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네덜란드의 거장 렘브란트의 삶 <야경>
2007-10-08
글 : 정재혁

<야경> Nightwatching
피터 그리너웨이 | 2007년 | 134분 | 35mm | 영국, 캐나다 | 월드 시네마 | 17:30 | 대영시네마3

<털스, 루퍼> 연작으로 이미지와 디지털을 실험했던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이 네덜란드의 거장 렘브란트의 삶을 영화의 소재로 택했다. 17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계급사회의 문화가 드러나는 부분은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정부> 등을 연상케 하지만 빛과 어둠, 사회와 개인의 내면을 은유하는 렘브란트의 그림은 피터 그리너웨이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성찰의 연장이다. 게다가 그가 이 영화에서 집중하고 있는 그림은 렘브란트의 마지막 작품이자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는 문제작 <야경>이다.

돈과 작업의 편의를 위해 딜러의 조카인 사스키아와 결혼한 렘브란트는 머스킷 민병대의 초상화를 의뢰받는다. 하지만 그는 작업을 하며 당시 네덜란드와 유럽사회의 어두운 면을 알게 되고 민병대 중 한명인 피어스 하셀버그의 죽음이 살인이란 사실도 알게 된다. 피터 그리너웨이는 성공한 화가 렘브란트가 당시 유럽사회에서 왜, 어떻게 불운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의 그림과 독백을 통해 보여준다. 시대의 현실과 마주친 예술가가 겪어야 할 고뇌, 그리고 그 고뇌를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 작품 등 <야경>에는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의례적으로 보여주는 내용들이 그대로 들어 있다. 하지만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은 이 평범한 주제들이 영화적으로 어떻게 특별할 수 있는지를 마술처럼 연출해낸다. 바로크 양식을 미니멀리즘으로 재현한 듯한 극중 세트와 검정, 빨강, 노랑 등의 질감 차이가 남성과 여성, 죽음과 삶의 묘사로 이어지는 부분은 탁월하다. 특히 지붕 위에서 생명의 천사와 대화하는 렘브란트의 장면은 예술가의 현실이 채워내지 못하는 예술, 이미지로 표현되지 못하는 진실의 광범위함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이야기를 단순하게 은유하는 화법이나 색채를 묘사하는 방법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야경>이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전작과 비교할 때 손꼽히는 작품은 아니다. 빛과 색에 대한 실험과 이를 영화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은 여전히 돋보이지만 영화적 공간과 시간에 대해 실험했던 <털스, 루퍼> 시리즈 이후 작품이라고 하기엔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야경>은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처럼 이야기를 도발하거나 <필로우 북>처럼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진 않는다. 다만 렘브란트란 인물의 세계가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을 어떻게 자극했는지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어둠에 갇힌 렘브란트의 마지막과 그 상황을 연출해낸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 이 영화는 그 빛과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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