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의 감독 이즈쓰 가즈유키가 후속편인 <박치기! Love&Peace> 개봉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후속편은 68년 교토를 무대로 했던 전편과 달리 74년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성격은 청춘영화의 활기에서 소시민 영화의 애환을 담는 쪽으로 변화했다. 주인공 안성의 아버지인 진성의 이야기를 추가하여 재일 한국인의 역사성에 대한 문제에도 더 접근하고 있다. 이즈쓰 가즈유키는 소시민 장르와 희극 장르 등으로 단련되어온 영화 장인으로서, 일본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새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사회에 대한 논평을 힘주어 들려주었다. 10월3일 오전 11시경, 마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인터뷰가 시작됐고 그는 문득 “지금쯤 만났을까”라며 말문을 열었다.
-인터뷰보다 남북정상회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웃음)
=그건 아니지만, 남쪽의 대통령이 그쪽으로 넘어간 건 그야말로 박치기 정신이 아니겠나. 박치기 정신이란 뭔가 새로운 도전정신이 아닌가. 나도 박치기를 하려고 서울에 와 있는 것이고 한국의 대통령도 박치기 정신으로 지금 넘어가고 있는 거니까 관심이 간다. 북쪽에서 얼마나 호의적인 박치기가 돌아올지 그게 궁금하다.
-영화 개봉 직후 일본에서 호평과 혹평을 같이 들었다고 말했다.
=재일 한국인의 삶에 대해 알게 되어 감동했다는 말들이 많이 있었다. 반면 이 영화를 반일영화라고 낙인찍고 인터넷상에서 비난하는 일도 있었다. 일본인이 왜 조선인의 편을 드는 영화를 만드나, 지금 조선인 일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필요없다, 그건 그들의 이야기다, 라며 사이버 테러를 가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건 일본의 지금 사회의 한 경향을 보여준다. 일본의 지금 젊은이들은 신보수주의 성향이 강하다. 일본인만의 긍지를 강조한다든가 일본인만의 사회를 생각하고 소수자를 배척하고 소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은 일본 젊은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 한국 젊은층도 같은 경향을 공유하고 있다
=그럴 수 있다. 눈앞에 당장 보이는 대세를 적당히 따라가려는 것 같고 특히 과거를 돌아보려 하지 않는 경향도 강하다. 하지만 정말로 긍정적인 미래지향이란 과거를 돌아보며 가는 것 아니겠나. 멍청하게도 그런 생각을 너무 하지 않는다.
-일본의 텔레비전 시사프로그램에 자주 나오고 또 독설가로도 유명하다고 누군가가 그러던데, 듣다보니 그런 느낌이 온다.
=나의 독설이라는 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만 말할 기회가 없을 뿐, 현명한 서민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텔레비전에 비쳐지니 독설처럼 보이는 것뿐일 거다
-전편을 말해보자. 전편이 청춘의 활기에 집중됐다면 속편은 재일 한국인의 문제가 더 강조됐다.
=그렇다. 이번에는 전편에서 말하지 못했던 것이 주가 됐다. <박치기!>에서는 청춘, 대립, 융합, 공생등이 주제어였고 그것이 재일 한국인 2세들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1세들의 청춘, 그것도 전쟁에 놓인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그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2세들에 관해서도 모르는데 1세들에 관해서는 더 모르지 않았겠나. <박치기!>를 통해 재일 한국인 2세들의 청춘을 보고 관객의 큰 반향이 있었던 건데, 이제는 그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들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그들의 삶이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 거슬러 올라가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아버지 진성의 일화들이 너무 적었거나 혹은 자리를 못 찾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그럴 수 있다. 가령 제주도에서 남아시아 전쟁터까지 옮겨가는 그런 일화들을 더 자세히 그려내고 싶기는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지금 일본 관객이 더 이해하기 어려워질 것 같았고, 그래서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현재(안성과 경자의 이야기)로 자주 돌아오는 구조를 취하게 된 것 같다. 제주도나 전쟁 기간의 이야기를 더 해볼 수 있었겠지만, 사실 그것만 갖고도 한편의 다른 영화가 나올 수 있을 만큼 방대한 분량이다. 진성의 이야기는 이 영화제작자의 아버님(씨네콰논 이봉우 대표)이 겪은 거의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다. 그걸 더 확장해서 한편의 다른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주연배우들이 모두 바뀌었다.
=전작에서 6∼7년 정도 지난 이야기라 모두 바꾸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는 분장이라는 방법 등을 선택하면서 같은 배우를 유지하려 했을 것 같은데, 당신은 좀 다르게 생각했나보다.
=전편에 나온 강한 청춘의 인상들을 어른들의 이야기로 이어가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는 역시 이미지라서 그것을 분장 등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대부>의 알 파치노가 3부작 전부의 주연을 하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 같다. 또 알 파치노만큼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기용한 것 같지는 않고 해서…. (웃음)
-전반적으로 보면 당신은 소시민 장르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이미 내가 영화를 시작했던 20대 초반부터 그래왔다. 그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권력자나 실업가의 성공 스토리 같은 데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럼, 20대 초반의 이즈쓰 가즈유키는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22살, 23살쯤 포르노그래피영화 현장에 있었고, 포르노그래피영화를 몇편 만들고 나면 그때 메이저쪽으로 가야지 생각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런 영화를 했던 것도 70년대 상황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유행한, 전 국민이 다 중산층을 지향하고 꿈꾼다는 의미에서 나온 ‘일억 총 중류’의 흐름에 대한 반항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다들 고상한 생활들만 꿈꿨으니까. 하지만 밤 되면 하는 일은 다 똑같지 않냐, 뭐 그런 나 나름대로의 반발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 지금 당신의 관심사는 뭔가.
=여러 가지로 모색 중이다. <박치기!> 시리즈 이후 강연 요청이 너무 많아 연말까지는 일단 그걸 해야 할 것 같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죽이는지, 혹은 얄팍한 관계에 놓여 있는지, 그 안에서 터지는 사건은 무엇인지 등에 관심을 갖고 자료 조사 중이다. 그리고 재일 한국인 이야기로는 종전 직후 일본 내 재일 한국인의 상황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내 생각에는 한국의 급진적인 감독 중 누구라도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아직 발굴되어야 할 과거가 많다. 역시 시장의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있으므로 바보 같은 영화나 그저 그런 영화들이 있기는 해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