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프레데터> -만화가 박무직
2007-10-12
충격의 3단 합체

나는 내 만화의 5할을 영화에서 배웠다. 건담이 아니라 SF영화들을 보면서 SF만화를 생각했고 영화 연출책을 읽으며 만화의 연출을 연구했다. 결국 대학원도 영화쪽을 선택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학업은 일본에서 연재를 하면서 중단해야 했다). 영화는 내 만화의 5할이기 때문에 결국 내 인생의 5할이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가장 많은 것을 중학 2학년 때 얻었다. 그해 초, 극장에서 <에이리언2>를 보고 돌아와선 그리던 만화를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그렸다. <영웅본색2> <프레데터> <로보캅> <다이하드>를 여름에서 겨울에 걸쳐 봤다. 그중 특히 <프레데터>가 나의 만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전해에 소년들 사이에서 <영웅본색>의 캘린더(명함처럼 생긴)는 최고가를 달렸다. 그래서 나는 극장에 홀로 <영웅본색2>를 보러 갔다(데뷔하기 전까지 언제나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다. 친구와 가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사랑스러운 예고편, 영화의 보너스 예고편! 그런데 <영웅본색2>의 예고편으로 보여준 건 젤리 같은 괴물이 나오는 3류로 보이는 SF영화였다. 중학생 때였지만 이미 나름 SF가 전공이라 생각해서 ‘저런 영화라도 SF라면 봐주마’라는 생각에 더이상의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 영화도 보게 되었다.

영화는 존 맥티어넌 감독의 액션영화 데뷔작이었고 주인공은 <코만도>의 아놀드 형님이었다. 괴물 디자인엔 제임스 카메론이 관여했다. 주지사 2명이 출연하는 영화의 오프닝은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정체불명의 뭔가를 쏘아버리고 가는데 그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지구에 낙하하는 것이다. 앗, 오프닝에서 이미 나는 <프레데터>의 포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영화가 나에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장르의 혼합’이다. 장르의 혼합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특히 순차적 혼합이 <프레데터>의 특징이다. 영화는 <코만도>(액션)의 하이라이트 특집으로 시작해서 <터미네이터>(SF)로 중간을 이어가고 <코난>(바바리안, 판타지)으로 끝을 맺는다. 각 파트는 전성기의 존 맥티어넌 감독답게 최고의 수준이다. 앞은 <코만도>보다 좋고 뒷부분은 <코난>보다 좋다. 중간도 <터미네이터>만큼 괜찮다(80년대 말, 맥티어넌 감독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함께 새 액션영화의 라이벌로 평가되었음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그 누구라도 아놀드 형님의 대표작이 <터미네이터>라는데 이견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형님의 매력을 최고로 보여준 작품은 <프레데터>라고 생각한다. 코만도, 터미네이터, 코난의 모습을 차례로 다 볼 수 있는데다가 근육도 최고다(출연배우들이 스포츠맨들이라 영화를 찍는 동안 경쟁적으로 운동을 했다고 한다).

충격의 3단 합체. 장르를 이어붙인 이 영화를 보고 소년이었던 나는 구조에 대해 무한한 영향을 받았다, 아무래도 그게 내 취향인 듯하다. 중3 때는 장혜리 누님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라는 노래의 3단 구조에 전율했기 때문이다.

데뷔하여 만화가가 된 뒤, 내 첫 장편 연재작은 장르를 줄줄이 이어붙인 작품이었다. 일본에서의 첫 연재작은 한회 30페이지를 10페이지는 미소녀 만화, 10페이지는 액션, 10페이지는 요리만화로 구성했다. 지금 하는 연재작은 경파물+조폭물+연애물을 이어붙였다. 때론 장점이고 때론 단점이 됐지만 순차적 장르혼합은 나의 스타일에 큰 영향을 준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프레데터> 한 작품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난 작품을 기획할 때는 언제나 <프레데터>에 대해 생각한다.

이렇게 내 작품의 5할은 영화에서 배웠다. 연출도, 디자인도, 구성도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일본 만화계에 영화의 영향력과 기술을 적용시켜보니 잘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거기엔 60년간 영화와 다른 길을 걸으며 쌓아올린 노하우와 컨벤션, 고집이 있었다. 새로운 세계다. 좋아, 배울 것이 있어서 좋다. 내가 배운 영화의 자산에 일본 만화의 자산을 더해보려 한다. 언젠가는 내가 배운 새로운 것을 영화를 하는 동료들에게 전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순차적이다, 내 인생이다.

박무직/ <무일푼 만화교실>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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