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매일이 생일 같은 행복한 갈색 눈동자, <아멜리에> 오드리 토투
2001-10-31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어쩌면 좋아. 섹스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 아래 누워 있는 여자의 표정이 왜 저런 거야? 저녁시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때나, 생일선물의 개봉을 기다리는 아이 같은 표정. 누가 옆구리를 찌르면 당장이라도 ‘푸하하핫’ 웃음을 터트릴 것 같은 여자. 세상의 가장 어둡고 은밀한 곳에 놔둔다고 해도 그만의 밝은 빛을 숨기지 못하고 발할, 몽마르트르의 웨이트리스 아가씨 아멜리에의 덜컥거리는 큰 신발은 그러나, 처음부터 오드리 토투의 발에 신겨졌던 건 아니다.

<아멜리에>의 첫 시사가 열리던 날. 장 피에르 주네는 2시간 뒤 자신의 생이 어떻게 바뀔는지 모르는 채, 초초하게 떨고 있는 신인배우 오드리 토투에게 이렇게 말한다. “토투, 영화가 끝나면 다른 여배우들로부터, 네가 그리 못하진 않았지만 나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 하는 둥의 불쾌한 말을 듣게 될지 몰라. 그래도 신경쓰지 마라.” 애초에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주인공이었던 에밀리 왓슨이 ‘아멜리에’ 역을 맡기로 되어 있었고, 그래서 영화의 제목도 그녀의 이름을 따왔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 에밀리 왓슨의 하차 이후 주네는 적당한 주인공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고, 많은 여배우들이 귀여움의 절정인 ‘아멜리에’가 되고자 몰려들었다. 그러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다른 배우들과는 다른 몸동작과 독특한 모양의 미소”를 가진 오드리 토투에게 신겨졌고 첫 시사 뒤 쏟아진 기립박수로 주네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한다.

당장이라도 ‘웁웁웁’ 같은 소리가 튀어나올 듯한 독특한 모양의 입술, 프랑스에서만 800만이 넘는 사람들을 결박시킨 커다란 밤색 눈동자. 물론 미인이긴 하지만, 오드리 토투는 참 희한하게 생겼다. “광각에 특이하게 반응하는 얼굴”이라는 주네의 말대로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쳐다보는 <아멜리에>의 포스터 이미지는 한번 보면 쉽게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양 갈래로 딴 머리에 분홍색 유니폼, 세상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팔장을 끼고 딴청을 피우는 듯한 <비너스 보테>(Venus Beaute)(*V다음e에 악상떼기,t다음 e에도)의 포스터에서 주네가 잠시 멍해졌던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음… 일단 바칼로레아 시험을 쳐야겠어.” 오베르뉴 지방의 몽뤼송에서 태어나 오드리 헵번을 사랑한 부모님 덕에 ‘오드리’라는 이름을 내려받은 소녀는 14살 때까지 인류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학대학에 진학하고자 파리로 왔을 때까지만 해도, 토투는 자신이 배우의 길에 들어설지는 몰랐다. 우연히 듣게 된 연극수업을 통해 <주된 고객> 등 몇몇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를 얻던 시절, 토투는 몸매를 드러내는 피트한 옷 대신 수녀처럼 온몸을 가린 평범한 의상으로 오디션장을 찾아 다른 지망생들과 차별화시켰고 그렇게 따낸 TV영화의 배역으로 서서히 자신을 단련시켜나갔다.

<아멜리에>가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다면, 토투의 가능성을 증명시킨 것은 토니 마샬 감독의 <비너스 보테>. 토투는 이 영화에서 아버지뻘의 남자와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귀여운 미용사 마리안느로 분해 세자르의 신인여자배우상을 움켜쥐었고, 이후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아멜리에>를 비롯해 로랑 피르드의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아리에 마랭의 <나와 결혼해줘> 등 많은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다. 최근엔 영국감독 스티븐 프리어즈의 신작 <더티 프리티 싱>에서 한 고급호텔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척하는 터키계 객실 종업원으로 출연하기로 결정하면서 처음으로 프랑스 국경을 넘을 예정이다.

78년생, 올해 23살인 토투의 나이를 가늠하긴 쉽지 않다. <아멜리에>에서 보여준 이마를 반쯤 가린 껑충한 앞머리와 늘 무슨 일을 꾸밀 듯한 장난스런 미소는 그대로 열다섯 소녀 같지만, 시상식장이나 인터뷰장에서 드러낸 침착하면서 조용한 토투의 표정은 오히려 여인의 그것에 가깝다. 엉뚱하면서도 수줍은, 순수하면서도 매혹적인, 그런 오드리 토투가 좋아하는 것은 차에 우유를 부을 때 생기는 구름 같은 무늬, 좋아하지 않는 것은 엽서 고르기!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