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해롤드 크릭(윌 패럴)의 삶은 오직 ‘숫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지난 12년간 그는 정확히 11시13분에 잠자리에 들고, 좌우상하 38번씩 76번 칫솔질을 하며,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의 여섯 블록을 57걸음씩 걸어 8시17분에 버스를 타고 직장에 갔다. 이런 해롤드에게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자신의 행동을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서술하는 여자/작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숫자의 세계에 드디어 문자(문학)가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보다 더 이상한’ 현상에 어리둥절해진 해롤드는 결국 영문과 교수 힐버트(더스틴 호프먼)에게 상담을 구하고, 이들은 이 이상한 상황이 한편의 소설은 아닌지 의문을 품으며 작가를 찾아내려 한다.
관객은 처음부터 해롤드의 행동(과 그를 서술하는 목소리)을 따라가기 때문에 해롤드의 어리둥절한 심경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영화 또한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이므로 영화에 해설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일은 자주 있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영화 속 주인공이 듣는 일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왜냐면 이 영화의 이야기는 사실 한편의 소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는 해롤드 크릭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아마도 <죽음과 세금>(Death and Tax))을 쓰고 있는 작가 캐런 아이플(에마 톰슨)이 자신까지도 소설에 등장시키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기법, 즉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 메타픽션(metafiction)― 을 영화화한 것이다. 그 점에서 영화는 존 바스나 커트 보네거트의 포스트모던 소설과, 찰리 카우프만의 시나리오들(<어댑테이션>)과 같은 계열에 놓여 있다.
이 영화의 긴장관계는 바로 메타픽션 기법에서 나온 것이다. 주인공인 해롤드 크릭, 아이플, 힐버트는 각각 등장인물, 작가, 비평가의 역할을 맡고 있다. 해롤드를 죽임으로써 걸작을 쓸 수 있는 작가 아이플(“해롤드 크릭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모르겠어”)과 자신의 죽음을 막고 싶어하는 주인공 해롤드(“저는 지금 죽을 수 없어요”)와 영원히 남을 걸작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교수 힐버트(“자네가 죽지 않으면 이 작품은 걸작이 되지 못해”)의 삼각구조야말로 이 영화에 긴장과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한때 ‘누보 로망’이었으나 이제는 더이상 특별할 것 없는 메타픽션 기법이 이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이 영화의 감동은 서술기법이 아니라 그 아래에 깔린 ‘이야기’가 주는 힘에서 나온다. 숫자밖에 몰랐던 해롤드가 자신과 정반대인 급진적 제빵사 안나 파스칼(매기 질렌홀)을 사랑하게 되면서 겪는 변모는 직선의 유클리드(초기의 해롤드, 그의 행동에 따라다니는 직선들!)가 불규칙한 프랙탈(후기의 해롤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운명)로 변하는 것과도 같다. 영혼이 없는 것 같은 해롤드의 이런 변모는 작가인 아이플,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에게 그의 예정된 죽음을 슬퍼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오직 비평가인 힐버트만이 냉정하다). 그리고, 예정된 죽음. 무미건조했던 해롤드가 처음으로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되지만 이어 순간적으로 죽음이 닥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음을 받아들이며 위대한 이야기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거부할 것인가? 브레히트의 <조처>를 연상케 하는 이 곤란한 질문 앞에서 해롤드는 자신의 삶을 감동적인 이야기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이 선택의 과정이 주는 실존적 고통(해롤드), 문학적 난제(아이플), 담담한 순종(힐버트)이 교차편집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의 마지막 20분은 대단하다.
이상한 목소리의 출현에서 시작해서 존재와 문학의 문제로 연결되는 이 영화는 영화적 재미와 철학적, 문학적 질문들을 영리하게 섞어놓는다. 포스트모던 소설들이나 <어댑테이션>처럼 난해하거나 기발하기만 한 것을 넘어서, 이 영화를 ‘감동’으로 느끼게 만드는 영리함은 바로 일상과 그 사소함이 만드는 엄청난 힘에 대한 믿음에 있다. 시계, 쿠키, 사과, 담배, 커피, 기타, 밀가루, 자전거와 버스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상호연관성’(interconnectivity)을 보라. 그 작은 일상의 물건들이 사랑을 연결시키고, 하버드 법대생을 제빵사로 만들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주며, 인물을 죽음으로 이끌고, 끝내는 살리기도 한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에서 시작하여 타자기의 마침표로 끝나는 이 영화의 첫장면과 끝장면은 바로 이 사소함과 거대함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이미지다. 물론 그 사이에는 우리 하나하나의 일상이 있다. 이 영화는 말한다. 그 어떤 일상도, 사소하게 여기면 안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