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야경>으로 부산 찾은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품세계
2007-10-09
21세기 멀티미디어의 항해자

장 피에르 고랭의 표현을 빌자면 영화의 역사에는 두 종류의 영화가 존재한다. 그 하나는 ‘이디엄의 영화’로 이는 기존의 관습적 언어를 재구성해 테크닉을 활용, 삶의 갈등을 표현하고 감동을 만들어내는 영화다. 다른 한 편 ‘그래머의 영화’가 있다. 영화의 문법, 영화 언어의 문제를 고민하는 영화로 이는 어떻게 영화에서 새로운 창조적 언어가 가능할 것인지, 세계를 향한 이미지가 어떻게 창조될 수 있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다. 다소 이분법적으로 말하자면 영국의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업방식은 후자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의 문법을 사유하는 그리너웨이의 작업방식을 고려할 때 21세기에 그가 만들어낸 삼부작 <털시 루퍼의 여행가방>은 지극히 야심적인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차이는 있지만 고다르, 혹은 크리스 마르케처럼 그리너웨이는 그만의 방식으로 20세기의 문명사를 결산, 혹은 분류하고자 했다. 이 연작은 멀티미디어적인 기획으로, 가령 <털시 루퍼의 여행가방>은 극장용 영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미디어들(텔레비전, DVD, CD-롬, 책, 웹사이트 등)을 통해 상영, 전시되면서 관객들의 상이한 관람체험을 만들어냈다. 모험은 그런데 늘 위험을 동반하는 법이다. 그가 구상한 멀티미디어의 모든 관문을 통과한 관객은 아주 적을 것이고, 그래서 그가 구사하는 ‘그래머의 영화’는 21세기의 항해자로서의 관객을 여전히 가상적인 관객으로 남겨 놓았다.

종종 그리너웨이의 열광적인 지지자들과 만날 때가 있는데, 사실 그들 대부분은 그림을 전공하거나 미디어연구자들로 영화광들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영화광들은 그의 최근 작품에 종종 난색을 표하곤 한다. 가령 <프로스페로의 서재>나 <마콘의 아이>에서 신비스럽고 매혹적으로 지식과 종교의 남용에 대해 비판했고, 일본문화에 관한 에로틱한 시각이 담긴 <필로우 북>에서 디지털 시대의 영화가 동양적인 서예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던 그의 작품은 분명 흥미로웠다. 마치 이 시대의 디드로처럼 수학, 과학, 건축, 회화, 영화의 역사를 거슬러가며 지식과 종교, 섹스와 로맨스를 표현하며 시대를 넘나드는 사유를 보여준 지난 세기의 그리너웨이의 작업은 난해하기는 했지만 시각적 황홀을 제공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21세기의 그리너웨이의 모험은 좀 남달랐다. 그의 작업은 영화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멀리 간 시도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영화를 창조하고자 한 그의 야심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의 작업은 이미 영화의 경계를 훌쩍 넘어가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너무 영화와 멀어졌다고 지나치게 푸념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리너웨이가 제기하는 질문과 모험이 영화의 경계를 벗어났다기보다는 그것을 보다 근본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리너웨이는 지난 세기의 영화가 너무 스토리텔링에 치우쳐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만약 영화에서 여전히 이야기를 중시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소설을 쓰라고 충고한다. 이제 텍스트에 근거한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를 사고하는, 인터랙티비티와 멀티미디어 환경을 활용하는 영화들이 새로운 세기에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에는 새로운 영화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그는 천천히 수를 헤아린다. <차례로 익사시키기>(87)에서 이미 소녀는 줄넘기를 하며 별의 수를 헤아렸다. <털시 루퍼의 여행가방>에서는 ‘92’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그러면서 아흔 두 개의 여행 가방이 보따리 풀리듯 열린다. 92는 우라늄 원자기호로 그리너웨이는 20세기의 역사가 우라늄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마찬가지로 아흔 두 개의 가방에 담긴 물건들에 20세기의 역사가 숨어있다고 한다. 수를 세고, 알파벳을 호명하는 것, 그것은 세계의 질서, 사물의 형식, 영화의 구조를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그렇게 그리너웨이는 아흔 두 개의 관념들과 인물, 만남들, 모험을 거쳐 미디어를 관통하면서 21세기의 영화를 새롭게 사고한다. 그의 작품은 한 마디로 역사와 픽션, 미디어 매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자 백과사전적이고 신화론적인 거대기획이었다. 그가 이제 렘브란트의 그림에 담긴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이제 다시 흥미로운 게임이 시작된다. 하나, 둘, 셋.., 질문의 숫자를 함께 세어보자.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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