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박도신 프로그래머가 본 <집결호>
2007-10-05
전쟁 속에 펼쳐진 인간의 얼굴

펑 샤오강은 한국에서는 <아연>이라는 한 편의 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에서는 꽤나 인기 있는 대중영화 감독이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온 지인이 들고 온 DVD 타이틀에서 펑 샤오강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중국 5세대, 6세대 감독들에 친숙한 탓인지 다소 낯설었다. 알려졌다시피 펑 샤오강은 유명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마다 캐릭터는 항상 돋보인다. 그가 만든 대표작 <천하무적>은 대중영화의 감각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 중 한편이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도둑 부부를 등장시켜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특히 도둑 부부가 시골 촌부 ‘복근’을 만나는 대목은 압권이다. 타락한 민중의 표상인 부부와 순박한 복근을 대비시키면서, 여기에 유명한 도둑인 표숙을 등장시킨다. 표숙과 도둑 부부는 복근을 털기 위한 경합을 벌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유덕화를 비롯한 중국 영화권의 친숙한 배우들을 등장시키면서, 도둑들이 벌이는 액션 코미디는 기차 안의 활극으로 연출되면서 매우 영화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낸다.

<아연> 이후 펑 샤오강은 확실히 규모가 커지기는 했다. 민중들의 속살을 건드리던 코미디 감각보다는 세익스피어의 연극을 각색한 <아연>이나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 <집결호>를 통해 이전의 색깔과는 차별화된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대작들의 결과를 볼 때 전작의 섬세함에 비해 대작을 조율하는 펑 샤오강의 감각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매력이 있다. 펑 샤오강의 영화를 관통하는 것 중에 가장 큰 줄기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이다. <집결호>에서도 9연대의 중대장 구이찌디는 소신이 투철하고 인간애가 넘치는 인물이다. 그가 몸을 담고 있는, 그가 벌이는 전쟁사를 따라가면서 <집결호>는 개인이 겪게 되는 운명적인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다. 그 속에는 펑 샤오강 특유의 인생에 대한 통찰과 마치 새옹지마와 같은 삶의 변화를 드러낸다. 그의 행보를 볼 때 다음에 선을 보일 영화는 규모를 유지하면서도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발휘될 것 같다. 마치 <집결호>에서 오랜만에 만난 주인공과 부하의 상봉을 통해 인간미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다.

박도신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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