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을 아느냐고 질문받으면 열에 아홉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다시. 사진을 보여주고 이 사람을 짚으면 이제 그는 우리가 다 아는 배우가 된다. 체구는 이를 데 없이 왜소하고 눈은 좀 째졌고 목소리는 그다지 위엄있지 않으며 벗겨진 머리조차 풍족함의 상징과는 거리가 먼, 조촐한 인상의 이 사내. 그의 회고에 따르면 처음 그가 서른이 넘은 나이에 대책없이 연극판을 기웃거릴 때 연극계의 선배들은 “보장은 없지만…” 굳이 하겠다니 시켰고, “좀 하다 나가겠지” 하는 눈치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보장된 세계를 찾아나서는 대신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행동반경을 넓혔다. <서편제> 이후 스크린에서 김기천을 목격하는 일이 많아졌고 그때마다 그는 이내 나왔다 금방 사라지는 조역으로만 등장했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으며 잊기는 더 어려웠다. 그를 흠모하여 <주먹이 운다>와 <짝패>에 기용하기도 했던 류승완 감독은 “이상한 비애를 희극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역할의 배우”라며 “당대에 김기천 선생과 어깨를 견줄 만한 분은 우현씨 정도다(<시실리 2km>의 해주 역). 개인적으로 두 양반이 킬러 형제로 나오는 영화를 상상한다. 생각해보라. 만약 영화에서 누군가가 이들에게 죽는다면 그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나? 김기천 선생은 만드는 사람에게 정말 많은 상상력을 주는 배우”라고 칭송한다.
본인은 물론 이런저런 불만이 있다. “이른바 배우 목소리라는 거 있잖아요. 중저음으로… 뭐 그럴듯한… 에이 근데 이건 꼭 간신나라 충신 목소리 같아서…” 혹은 “나는 항상 진지하게 하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보면 꼭 웃어요”. 하지만 그가 그 목소리와 엇박자로 악인을 연기하고 병든 자의 몸이 될 때 유쾌한 정감이란 게 묻어난다. 물론 “마음껏 내 속의 외로움을 표현해내는 진지하고 색다른 역할을 한번 해보고 싶다”며 어렵게 운을 뗄 때마다 “그건 다음에 기회될 때 하고 이번에는 원래대로 하자”고 눙치는 감독들이 야속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가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과 우리가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 관한 이 이견이야말로 김기천의 매력 포인트일지 모르겠다.
김기천은 이미 허진호 감독의 영화세계에 몸담은 적이 있다. 어느 <8월의 크리스마스>, 파출소 순경에게 시비 걸며 “내가 민정당… 전화 한 통화면…” 어쩌고저쩌고 어깨에 힘주고 주정부리다 “아저씨 민정당 없어졌어요”라는 훈계를 듣는 주정꾼이 그였다. 10여년 뒤 <행복>에서 그의 이름은 ‘심부전’이다. 희망의 집. 여기서는 다 그렇게 부른다. 나는 폐암, 저는 간경변, 저쪽은 심부전증 등등. 심부전이라는 이 사람이 종종 주인공 영수와 은희 사이에 끼어들어 간질거리는 훼방도 놓고 간섭도 하는데 그게 밉지 않다. 간경변 환자를 꼬여내서 라면과 술을 권해도, 사람이 죽어나간 꽁무니에 대고 배고프니 밥 먹자고 칭얼거려도 역시 그렇다. 환우들을 몰고 와서 낮은 창문에 고개만 내밀고 합창을 하고 있을 때면 이제 귀엽기까지 할 지경이다. “그냥… 그냥 하는 거예요. 한쪽에서 누가 죽어도 산 사람은 또 살잖아요. 이거 참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람들을) 웃길 때도 내 마음의 외로움 같은 걸 갖고 하면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배우는 그런 외로움을 잊어보려고 (연기를) 하는 거 아닌가 싶고…. 에이 요즘 집에서 노니까 괜히 이런 생각이 드나…. (웃음)”라며 멋쩍어하지만, 가을 풍경의 내면을 가진 그가 혼신을 다해 연기할 때 우리는 기꺼이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러니 다음과 같은 소신을 듣는 것이야말로 즐거운 일이다.
“왜 꽹과리 있잖아요. 내가 그걸 좀 치는데, 옛날에 할아버지들이 만날 그랬다고. ‘꽹맥이는 그렇게 치는 게 아니지 이놈아, 변죽을 울려야지 복판을 치면 어쩌냐.’ 꽹과리는 변죽을 잘 쳐야 가슴을 파고드는 울림의 소리가 나거든요. 그렇게 생각해요. 나도 복판이 아니라 변죽을 울리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가을에 만난 꽹과리 같은 남자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표현이냐 싶다가, 이미 사랑받기 어려운 외모로도 잔뜩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그를 생각하니 아니 할 말도 아니다. 아름답게 변죽을 울리는 사내, 그가 김기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