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랑가보 Munyurangabo
리 아이작 정 | 2007년 | 97분 | 35mm | 르완다, 미국, 홍콩 | 플래쉬 포워드
지난 1990년부터 99년까지 이어진 르완다 내전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학살극 중 하나였다. 후투족은 50만명의 투치족을 살해했고, 투치족은 100만명의 후투족을 살해했다. 이 무시무시한 살육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호텔 르완다>의 DVD를 빌리는 것이 편리하고도 감동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진행형의 역사가 궁금한 관객이라면 재미동포 2세 감독 리 아이작 정이 3만달러의 초저예산으로 완성한 아름다운 로드무비를 놓쳐서는 안 된다. 고아소년 문유랑가보는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친구 상그와와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상그와는 오랫동안 헤어졌던 부모와 살기 위해 고향집에 머물기로 결심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문유랑가보는 홀로 복수의 길을 재촉한다.
리 아이작 정 감독은 결코 대학살의 비극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거나 화면에 되살리지 않는다. "수많은 르완다인들이 할리우드가 만든 르완다 학살 관련 영화를 보고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그에게 <호텔 르완다>식의 드라마틱한 재현은 서구의 지식인들을 위한 도덕적 위로에 불과했을 것이다. 대신 최초의 100% 르완다어 영화인 <문유랑가보>는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영혼들의 죄를 씻고 르완다의 미래를 지켜보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35mm로 블로업한 화면이 어둡고 거칠어서 가끔 눈이 쓰라린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컴컴한 화면에 오롯이 박혀 있는 아프리카의 대지와 얼굴들은 영화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나도 망막에서 쉬이 거두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것을 ‘이미지의 진정성’이라고 일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