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슨네 가족들>의 팬이다. “그래서 뭐?”라고 묻는다면 나는 한국에서 <심슨네 가족들>을 방영하기 전 90년대 중반부터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AFKN>에서 <The Simpsons>를 매주 즐겨보는 팬이었다, 라고 하면 뻥이고, 어쨌든 <심슨네 가족들>을 한국에서 정식 방영하기 전부터 좋아했던 건 사실이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 어쨌든 잘난 척하는 아니냐?”라고 묻는다면 잘난 척 맞다. 내가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물건 앞에서는 잘난 척을 해서라도 뭔가 내 순정의 오리지널리티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나. 내게는 <심슨네 가족들>이 그렇다.
언제 이 시리즈를 처음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발견이었다. 지금이야 자기반영적 유머의 한 경지를 개척한 <무한도전>도 있고, 막 나가는 찌질이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도 넘쳐나지만 십여년 전만 해도 <심슨네 가족들>의 비꼬는 유머와 거침없는 찌질성은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신선하게 보였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너무나 잘 활용한 귀여움까지 완벽한 삼위일체였다. 한때는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심슨네 가족들>의 대본작가가 됐을 텐데’라는 애석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나의 조크를 수백번 반복해 보고 124번째 되니 지겹다 싶으면 과감히 버린다’는 작가들의 회의 풍경을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하여 <심슨가족, 더 무비>는 당연히 올해 최고 기대작이었다. 반즈 사장과 스미더스 이하 십여명의 캐릭터 목소리를 연기하는 해리 시어러의 증언대로 폭스 간부진이 자체 검열을 할 기회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빠르게 성공해서 자리잡았다는 이 시리즈가 기민하고 영악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세계에서 10년 이상 영화화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좋았지만 그래서 17년 만에 영화화되는 게 더 극적으로 느껴졌다 (본래 좋으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거다).
개봉 첫날, 뭉게구름이 퍼져나가며 <더 심슨~스> 노래가 나오는 인트로를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볼 때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조차 했다. 이런 10분이나 벌써 지나갔잖아, 70분 밖에 안 남았군, 과자를 먹으면서 그 과자가 없어지는 걸 아까워하는 아이처럼 아까운 80여분을 극장 안에 앉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전체적인 총평을 하자면 <심슨가족, 더 무비>는 시리즈의 딱 평균적인 수준의 작품이었다.
‘다다다다’라는 허밍을 프롬프터를 보면서 노래하는 그린데이나 정부의 정책 홍보자로 등장해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식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톰 행크스, 서류 뭉치를 보고서 나는 리드(lead)하려고 대통령질을 하는 거지, 리드(read)하려고 여기 앉아 있는 게 아니다라고 발칵하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까지, 카메오들의 등장은 즐거웠지만 자기 반영적 유머의 강도가 셌던 것도 아니고, 주요 대박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반즈 사장이 그 못된 소가지와 처참하게 허약한 체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한 건 가장 큰 유감이었다. 회사에서 일은 안 하고 도넛만 처먹으며 시간을 죽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모우 술집에 처박혀 시간을 죽이는 호머의 그 한심한 일상을 더 디테일하게 보여주지 못한 것도 아쉽고, 알뜰한 주부이자 자상한 엄마인 마지의 그 수많은 빈틈- 파티에 가서 술에 전다든가, 옛날 동창을 만나 바람기에 흔들린다든가- 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아쉽고, 골초에 수염과 다리털 많은 바트의 쌍둥이 이모가 등장하지 않은 건 특히나 아쉬웠다.
그래서 실망스러웠냐면 전혀 아니다. 사실 바트의 친구가 이십세기 폭스사 로고가 나오는 장면에 등장해 그 로고 음악을 열심히 따라 부를 때부터 완전히 녹았다. 반즈 사장은 칫솔에 묻은 치약의 무게로 쓰러질 때 이미 할 만큼 했고, 마지는 알래스카에서의 그 분홍색 속옷만으로 숨겨진 ‘야성’을 보여주지 않았나. 10년 가깝게 <심슨네 가족들>을 좋아해온 지지자들에게 이번 영화는 ‘반갑다, 친구야’ 같은 느낌의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왜 텔레비전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걸 극장에서 돈 주고 보냐, 이 바보들아”라고 나를 손가락질하는 호머를 향해 팝콘을 던지며 “우우~” 킥킥거리고 야유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툭툭 치고 설탕 묻은 끈적한 손을 문대며(D’oh!) 반갑게 악수를 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