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제인 오스틴은 어떻게 연애했을까
2007-10-02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상상으로 재현한 제인 오스틴의 연애담 <비커밍 제인> 뉴욕 시사기

제인 오스틴은 수없이 많은 독자들에게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엠마> 등 소중한 작품을 선사해주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으며, 가장 최근 2005년작 <오만과 편견>에 이르기까지 TV시리즈와 영화 등으로도 수차례 소개됐다. 미국에서는 곧 오스틴의 작품에서 용기를 얻게 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제인 오스틴 북 클럽>도 개봉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작 작가 제인 오스틴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근래 출판된 존 스펜스의 전기 <비커밍 제인 오스틴>을 바탕으로 한 줄리언 재럴드 감독의 <비커밍 제인>은 41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미혼으로 작품활동을 했던 제인 오스틴에게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가정한 영화다.

제인 오스틴의 개인사는 대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그녀의 언니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카산드라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가 살아남았고, 편지들에는 오스틴이 스무살 즈음에 만난 아일랜드 출신 법대생 톰 리프로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카산드라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오스틴은 리프로이에 대해 “매우 신사답고, 잘생겼으며, 유쾌한 젊은 남자”(1796년 1월)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리프로이의 친척이 개최한 크리스마스 무도회에서 이들은 세번이나 함께 춤을 췄다고 한다. 당시에는 같은 파트너와 두번만 춤을 추는 것이 관례로, 두번 이상 춤을 출 경우에는 거의 결혼한 사이나 마찬가지로 간주했다. 물론 제인 오스틴은 스캔들이나 관례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분명히 리프로이에게 호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스틴의 편지에는 리프로이에 대한 내용이 몇 차례 더 지속되었으나 리프로이는 결국 1799년에 아일랜드계의 부유한 집안 딸과 결혼했다. <비커밍 제인>은 제인 오스틴과 톰 리프로이의 첫 만남에서부터 그의 결혼까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만약 이랬다면’(what if)이라는 가정으로 채워넣는다. 물론 모든 것은 가능성있는 추측들이지만 출연하는 인물이나 설정들이 남겨진 기록에 충실한 사실인 덕에 꽤 설득력이 있다. 이미 10대 초반부터 창작활동을 해온 제인 오스틴(앤 해서웨이)은 결혼 적령기를 맞은 20살 여인이다. 가난한 목사집안의 딸인 그녀에게 어머니(줄리 월터스)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녀는 결혼에는 관심이 없지만 자신이 쓴 소설로 경제적인 독립을 하기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당신 역시 시를 집필했던 어머니는 그들의 시대에 글로써 여자가 생계를 유지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제인을 부유한 레이디 거레샴(매기 스미스)의 조카 미스터 위슬리와 짝지어주려 하지만, 제인에게 사랑없는 결혼이란 불가능한 행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런던에서 법대를 다니다 연말을 맞아 친척을 방문한 톰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를 만나게 된다. 가난한 아일랜드 가정 출신인 톰은 부유한 법조계 친척에게 신세를 지며 법학을 공부하던 처지. 그래서 시간이 나면 맨손 권투나 과음 등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거칠고 무례해 보이기 까지 하는 톰이 제인에게 그리 곱게 보이지 않는다. 마치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던 이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결혼을 재촉받는 제인은 솔직하고 동등하게 자신을 대해주는 톰에게 점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물론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관객 역시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비커밍 제인>은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를 실제 인물로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작품이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캐스팅이다. 영화 <킨키부츠>와 영국 미니시리즈 <화이트 티스> 등을 연출한 재럴드 감독은,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 시리즈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미운 오리가 백조로 바뀌는 ‘메이크오버’식 캐릭터를 많이 연기한 앤 해서웨이와 아직 미국에서는 무명이나 영화 <라스트 킹> 등에 출연한 연기파 영국 배우 맥어보이를 각각 제인과 톰 역에 캐스팅하는 모험을 벌였다. 결과는 썩 괜찮은 편으로, 특히 앤 해서웨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초상화로만 알려진 제인 오스틴의 모습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외에도 줄리 월터스, 매기 스미스, 제임스 크롬웰 등 베테랑 배우들이 탄탄한 연기를 선보인다.

지난 8월3일 미국에서 개봉된 이 작품은 1731만달러가량의 수익을 올렸고, 일부 평론가들은 오스틴의 소설과 동명 영화로 제작된 작품 <오만과 편견>과 너무 유사하다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의 팬들은 그런 혹평에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설득> <이성과 감성> <엠마> <오만과 편견> <노생거 사원> <맨스필드파크> 등 오스틴의 걸작들에 영감을 끼쳤을지도 모르는 일생일대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커밍 제인>은 제인 오스틴의 팬들에게 놓치기 힘든 선택이 될 것이다.

주연 앤 해서웨이 인터뷰

“미국인이지만 오스틴 팬들을 실망시키진 않을 것”

-흥행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후 <비커밍 제인>은 후속작으로는 의외다.
=촬영은 <악마는…> 이후에 시작했지만, 출연 결정은 이전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오스틴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 내용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오스틴의 열렬한 팬(고교 시절 오스틴의 작품에 대해 논문을 쓰기도 했다고)이고, 시대극을 무척 좋아한다.

-오스틴 팬들의 반응은 어땠나.
=무척 놀라워했다. 특히 <브로크백 마운틴>이 개봉하기 전이라 나는 그저 <프린세스 다이어리>에 나온 여자애로만 알려졌었다. 거기다 더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미국인이라 많은 사람들이 캐스팅에 놀랐다는 것. 오스틴의 팬들은 자신들만의 ‘제인 오스틴’에 대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작업에 임했다. 바람이 있다면, 이들이 영화를 보고 생각을 바꿀 수 있었으면 한다.

-<비커밍 제인>을 작업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미국 배우가 영국인, 그것도 아이콘으로 꼽히는 제인 오스틴을 연기하는 데 앞서 내 자신이 가진 감정을 극복하는 거였다. 거짓되거나 과장된 연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오스틴에 대한 상당히 많은 리서치를 했고, 악센트도 촬영 1개월 전부터 하루 6시간씩 코치와 함께 연습했다.

-제인 오스틴에 대한 어떤 리서치를 했나.
=배역을 맡은 뒤 오스틴의 소설을 다시 읽었고, 전기, 편지 등 오스틴에 대한 모든 자료들을 찾아 읽었다. 나중에는 줄리언(감독)이 내 손에서 책을 뺏을 정도였다. (웃음) 작품 중에는 오스틴이 원고를 쓰는 장면이 많았는데, 잉크 색깔에서부터 필체까지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소품 담당부서와 신경전을 많이 벌이기도 했다. (웃음)

-톰 리프로이 역을 맡은 제임스 맥어보이와는 호흡이 잘 맞았는지.
=호흡이 맞고 안 맞는 것은 제조할 수 없는 것 같다. 촬영 중에 연기력과 촬영에 임하는 태도 등 때문에 제임스에게 상당히 감명을 받았다. 서로 테이크 중간중간에 캐릭터에 대해서나 특정 장면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눠 큰 도움을 받았다. 만약에 제임스와 다시 작업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지 다시 하고 싶다.

-이번 작품에서 좋아하는 장면은.
=무도회 장면이다. 오스틴이 좋아하지 않는 파트너와 춤을 추다가 리프로이를 보고 환하게 밝아진다. 자신에게 맞는 이를 만났을 때 얼마나 사람들이 변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 같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영화 후반부에 수십년이 흐른 뒤의 장면이 있다. 제임스와 나는 물론 다른 젊은 캐스트들이 모두 분장을 해야 했는데, 줄리언(감독)이 “아직도 너무 젊어 보인다”고 하더라. 궁리 끝에 ‘숙취’가 최고라는 결정을 했다. 물론 메소드 연기를 하는 제임스는 빠졌지만, 분장을 해야 하는 나머지 캐스트들과 촬영 전날 밤 취하도록 마셨다. 부끄러운 방법이긴 하지만 확실히 지치고, 늙어 보이긴 했으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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