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6일, 애덤 샌들러가 주연한 두편의 영화가 개봉한다. 비행기 사고로 가족을 잃고 고통받는 남자에 대한 드라마 <레인 오버 미>와 이성애자지만 그럴 만한 사연으로 게이 결혼식까지 올리는 남남커플에 관한 동성애 코미디 <척 앤 래리>다. 주연배우가 같은 영화 두편이 하루에 개봉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 애덤 샌들러의 전혀 다른 두 모습 외에도 닮은 듯 다른 두 영화를 비교한다.
<레인 오버 미>와 <척 앤 래리>의 애덤 샌들러
<레인 오버 미>
<레인 오버 미>의 애덤 샌들러는 낯설다. 9·11 테러로 가족을 잃은 찰리 파인맨을 연기한 샌들러는, 말쑥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덥수룩한 머리, 분명하지 않게 웅얼거리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코미디로 경력을 시작한 그이지만 짐 캐리가 <트루먼 쇼>와 <이터널 선샤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듯, 스크린 속 진지한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다소 폭력적이지만 순도 100%의 사랑에 빠지는 베리 이건으로 정극 연기자로서 손색이 없음을 인정받은 샌들러는 <레인 오버 미>에서 상처입고 무너진 남자의 단절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변신에 성공했다.
<척 앤 래리>
<척 앤 래리>의 애덤 샌들러는 친숙하다. 두상이 드러나도록 깎은 머리, 편안한 차림에 유들유들한 말투까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이다. 브루클린의 소방관 척은 자타가 공인하는 ‘섹스광’이지만, 화낼 줄 모르는 순한 남자로 나온 <성질 죽이기>, 초인의 인내심으로 결혼에 골인하는 <첫키스만 50번째>, 인생을 컨트롤하는 리모컨에 중독되지만 결국 허탈함으로 마무리하는 <클릭> 등 이전까지 그가 보여준 평범한 남자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개봉작마다 흥행시키는 샌들러의 저력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애드리브 외에도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기대는 바가 크다.
감독
<레인 오버 미>의 마이크 바인더 감독
올리버 스톤, 폴 그린그래스에 이어 세계를 경악하게 한 비행기 사고를 다뤄보겠다고 결심한 디트로이트 출신의 감독 마이크 바인더는 “뉴요커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시각으로 사건에 다가갈 수 있었다. 2001년 9월11일 뉴욕에 머물다 사고현장을 생중계하는 <ABC> 뉴스 카메라의 전파를 탄 경험을 한 바인더는 <레인 오버 미>를 “커뮤니케이션이 가지는 치유의 힘”으로 정의한다. <업사이드 오브 앵거> <맨 어바웃 타운> 등의 전작에서 직접 각본을 쓰고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한 그는 이번에도 찰리 파인먼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브라이언 슈거맨으로 스크린에 등장한다.
<척 앤 래리>의 데니스 듀간
“내 영화의 관객은 메시지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한바탕 웃고 가기를 원할 뿐이다.” <웨딩 크래셔>의 데이비드 돕킨을 대신해 <척 앤 래리>의 메가폰을 잡은 데니스 듀간은 코미디에 대한 분명한 연출 철학을 가졌다. 롭 슈나이더, 제이슨 빅스 등 코미디 배우와의 작업을 즐기는 듀간은 애덤 샌들러와 <해피 길모어> <빅 대디>에서부터 인연을 이어왔다.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자주 등장하는 듀간은 결혼식을 올리러 캐나다로 간 척과 래리에게 게이라는 말 대신 “F”로 시작하는 단어로 불편함을 표시했다가 린치를 당하는 택시기사로 모습을 비췄고, <벤치워머스>에서 호흡을 맞춘 롭 슈나이더도 인상적인 단역으로 출연한다.
빛나는 조연
<레인 오버 미>의 새프론 버로즈
<레인 오버 미>에서 눈에 띄는 조연은 이름도 생소한 새프론 버로즈다. 돈 치들, 제이다 핀켓 스미스, 리브 타일러를 제치고 눈길을 끄는 이 여배우는 <레인 오버 미>에서 치과의사에게 오럴섹스를 해주겠다고 덤비는 수상한 이혼녀 도나를 연기했다. 40편이 넘는 필모그래피에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버로즈는 <트로이>에서 헥토르의 왕자비로 출연해 남편을 잃은 슬픔을 침묵으로 연기한 바 있다.
<척 앤 래리>의 케빈 제임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순정파 소방관으로, 척에게 게이 결혼식을 제안하는 래리를 연기한 케빈 제임스는 영화보다는 TV시리즈를 통해서 얼굴을 알렸으며,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 <킹 오브 퀸스>의 제작 지휘도 맡아 카메라의 앞과 뒤가 모두 친숙한 배우 중 한명이다. 지난해 개봉한 두편의 애니메이션 <신나는 동물농장>과 <몬스터 하우스>에 목소리를 빌려주기도 했다.
영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캐릭터, 음악
<레인 오버 미>
<레인 오버 미>는 더 후의 <러브, 레인 오어 미>에서 태어난 제목이다. 어둑한 뉴욕의 밤이 새벽을 맞을 때 “나는 단순한 사람, 단순한 노래를 부르네…”로 시작하는 그레이엄 내시의 <심플 맨>이 관객을 안내하고 잭슨 브라운,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70, 80년대에 활동한 밴드의 음악이 영화의 안과 밖을 잇는다. <어바웃 슈미트> <퀸카로 살아남는 법> <사이드웨이>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음악을 입혀온 롤프 켄트가 음악을 담당했다.
<척 앤 래리>
에이즈 기금모금을 위한 파티 장면에서 아바의 <댄싱퀸>이 흘러나온다. 예리한 사람이라면 영화에서 들리는 음악의 대부분이 퀴어 아티스트의 것이며, 커밍아웃한 셀러브리티들이 카메오로 출연했음을 눈치챌 듯. 괴팍한 시청 조사관의 의심을 받은 척과 래리가 동성애자임을 위증하러 가는 길에는 프레디 머큐리와 데이비드 보위가 함께 작곡한 <언더 프레셔>로 예외없이 분위기를 달군다. 음악감독은 <헷지>와 <클릭>의 루퍼트 그렉슨 윌리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