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문주는 바쁘다. 이 젊은 루마니아 감독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4개월, 3주… 그리고 2일>를 부산영화제에 출품한 동시에 ‘뉴 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으로 하루에 몇편씩 영화를 감상해야만 한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니 되도록이면 스케쥴을 오전으로 맞춰준다면 고맙겠다"며 스탭들에게 날리는 미소에서도 약간의 피로는 숨길 수가 없다. 하지만 죄책감이나 배려 때문에 그를 만나지 않는다면 직무태만이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올해 Piff족들이 가장 강렬한 영화적 펀치를 맞게 될 영화적 경험이니 창조자의 말을 듣지 않을 도리가 없는 탓이다. 낙태가 금지된 차우셰스쿠 독재하의 1987년을 무대로 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소녀는 카프카의 지옥 같은 부카레스트 거리를 낙태한 영아를 싸안고서 숨막히게 달려간다. 관객도 달려간다. 그리고, 같은 템포로 해운대를 뛰어다니는 문주를 만났다.
-뉴 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으로 부산에 참가하게 된 기분은 어떤가.
=다른 문화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 심사위원으로서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종류의 영화가 아닐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고 감사하는 자세다. 그를 위해서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아무런 정보도 얻지 않고 극장에 들어간다.
-저널리스트로서도 활동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와 지금의 영화보는 기준이 다르지는 않나.
=나는 저널리스트나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다. 감독의 세세한 의도를 파헤치는 게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나에게 다가오는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낙태를 소재한 이야기다. 암울한 시대를 왜 여성의 낙태를 통해서 표현했는지 궁금하다.
=효과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이 영화는 두 메인 캐릭터의 이야기지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라고 넓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관객들은 이 영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누구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라고 여길 것이고, 또 누구는 연대와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에게 이 영화는 책임감과 결정의 순간, 네 삶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로서 낙태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좀 어렵지는 않았나.
=나는 이 영화의 주제가 여성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것은 삶과 죽음의 결정에 관한 문제다. 장르와 젠더를 뛰어넘는 이야기다. 게다가 나는 동일한 경험을 가진 여성으로부터 이 모든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실제 이야기에 근거했기 때문에 더욱 강렬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나온게 아닐까.
-그러나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가. 그것도 관객에 대한 또다른 폭력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
=나는 이야기에 있어서는 정직하다. 사실 필름메이커는 모든 것들에 대해 세세하게 코멘트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뒤로 한발 물러서서 영화의 스토리가 저절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네도록 놓아둘 뿐이다. 롱테이크 장면들 역시 장면(Scene)이 스스로 감정을 관객에게 풀어내도록 만들기위한 장치다.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배급이 성공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업적 성공을 토대로 저예산 리얼리즘 경향의 영화를 벗어나 조금 다른 경향의 영화를 만들 여지는 없는가.
=이태리, 프랑스, 스위스, 영국, 독일 등 전세계 36개국에 판매됐다.(편집자: 한국에서도 올해말 개봉 예정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올해 안에는 다 개봉을 할 예정이지만, 수익이 들어오기 전이니 아직은 자본이 여유롭지는 않다. 하지만 나에게 영화와 돈은 큰 상관이 없다. 주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건 나쁜 게 아니지만 내가 영화 만드는 방식이 돈에 따라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황금종려상 이후의 행보를 지켜보는 탓에 신작을 만드는 게 예전보다는 조금 더 부담스럽기는 하지만.(웃음)
-차기작은 뭐가 될까. 특별히 마음에 두는 주제가 있나.
=나도 모르겠다. 나는 관객을 놀래키는 만큼이나 내 자신도 놀래키고 싶다. 사실 나는 주제를 먼저 정해놓고 스토리를 만들지는 않는다. 좋은 스토리를 찾게되면 메세지를 거기서 발견하게 된다. 메세지를 먼저 정해놓고 스토리를 만드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데모(Demonstration)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