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내년 5월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열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일곱 번째 기증품은 소장가 정태희씨가 기증한 이강천 감독의 1955년작 <피아골> 전단지입니다.
“哀怨의 골작(골짜기) ‘피아골’에서 피와 사랑의 悲劇.” 시절의 기운이었을까, 이강천 감독의 1955년작 <피아골>의 오래된 전단지는 비장한 느낌마저 감도는 홍보 문구로 장식되어 있다. 한국전쟁 뒤 지리산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는 빨치산들의 고립된 삶과 몰락을 다룬 이 작품은 빨치산을 추적하는 토벌대의 영웅적 면모 대신 빨치산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 하여 당시 격렬한 이데올로기 논쟁을 낳았던 1950년대 최고의 문제작이었다. 실제로 “반공영화로 보기 곤란하므로 치안상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1955년 8월24일 국도극장에서 예정된 상영이 취소되기까지 했다. 이에 홀로 살아남은 여주인공 애란이 하얀 백사장을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 뒤로 태극기를 삽입하고 나서야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당시 촬영지였던 지리산 일대에는 여전히 빨치산 일부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배우와 스탭들은 교대로 실탄이 든 총을 들고 보초를 섰고, 유사시를 대비해 신발을 신고 잠을 자기도 했다고 한다. 첫장에 실린 “영봉 지리산에서 결사적 촬영 이행”으로 시작하는 제작자의 변이 당시의 상황을 맛보게 해주는 <피아골> 전단지는 소장가 정태희씨가 2대에 걸쳐 소중히 간직해왔던 것으로, “자료가 더 훼손되기 전에 많은 이들과 나눠보기 위해서” 자료원에 기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