김조광수: 하하, 안 불러준단 말이야.
예지원: 진짜? 출연 섭외 많지 않아요? 웬만한 연예인 MC보다 훨씬 잘하는데다가 플러스 공부를 많이 해서 해박하고, 10대 20대와도 대화가 되고. 영화 제작보다 돈 훨씬 많이 벌 거예요.
김조광수: 너무 띄워주는데. 아까 트렌드가 바뀌어서, 세상이 달라져서 나의 캐릭터를 알아주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건 왜 그럴까. 혹은 요즘 사람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 걸까.
예지원: 지금 시대 사람들은 솔직한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영화 데뷔한 지 11년인데 많은 게 변했어. 특히 20대 때 생각했던 30대하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변했다는 걸 겪고 있어요. 대중이 굉장히 영리해졌어. 컴퓨터 때문인 것 같고, 그래서 컴퓨터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댓글 올리는 걸 보면 너무 똑똑해.
김조광수: 컴퓨터 안 한다며 어떻게 댓글을 봐?
예지원: 들으니까. 끊임없이.
김조광수: 예전에는 배우를 선망의 대상으로만 봤다면 이제는 자기를 투영해서 나 같은, 내 모습 같은 캐릭터를 원하는 것도 같아.
예지원: 그러면서 나보다 조금 모자란 듯한 인물을 좋아하는 것 같아.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이 만화에서 톡톡 뛰어나온 듯한, 그리스 신화에 나올 법한 거의 신격화된 외모와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이 많다보니 식상할 때도 됐지. 솔직한 캐릭터도 너무 과잉이다 보면 다시 그리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게 또 나오겠죠. 내가 이 시대를 만난 것, 그리고 그 감독님들을 만난 건 대단한 행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