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텍스트에 기반한 영화는 끝났다, 죽었다
2007-10-09
글 : 정재혁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피터 그리너웨이 인터뷰

역시 거장이었다. 새 영화 <야경>을 갖고 부산영화제를 찾은 영국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는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강의에 가까운 열변으로 한국의 기자들을 맞았다. 통역과 진행이 원활하지 못했지만, “최선의 방법은 의미의 협상”이라며 인터뷰를 주도했고, 질문을 질문으로 답하며 한국과 아시아 지역에 대한 호기심도 드러냈다. 8일 한국에 들어온지 2시간도 채 안돼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를 여기 옮긴다.

-<야경>에서 네덜란드의 화가 램브란트를 소재로 택했다. 이유는 뭔가.
=나는 영화 감독이 되기 전 미술 교육을 받았다. 서양화에서 램브란트는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는 2007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는 인도주의자고, 공화주의자며,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포스트 프로이드적이며 동시에 페미니스트다.

-그렇다면 왜 램브란트의 작품 중 가장 논쟁적인 <야경>을 골랐나.
=램브란트는 다작의 화가다. 아마 300~400개의 작품을 남긴 걸로 알고 있다. 그는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처럼 굉장히 유명했고, 화려했으며, 누구나 인정하는 화가였다. 하지만 갑자기 가난해졌고, 불우한 결말을 맞았다. 왜 그가 그렇게 됐는지 <야경>에 단서가 들어있다. 나는 <야경>에 숨겨진 51개의 미스테리가 램브란트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첫 작품인 <영국식 살인사건>부터 <야경>까지 당신의 영화에는 예술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보인다. 예술과 권력의 관계가 당신 작품에서 의미하는 바는 뭔가.
=우선 당신의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 <야경>에서 중요한 건 예술과 권력이 아니라 섹스와 죽음이다.

-예술과 권력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그런 요소들이 보인다고 했다.
=음, 이렇게 이야기하자. <야경>, 아니 나의 모든 영화에는 단지 두개의 주제만이 있다. 시작은 섹스고 끝은 죽음이다. 이 둘은 서로 협상이 불가능하며, 나는 이 둘 외에 이야기할 가치를 못느낀다.

-당신은 보는 영화와 읽는 영화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거기에 따르면 <야경>은 보는 영화에 가까워 보인다.
=세상에는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 기반의 영화가 있다. 하지만 나는 화가로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이미지 기반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영화는 이미지와 관련있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램브란트는 꼭 고려해야 하는 예술가다. 램브란트의 삶은 자체가 이미지다. 지금 내 앞의 (취재진의) 카메라 6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이들은 다 교육을 받았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인지하고 있으며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은 단지 보고, 또 볼 뿐이다. 감각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지금 우리가 왜 나쁜 영화들과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 텍스트에 기반한 영화는 끝났다. 죽었다. 나는 지금 암스텔담에 살고 있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2년에 단 한번만 영화관에 간다. 오히려 이제는 핸드폰을 통해 영화를 본다. 영화는 이제 어둠 속에서 한 방향만을 바라보는 수동적이고 바보같은 게임이 되었다. 나는 지금의 영화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지만 다음의 영화에 대해선 낙관하고 있다. 이제 영화는 인터랙티브해야 하고, 멀티미디어적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털스, 루퍼> 연작은 영화의 공간과 시간, 나아가 영화의 수용방식에 대한 실험이었다. 인터랙티브성이 당신의 영화에서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뭔가.
=<털스, 루퍼> 연작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건 지금 세대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벤치마킹 작품이다. 나는 미래의 영화는 일대일 상호 관계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중요한 예술가들은 항상 하이 테크놀로지를 사용해왔다. 영화는 매우 잠재력이 크고, 훌륭한 언어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7년동안 5편의 작품을 계획하고 있다. 하나는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일본의 유령 이야기다. 또 오스트레일리아와 중국, 이탈리아에서도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작품은 어떤 건가.
=모든 기술은 항상 포르노그래피를 거쳐갔다. 일러스트레이션 책이나, 인터넷, 사진, 영화도 다 그렇다. 그리고 이 영화는 동시에 구약에 대한 이야기가 될거다. 섹스 대 기독교랄까. 내년 2월부터 브라질에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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