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3주… 그리고 2일> 4 Months, 3 Weeks and 2 Days
크리스티안 문주 | 2007년 | 113분 | 35mm | 루마니아 | 월드 시네마 | 17:30 | 메가박스6,7,8
낙태가 금지된 차우셰스쿠 독재하의 1987년 루마니아. 오틸리아는 기숙사 친구인 가비타가 불법 낙태를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던 중 불법 낙태 시술자 ‘미스터 베베’를 고용한다. 사실 모든 것은 간단하게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몰래 낙태를 시술하기 위한 호텔방도 잡았고 돈도 모았다. 하지만 가비타의 바보같은 행동으로 인해 계획은 조금씩 뒤틀리고 음험한 낙태 시술자 미스터 베베 역시 한층 더 위험한 댓가를 바라기 시작한다. 2007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낙태의 윤리적인 대가 따위에 대한 쓸모없는 언변을 늘어놓는 영화가 아니다. 당신이 낙태를 반대하든 낙태를 찬성하든 그건 이 영화에서 거의 중요하지 않다. 크리스티앙 문주가 진실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낙태가 이루어진 다음부터 벌어지는 지옥 같은 오틸리아의 질주다. 핸드헬드로 흔들리는 카메라는 낙태한 아기를 싸들고 칠흑같은 부카레스트 거리를 내달리는 오틸리아의 뒤를 아무런 인공조명도 없이 뒤쫓고, 카프카의 단편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녀의 모험은 사회와 제도의 부조리에 걸려든 나약한 인간의 지옥을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투영해낸다.
한국의 영화제 마니아들에게 크리스티앙 문주는 낯선 이름이 아니다. 루마니아 역사상 최대의 흥행작 중 하나인 문주의 장편 데뷔작 <내겐 너무 멋진 서쪽 나라>(The Occident)은 이미 2003년 부천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바 있고, 지난 2006년에는 그가 한 단편을 연출한 동유럽 옴니버스 영화 <로스트 앤 파운드>(Lost & Found)가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다. 전작들이 에밀 쿠스투리차적인 마술적 리얼리즘에 약간의 빚을 진 작품들이었던데 반해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 극도로 건조한 리얼리즘의 방법론을 구사하는 것은 꽤 흥미롭다. 문주의 변화는 애조 어린 투로 내전과 공산주의 체제의 종말을 흐릿하게 돌아보던 지난 20여년간의 동유럽 영화가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지금 젊은 동유럽 작가들은 ‘동유럽적인(혹은 그렇다고 오해되어온) 감수성’을 구시대의 유물함속으로 던져버린 채 서유럽의 작가들과 동일한 방식의 현대영화 만들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루마니아는 그 최전선에 서 있다. 미학적인 통제와 윤리적인 문제 제기가 완벽하게 합일을 이룬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새로운 대륙을 재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