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의 길고 꾸준한 여정이 일단락됐다. 3월29일부터 8월14일까지 극장 개봉을 완료한 시점. 개봉관에서 3만8129명, 공동체 상영을 통해 3만7천명가량, 여지껏 총 7만5천명 정도가 ‘혹가이도조선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극장 개봉 다큐멘터리로 <비상>이 세웠던 3만9492명의 관객 동원 기록을 두배 가까이 경신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학교>가 남긴 것은 객관적인 수치가 아니라, 재일 조선학교 친구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의 내용만큼이나 친근한 발걸음이다. 그것은 20∼30명이 모인 작은 공동체까지 직접 찾아나선 지역 상영이 350회 가까이 이어진 결과물이다.
3월31일 충북 국어교사모임 130명, 5월23일 울산 여성의 전화 14명, 6월11일 양심수 후원회 30명, 6월23일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OB모임 39명, 7월14일 영도 해동중학교 19명, 8월13일 화계사 50명….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배급팀의 ‘<우리학교> 전국공동체상영현황’ 파일에는 8명부터 800명까지, <우리학교>를 함께 관람한 관객 수와 상영주최 및 장소의 명단이 빼곡하다. 서울·경기, 인천, 강원, 경북, 경남, 마산·창원·진해, 울산, 전남, 광주, 충남, 대전, 충북·청주, 전북·전주, 부산 등 전국 13곳, 호주, 미국, 캐나다 등 해외 3곳에서 발족된 ‘<우리학교> 전국공동체상영위원회’의 촘촘한 네트워크 덕분이다. 2004년 개봉 당시 180여 군데 공동체 상영을 성사시켰던 <송환>과 <우리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제 역할 톡톡히 한 지역별 상영위원회
경북지역 23개 시·군의 전교조 지회를 통해 <송환> 상영을 진행했고,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지역 공동체 상영을 진행한 전교조 경북지부 총무국장 이용우 선생님은 “올해 초 전교조 참교육 실천대회 때 미리 영화를 본 선생님들의 제안이 있었고 결국 경북지역 공동체 상영을 우리가 맡기로 결의했다. 울릉도 안에서만 200명이 <우리학교>를 관람할 정도였다”고 말한다. 그간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등의 지역 상영회를 진행했던 한독협 배급팀의 권현준씨에 따르면 “느슨하게 존재하는 네트워크 안에서 영화 테이프 수급부터 상영료 정산까지 한독협이 직접 챙겨야 하는 일반적인 순회 상영회와 달리, 지역마다 상영위원회가 존재하는 <우리학교>는 애초에 필요한 테이프와 포스터, O.S.T 등을 권역별로 보내주면, 지역별 위원회가 모든 것을 알아서 진행한다.” 지역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역별 상영위원회가 없었다면, 서울·경기 지역 안에서 많으면 하루에 6회까지 이뤄질 정도로 성황을 이루진 못했을 것이다. 고영재 PD는 이후 “<우리학교>가 직접적인 사례가 되어 영진위의 공동체 상영 지원계획이 실제화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극장이 적은 지방 상영회에 우선적으로 참여한다는 원칙을 세웠음에도, 숱한 관객과의 대화를 모두 진행할 수 없어 PD와 조연출까지 나서서 각각 다른 상영회를 찾아야 할 정도로 바빴던 몇 개월이 지났다. 현재 일본 내 공동체 상영을 위한 ‘투어’를 앞두고 있는 김명준 감독은 “내가 한국에서 가장 행복한 감독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절대적인 관객 수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점에 감사한다”는 그는 “영화 상영 전에 영화 속 노래 배우기와 같은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관객과 대화할 수 있으며, 이후 관객과 뒤풀이까지 가능하다는 점” 등을 공동체 상영의 장점으로 꼽는다. 전국 방방곡곡의 남녀노소 관객을 직접 만나 듣는 생생한 반응은, 특정 이슈에 관해 좀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다큐멘터리 감독에게는 더없는 기쁨이었다.
정확한 목표관객 설정과 배급전략의 결과
일상적인 공동체 상영이 극장 관객을 흡수하는 건 아닐까, 하는 성급한 우려는 금물이다. 전국 14개관에서 개봉한 이래 4달 반 동안 단 6일을 제외하면 전국의 어떤 극장에서든 한 곳 이상에서 <우리학교>가 상영됐다. 개봉 2, 3주차가 지나면서 늘어난 관객 수는 5월 중순까지 유지됐다. 지난 7월5일부터 하이퍼텍 나다에서 이뤄졌던 앙코르 상영회는 주말마다 200, 300명이 찾을 정도로 이례적인 장기흥행을 누렸다. 일반적으로 아트플러스 체인에서 개봉하는 영화에 비해 지방의 극장 관객 비율도 높은 편이었다. <송환>과 함께 <우리학교>까지 극장 배급한 영화사 진진의 김난숙 대표는 “공동체 상영과 극장 개봉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냈던 것 같다. 비극장 상영으로 확대된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관객이 또다시 대도시 거점지역의 아트플러스 체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김난숙 대표는 9월쯤 예정된 <우리학교> 전국공동체상영위원회의 결산 워크숍에도 참가할 생각이다. “예술영화관의 관객 개발 차원에서도 분명히 함께할 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학교>는 독립다큐멘터리에도 일반 상업영화 못잖은 깐깐한 타깃 설정과 이에 따른 배급전략이 필요함을 보여준 사례였다. “현재의 산업구조 안에서 극장 상영에만 의존해서는 독립영화가 좀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극장에서 내려져도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저인망식’ 상영 방식을 고민했다”는 고영재 PD는 편집단계부터 김명준 감독과 영화와 관계된 주된 키워드를 ‘교육’으로 상정했다. 통일운동을 비롯한 각종 사회운동 단체보다는 교육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해 개봉 몇달 전부터 영화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시사회도 수차례 가지면서 입소문을 노렸고, 이는 적중했다. “아무리 공동체 상영이라 해도 무턱대고 시민사회단체에 상영하자고 권유해선 안 된다. 일종의 마케팅 전략을 가지고 지역 관객을 만나야 한다”는 고영재 PD는 현재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제)는 농촌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이 영화의 마케팅·배급은 농민을 주된 타깃으로 삼을 것이다. 이 밖에 공동체 상영도 유료관람(성인 5천원)이라는 원칙을 전국적으로 일반화하고, 제작자와 상영단체가 관람료를 6:4로 꼼꼼히 배분하여 독립영화의 제작시스템 안정화에 기여한 점 등은 <우리학교>의 또 다른 성과다.
<우리학교>의 경험을 활용하라
<우리학교>를 통해 지역상영 네트워크를 다진 독립영상미디어센터 진주의 김설해씨는 “군 단위의 농촌까지 그간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관객을 만났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지금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독립영화의 지역 상영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독협 배급팀의 권현준씨는 “<우리학교>는 콘텐츠의 힘이 워낙 강했다. 또 다른 영화의 공동체 상영이 이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라고 털어놓는다. 지역 상영회마다 용이한 배급을 위한 기자재 확충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많은 교훈을 얻은 만큼 이를 이어가기 위한 행복한 고민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했던 것을 이뤄낸 경험이다. 구체적인 고민과 실천이 이뤄진다면 ‘제2의 <우리학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조금은 다른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학교> 관계자들이 말하는 “<우리학교>가 남긴 것”
“공동체 상영 관객 5만명, 극장 관객 5만명을 맥시멈으로 잡았는데, 이 정도면 근접한 셈이다. 아무리 1인 제작 시스템이 일반화된 독립다큐멘터리라도 계속적으로 나서서 ‘이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알리면서 공동체 상영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PD의 역할은 중요하다. <우리학교>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독립다큐 전문 PD의 필요성을 알게 된 것 같다.” -고영재 PD
“상경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서울·경기지역 공동체 상영 실무를 진행하면서 지리를 익혔다. (웃음) 여전히 상영활동가의 역량, 네트워크를 비롯해서 기자재 시스템까지 좀더 강화해야 할 것들이 많다. 지난해부터 공동체 상영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어 요즘은 두세달에 한번씩 활동가 기획회의를 진행하고 1년에 두번 정도 워크숍과 토론회도 연다. 공동체 상영을 위한 좀더 구체적인 고민과 계획이 이뤄질 것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팀 권현준씨
“재외동포 문제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평소 영화는 별로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우리학교>를 통해 하이퍼텍 나다 같은 아트플러스 극장을 알게 되고, 영화보는 습관이 바뀌기도 한다. 아무래도 사회를 좀더 넓고 깊게 보려는 사람들이 독립영화를 보게 마련 아닌가. <우리학교>를 재밌게 본 사람은 <다섯은 너무 많아> 같은 독립장편영화도 재밌어할 것 같다. 결국 <우리학교>의 관객층은 예술영화 전용관이 개발하려는 관객층과 다르지 않다.” -영화사 진진 김난숙 대표
“꼬마부터 아저씨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만나면서 굉장히 행복했다. 어른들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심한 반공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이야기한다. 나중에 조선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든가, 그곳 아이들이 부럽다든가. 10년, 20년이 지나 이 아이들이 자라면 조금은 다른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명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