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총> Slingshot
브리얀테 멘도사 | 2007년 | 90분 | 35mm | 필리핀 | 아시아영화의 창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시커먼 거리. “경찰이 온다!”는 외침이 울려퍼지자 섹스를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거리에서 소일하던 남자들이 다급히 흩어지기 시작한다. 총을 둘러멘 경찰들은 “불시 단속”이라는 명목으로 아무 집에나 들이닥쳐 벌거벗은 남자들을 끌고 나온다. 폭력에 무감한 경찰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빈민가 사람들은 숙련된 거짓말로 멋지게 그들의 뒤통수를 친다. <새총>은 필리핀 빈민가를 날것 그대로 조망하는 충격적인 영화다. 시장 선거와 성주간이 겹친 어느 시기. 원래도 혼란스러운 빈민가는 더욱 카오스에 가깝다. 부정 선거가 횡행하고 성인을 기리는 축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떤 이는 돈을 제때 상납하지 않아 페디캡(pedicab)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고, 어떤 이는 사기와 도둑질로 간신히 구입한 값비싼 틀니를 잃어버리고, 어떤 이는 축제 중 벌어진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이 없이 여러 인물들을 돌아가며 비추는 이 영화는 군데군데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특히 소매치기들이 몇푼의 돈을 더 가지기 위해 동료를 모함하거나 물건을 훔치다가 걸려 혼쭐이 난 좀도둑이 우는 시늉을 하며 다시 물건을 훔치는 장면에선 감탄사가 절로 나올 지경. 결국 빈민가의 군상들에게 현실은 비극과 희극을 끊임없이 넘나들기에 잠시도 안도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연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천연덕스러운 배우들의 연기, 세트에선 결코 얻을 수 없었을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배경, 인물들에 밀착해 움직이는 핸드헬드 기법 등도 다큐멘터리의 느낌이 강한 이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들이다.
입양아를 맡아 기르는 빈민가 위탁가정을 그린 <입양아>에 이어 다시금 가난한 이들이 점령한 뒷골목에 렌즈를 갖다댄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의 작품. 냉정한 어조에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는 수작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고아를 맡아 기르는 빈민촌의 위탁가정, 필리핀 아이들을 거둬기르는 부유한 서양 부부 등의 모습을 통해 빈부 격차를 암시하면서도 얼마간 따스한 시선을 견지하던 전작과 달리 <새총>은 생존하기 위해 동정심이나 이해심 따윈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새총>과 <입양아>는 동시에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