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리양] “순수했던 사람들의 인성이 변하는 모습을 그렸다”
2007-10-10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서울국제영화제 참석한 <맹산>의 리양 감독

중국의 리양 감독이 최근 폐막한 서울국제영화제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서울영화제에서 선보인 <맹산>은 인신매매범에게 속아 산골 마을에 신부로 팔려가 겁탈당한 뒤 갇혀 사는 한 여인이 자유를 향해 탈출을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돼 5분 이상의 기립박수 세례를 받았던 이 영화는 중국 광산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데뷔작 <맹정>(2003)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거듭되는 실패와 갖은 고초 속에서도 자유를 위해 산골을 탈출하고 또 탈출하려는 <맹산>의 여주인공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묵묵하게 “중국의 현실을 고발하고 최하층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는 리양 감독 자신인지도 모른다. 2003년 부산영화제와 올해 칸영화제에 이어 세 번째 만남을 갖게 된 것은 그런 궁금증을 시간의 여유를 가진 채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칸영화제에서 만났을 당시 <맹산>은 최종 심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의결과는 어떻게 됐나.
=심의는 통과했다. 그런데 심의를 거치면서 수정할 부분이 있어서 이제 막 수정이 끝난 상태이고, 최종 통과가 된 상태다. 개봉일정이 잡히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고, 현재 워낙 많은 영화가 대기 중인 탓도 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맹산>의 개봉연기를 결정했다고 하던데.
=그건 아니다. 그 기자가 잘못 안 것 같다. 개봉 연기작으로 함께 언급된 <로스트 인 베이징>도 많이 수정하는 것으로 안다.

-삭제한 장면도 있나.
=당연히 있다. 아무래도 중국에서 상영할 때는 국내 기준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장면이 삭제됐다.
=얘기하기는 좀 그렇다. (쓴웃음) 하여간 여러 장면을 잘라야 했다.

-<맹정>도 중국에서는 개봉을 못했는데, <맹산>도 수정하고 삭제한 뒤 개봉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지는 않나.
=솔직히 말해 내 마음이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크게 봐서 이런 게 다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에게 알 권리가 있긴 하지만 일단 기준에 맞춰야 한다. 내 목표는 중국 관객으로 하여금 내 영화를 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 편집을 해서라도 개봉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주변 사람들과 많이 토론을 하면서 수정했다.

-칸에서 인터뷰 당시, <맹산>은 10여년 전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나.
=10여년 전 언론에서 여성들이 시골에서 인신매매돼 신부가 된다는 이야기를 보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맹정>을 중국 정부의 허가없이 찍었다는 이유로 3년 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했고, 지난해 규제가 풀리면서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된 것이다.

-그 사건의 어떤 점이 영화를 만들도록 자극했나.
=독일에서 돌아와보니 다양한 사회문제가 있었다. 특히 중국이 자본주의적인 개혁·개방을 하면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영화를 위해 취재를 하다보니 인신매매범에게 돈을 주고 신부를 산 농부 또한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순수했던 사람들의 인성이 변해가는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다.

-당신은 독일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맹정>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그 경력이 드러난다. 시종 핸드헬드 카메라를 쓰고, 음악을 안 쓰며, 비전문배우를 기용하는 등 특별히 지향하는 영화 스타일이 있는 듯하다.
=그런 표현방식을 선호한다. 그처럼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찍으면 이야기를 관객이 최대한 가깝게 볼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관객을 몰입시켜 현실을 드러내고, 이야기에 사실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 같다.

-전에 말했듯 이 영화에는 당신과 여주인공 등 3명을 제외하면 다 아마추어 연기자가 출연한다. 그게 생동감을 주는 건 확실하지만, 연기를 시키는 감독 입장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비전문 연기자의 연기에 아주 만족한다. 이 영화가 현실을 다루기 때문에 현실 속의 인물이 등장하는 게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들 스스로가 농민이기 때문에 농민을 연기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문 연기자를 농민처럼 보이게 하는 게 더 어렵다.

-<맹정>에서도 아마추어 연기자들을 기용했다. 그들과 지금도 연락은 하고 있나.
=당시에 출연했던 사람들과 아직도 교류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맹정>에서 두 사기꾼 앞에 나타난 소년 역을 연기했던 왕바오창은 이제 대스타가 됐다.

-감독 본인이 배우 활동을 했는데, 연출작에서는 비전문배우를 쓴다는 건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나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요즘 배우들은 대개 얼굴이 반반해서 농민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웃음) 1940∼50년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영화들을 좋아하는데, 비전문배우를 기용하는 건 비슷한 맥락이다. 사실 관객 입장에서는 전문배우냐 비전문배우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캐릭터가 농민이라면 그 연기를 얼마나 설득력있게 보여주냐가 중요한 것이다.

-혹시 배우로 활동했던 경험이 연출을 하는 데 영향을 끼쳤나.
=당연히 관련있다. 배우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감독은 배우로부터 어떻게 연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배우와 어떻게 교류하고 캐릭터를 어떻게 이끌어내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배우로서의 경험이 감독에게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대부분 감독은 연기를 놓고 그저 좋다 나쁘다고만 하지 세밀한 부분은 배우에게 맡긴다.

-스스로 <맹산>에 출연했는데, 인신매매범 캐릭터와 어울리는 연기였다. 혹시 배우를 다시 할 생각은 없나.
=사기꾼 연기 말인가? (웃음) 사실 그 역할로 다른 사람을 찾긴 했는데, 사기꾼처럼 안 생겼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하게 됐다. 예전에는 좋아서 배우를 했는데 지금은 감독이 좋기 때문에 계속 연출만 할 생각이다. 물론 이렇게 가끔씩 출연할 기회는 있겠지. 이를 위해 시시각각으로 연구하고 있다. (웃음)

-<맹산>에서 여주인공은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마을을 탈출하려 한다. 심지어 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말이다. 이 인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 것 같다.
=중요한 의미를 뒀다.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자유를 찾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는 것 말이다. 그녀는 심지어 상점 주인에게 돈을 받고 몸을 주기까지 하지만, 그건 결국 반드시 도망쳐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결국 남을 죽임으로써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결론인 셈인데, 참으로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비극적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 남편을 죽여야 한다는 것 말이다. 내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노예처럼 살아가던 여성이 자유를 위해 싸움을 하는데, 자유는 그 정도의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다. 한국사회도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분들의 희생 덕분에 사회가 자유를 얻고 발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중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비유로 읽어도 되는 것인가.
=어느 정도는. 이 영화는 중국의 사회문제와 중국 최하층민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자본주의로 가는 변혁기에서 발생하는 상황들과 흔들리는 가치관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려 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남편의 사촌이고 초등학교 교사인 캐릭터는 무기력한 지식인을 비판하는 듯했다.
=그런 지식분자들의 유약함 같은 게 있긴 하다. 결국 그는 행동으로 여주인공을 도와주지는 못하니까. 도와주는 건 결국 꼬마뿐 아닌가.

-중국 지식인들에 대한 감독의 평소 생각이 배어난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냥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비판적 시각은 있다. 문화대혁명이나 커다란 변화 이후 지식분자들은 무언가 앞장서서 이야기를 못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1분은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강렬하다. 애초 그런 내용으로 구상했던 것인가.
=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그쪽으로 가는 게 합리적이고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원래는 경찰이 여주인공을 구해내는 것이 결말이었지만, 그런 비극을 더 극적으로 나타내고 인물의 성격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서 바꿨다. 한 유약했던 여대생의 자유를 향한 갈망이 갈수록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시대 감독 중 영향받은 사람이 있다면.
=다르덴 형제, 올리비에 아사야스, 그리고 한국의 이창동, 김기덕 감독까지 여러 나라의 여러 감독들의 영화를 관심있게 보고 있다. 아, 리안 감독도 있다.

-연기를 하면서 결국 영화감독이 됐는데, 연기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18살 때부터 했다. 그 뒤로 8년 동안 연극, TV연속극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사실 부모님이 모두 배우였다.

-그러다가 1985년 베이징방송학원(北京廣播學院)에 들어갔다.
=연출을 하고 싶었다. 내가 연기를 하는데 연출자들의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더라. (웃음) 내 생각과는 너무 다르게 연출을 했으니까. 차라리 내가 연출을 배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영화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베이징전영학원(北京電影學院)이 아니라 방송이 전문인 그곳으로 간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입학하던 당시 전영학원에는 20명이 입학하지만, 2학년이 되면 그중 성적이 나쁜 몇명은 쫓겨나게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런 게 싫었기 때문에 방송학원으로 간 거다. 웃기는 일은 그 제도가 오직 그해에만 있었다는 사실이다. 친구들 사이에 지나친 경쟁을 유발시킨다는 이유로. 그렇게 들어갔는데 특별히 배우는 것도 없고 해서 매우 실망했다. 그래서 2년 동안 다니다가 자퇴하고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만약 당시 전영학원에 갔다면 제5세대 감독들과 함께 활약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그들과 나이는 많이 차이나지 않으니까(리양 감독은 59년생이다).
=어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5세대고 6세대고 구분짓고 싶지 않다. 내 나이는 5세대에 가깝지만 영화로 치면 6세대에 가까운데, 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를 찍는 것이지 않은가. 세대구분이라는 건 평론가들이 자기들 좋으라고 만든 것일 뿐이다.

-그렇게 유학간 곳이 왜 하필이면 독일이었나.
=1987년에 독일로 갔는데, 첫째 독일의 대학은 우선 수업비를 받지 않는다. 둘째는 사랑 때문이다. (웃음) 당시 여자친구가 이미 독일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함께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된 거다.

-그 여자친구와 지금도 혹시….
=아니다. 독일에서 헤어졌다. (웃음)

-유학을 갈 정도였다면 혹시 집안이 부유했던 것인가.
=아니다. 문화대혁명 전에는 부모님 모두 전문배우고 해서 잘살았는데, 혁명 때 아버지도 휩쓸리셔서 집안에 남은 게 하나도 없게 됐다. 그래서 유학은 아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서 갔다. 그래 봐야 400달러? 유학 가서도 집에 손 벌린 적은 한번도 없다. 결국 독일에 가서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공장도 다녔고, 이삿짐도 날라봤고, 건물 공사장에서 페인트도 칠해봤다. 그런 힘들었던 경험이 영화에 녹아든 것 같긴 하다.

-독일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다큐를 찍는 데는 돈이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중국에 있을 때도 학생들과 학교에서 기자재를 빌려서 찍었으니까.

-언제 중국으로 돌아왔나.
=2001년 베이징에 정착했다. 돌아와보니 중국은 완전히 변화해 있어 충격을 받았다. <맹정>과 <맹산>을 통해 중국의 사회문제를 고발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에서 가깝게 지내는 영화인이 있다면 누군가.
=이상한 게 중국 감독 중에서 일상적으로 교류하는 사람이 없다. 나 말고 대부분의 중국 감독도 그런 것 같다. 장이모, 첸카이거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게 중국 문화 아닌가 싶다.

-그렇게 동료들 없이 작업하는 게 외롭지는 않나.
=그런 고독감이 있긴 하다. 하지만 감독이 아니더라도 좋은 친구는 많으니까. 물론 영화 이야기를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칸에서 ‘사회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를 계속 만들겠다’고 했는데, 굉장히 힘든 일인 듯 보인다.
=지금 중국에는 현실을 고발하고 반영하는 영화가 너무 적다. 지금의 중국영화는 현실과 거리가 먼 아름답고, 큰 규모의 영화뿐이다. 힘든 건 사실인데 13억 인구 중 한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맹정>과 <맹산>은 각각 300만위안(약 4억원)과 400만위안(약 5억원)이 들었는데, 내 돈으로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다른 이들로부터 돈을 빌려서 직접 제작했다. 특히 저축했던 돈을 털어 투자해준 부모님과 동생에게 너무 고맙다. 아무래도 나는 조금 이상주의자인 것 같다.

-사회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감독으로서 개인 감성을 담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나도 영원히 사회문제만 다룰 수야 없을 것이다. 당연히 사랑 이야기 같은 것도 다루지 않겠나. 난 영화감독이지,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는 아니니까.

-2004년 PPP에 출품됐던 <홍색격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금은 찍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화대혁명을 다루는 영화인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다음 영화는 어떤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최하층민들의 삶을 다룰 계획이다. 아직 소재는 정하지 못했지만, ‘맹’자가 들어갈 것은 분명하다. (웃음)

통역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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