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글렌 한사드, 마르케타 이글로바] “관객도 보는 내내 우리의 우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2007-10-17
글 : 오정연
<원스>의 두 주인공 글렌 한사드, 마르케타 이글로바 서면 인터뷰

선댄스 관객상 수상 이후 올해의 인디영화로 꼽힐 정도의 흥행을 기록한 음악영화 <원스>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지구 반대편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20일 국내 개봉하여 3주 만에 6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고, 10개관이었던 개봉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 지난 10월11일에는 17개에 이르렀다. 거리의 악사와 그의 음악을 알아본 이민자 소녀의 수줍은 사랑 이야기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음악. 이 성공담의 진짜 주인공을 존 카니 감독이 아닌, 두 주연배우 글렌 한사드(남자)와 마르케타 이글로바(소녀)로 꼽아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유명 밴드 ‘더 프레임즈’(The Frames)에 몸담았던 카니 감독은 자신의 초저예산 장편이 성공하기 위해 실제 뮤지션이 배우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밴드의 리더이자 감독의 오랜 친구 글렌 한사드가 합류했고, 한사드는 체코 순회공연 때 만난 마르케타 이글로바를 끌어들였다. 영화보다는 음악을, 대중적 성공보다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우선시한 이들의 ‘잼 세션’은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원스>의 미국 개봉과 함께 시작한 전세계 프로모션 투어를 여전히 함께하고 있는 두명의 배우에게 서면으로 질문을 전달했다. 영화만큼이나 소박한 태도로 갑작스런 유명세를 즐기는 이들의 답변은 영화 속 그들과 묘하게 겹치고 어긋난다. 음유시인다운 면모로 영화와 인생을 바라보는 한사드는 그 남자보다 현명하고, 소녀다운 설렘과 풋풋함을 간직한 이글로바의 답변은 그 소녀보다 솔직하다. 어느 쪽이 더욱 사랑스러운지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원스>는 현재 한국에서 작은 영화로서 큰 성공을 거두는 중이고, 미국에서도 굉장한 성공을 기록했다. 예상 밖의 유명세가 아직도 낯설지 않을까. 이로 인한 신상의 변화는 어떤 것이 있나.
=마르게타 이글로바: 사실 어릴 때 난 나중에 커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의 유년기는 완벽했고, 어른이 된 뒤의 내 모습이나 직업에 대해서는 전혀 계획한 바가 없었다.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노래를 불렀는데, 음악을 듣고 뮤지컬을 좋아하면서도 뮤지션이나 배우로서의 꿈은 한번도 가져보지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13살 때 글렌을 만나면서, 나 역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글렌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던 그 시기에야 싱어송라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이젠 그 꿈을 이루게 됐지만, 여전히 난 이것이 언젠가 끝나게 될 내 삶의 한 장(章)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새로운 뭔가를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물론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즐길 뿐이다!
=글렌 한사드: 물론 나의 일상이 이 영화로 인해 많이 변했다. 하지만 그저 조금 더 바빠진 정도고 별로 대단하지 않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이렇게 주위의 모든 것들이 속도를 내면서 나의 통제를 벗어날 때는 스스로 기본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아마도 다른 모든 물결처럼 이것 역시 잠시 동안 밀려오다가 결국은 속도를 늦추고 지나가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즐기려고 한다. 나와 마르케타, 존, 세 사람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스스로 자랑스럽기 위해 영화를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 모두가 개입된 굉장히 사적인 영화였고, 대중이나 매체가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영화가 선댄스에 초청됐다는 말을 듣고, 이처럼 작은 영화가 그런 기회를 얻은 것에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으니까. 음악적으로는, <원스>가 미국에서 성공한 이후 ‘더 프레임즈’의 앨범 판매 역시 엄청나게 증가했다. 영화적으로는, 몇몇 영화에서 캐스팅 제의도 들어오고는 있지만 아직 시나리오를 읽어볼 시간도 없었다. 스스로를 배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존경하는 누군가의 제안이기만 하다면 기쁜 마음으로 임하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우선이고, 가장 기쁘게 임할 수 있는 건 음악이다. 이 밖에도 나와 마르케타는 현재 새로운 ‘스웰 시즌’의 음반을 내려고 준비 중인데, 내년 4월쯤에는 녹음할 시간이 나지 않을까 싶다.

-남자가 더블린 번화가에서 노래하는 장면은 모두 행인을 통제하지 않은 채 촬영했다던데. 당신이 리더인 밴드 ‘더 프레임즈’가 아일랜드에서는 무척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글렌 한사드: 사실 그 부분이 <원스>를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시간도 제일 많이 걸렸다. 촬영허가도 전혀 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갖가지 장애가 많았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극중에서 남자는 완전한 무명가수 아닌가! 경찰이 촬영을 제지한 적도 종종 있었다. 일상적인 문제로는 도시의 각종 소음들. 사이렌 소리며 청소기 소음, 비행기 소리 등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거리에서 게릴라 스타일로 영화를 찍는 것에 어떤 짜릿함을 느낀다. 베르너 헤어초크가 “현대영화의 문제는 영화의 범죄적(criminal) 요소를 점점 잃어간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는 게릴라 영화의 짜릿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원스>에 나오는 8, 9곡의 노래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글렌 한사드: <If You Want Me>. 마르케타가 촬영 1시간 전에 완성한 노래다. 나는 이것이 긍지와 강단을 갖춘 훌륭한 여성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 노래가 나올 때 마르케타의 연기는 굉장히 설득력있어 보인다. 촬영을 할 때나 나중에 스크린에서 볼 때나 그 장면은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마르게타 이글로바: 영화에 포함된 모든 노래를 좋아해서, 제일 좋아하는 걸 고르기가 매우 어려운데, 굳이 답하자면, <Say It to Me Now>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영화의 도입부에 글렌이 거리에서 부른 노래인데, 글렌의 오랜 노래이고, 개인적으로는 항상 좋아했던 노래이기도 하다. 가사가 매우 인상적인데, 글렌이 그런 부분을 매우 잘 살렸다. 영화 속 글렌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도 굉장히 효과적이었던 것 같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보니, 작사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마르게타 이글로바: 아무래도 모국어가 아니니까 영어로 작사를 하면서 곤란함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 맘처럼 우아하게 나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글렌이 곁에서 좀더 부드럽고 좋은 가사를 만들수 있는 제안을 해줬다. 글렌과 함께 노래를 만들면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노래를 만드는 건 언제나 매우 즐거운 과정이다. 특히 글렌처럼 재능있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더욱.

-영화를 찍기 전 꽤나 밀접하게 감독과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 어떤 준비를 했나.
=글렌 한사드: 과연 우리가 연기할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토론했다. 촬영 직전 몇주 동안은 많은 영화를 함께 봤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봤는데, 그 영화가 파리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듯이 <원스>로 더블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존은 마르케타에게 촬영 전에 몇몇 영화를 보라고 주문해다. 이를테면 존 카사베츠의 <영향 아래 있는 여자>에서 지나 롤렌즈의 연기를 보고,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에서는 두 주인공 사이에 있는 언어로 인한 장벽을, <그녀에게>에서는 카에타노 벨로소가 <쿠쿠루쿠 팔로마>를 부르는 순간을, 다르덴 형제의 <차일드>에서는 어떤 감성을, <쉘부르의 우산>에서는 위대한 뮤지컬의 면모를 중심으로 보라는 식이었다. 결국 <원스>를 촬영하기 직전 우리 모두는 영화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가지게 됐고, 영화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상태가 됐다.

-존 카니 감독이 이 영화에 당신들을 캐스팅한 것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비전문 배우들의 개인적인 면모를 영화 속 캐릭터와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당신들의 캐릭터가 반영되어, 시나리오가 달라진 장면이 있다면.
=마르게타 이글로바: 내가 연기한 소녀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잘 구축되어 있었던 편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그녀가 굉장히 맘에 들었다. 애초 시나리오에는 그저 동유럽 소녀라고만 묘사됐다가, 내가 캐스팅되면서 체코 소녀로 바뀌었는데, 그게 굉장히 좋았다. (웃음) 내 생각에 이 영화에 나와 글렌 때문에 변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우리 둘의 우정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관객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그걸 느끼지 않았을까.
=글렌 한사드: 촬영 당시에는 정말이지 너무 바빠서 중대한 불일치가 생길 여유도 없었다. 모든 것은 촬영하기 전에 이미 결정돼 있었다. 현장에선 그저 빨리빨리, 문제를 해결하면서 진행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현장에서 존은 최종 결정권자였고, 그러다보니 모든 논란은 쉽게 해결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마지막에 말하는 건 그였으니까. 남자와 소녀가 버스 안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소녀가 남자에게 전 여자친구에 대해 질문하는 장면이 있었다. 근데 아무래도 대사가 붙지 않고, 정체된 상태에서 존이 말했다. “오케이, 당신들이 비전문 배우니까 이런 약점이 있는 건 당연하고, 별 문제될 것 없다. 그렇다면 글렌, 기타를 꺼내서 (노래로) 여자의 질문에 대답해봐라. 어떻게 되는지 한번 지켜보자.” 당연히 우리는 긴장을 풀 수 있었고, 문제는 해결됐다. <후버 청소기 수리사의 노래>는 그렇게 즉흥적으로 완성됐다.

-그런데, 제목이 <원스>인 이유가 무엇인가.
=글렌 한사드: 내 입장에서 ‘원스’라는 말은 몇 가지 의미가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그 단어를 사용해서 남자의 상태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음반을 만들기만 한다면(once I make a record) 행복해질 텐데”, “여자친구를 되찾기만 한다면 삶이 나아질 텐데” 처럼 말이다. 또한 이것은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로 시작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목의 ‘공식적인’ 유래는 사실, 존이 애초에 시나리오를 쓸 때, 남자와 여자가 단 한번(once)의 키스를 나눈다는 점이었다. 물론 나중에 존이 키스신을 시나리오에서 빼버렸지만.

-나이를 먹었지만 철이 없어 보이는 남자와 달리, 소녀는 강단있고 현명하면서도 천진하다. 소녀의 어떤 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 혹시 못마땅한 면은 없었나.
=마르게타 이글로바: 나 역시 그녀의 강인하고 단단하고 용감한 면모가 맘에 든다. 그녀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또한 그녀가 남자의 능력을 믿고, 그를 지지하면서, 그에게 영감을 주는 등 완벽하게 이타적인 면도 좋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너무 모든 책임을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고, 심지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주변 사람들을 완벽하게 돌보려 하는 모습이다. 그런 게 꼭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남자는 런던의 지하철에 앉아 있고, 여자는 돌아온 남편, 아이가 있는 집에서 남자가 선물한 피아노를 친다. 매우 인상적인 엔딩인데, 개인적으로는 그 두 사람이 그 뒤 어떤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나.
=글렌 한사드: 남자는 결국 여자친구를 찾고, 그녀와 함께 일상을 꾸려갈 거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는 음악을 포기하고 여자친구를 위해 뭔가 현실적인 직업을 얻지 않을까 싶다. 내가 볼 때 그는 매우 단순한 사람이고, 뮤지션으로서 대단한 야망도 없는 것 같다. 그는 단지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었을 뿐이다. 일종의 일기처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행복할 때는 일기를 잘 쓰지 않게 되지 않나. 그 역시, 다시 행복해진다면 더이상 노래를 만들 필요는 없겠지.
=마르게타 이글로바: 그녀과 그 남편이 사랑을 되찾고 서로의 과거를 용서했음 한다. 그래서 소녀가 다른 남자를 떠나보낸 걸 후회하지 않도록. 그렇게 그 가족이 아일랜드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고, 괜찮은 삶을 꾸릴 만큼 충분한 돈을 벌게 되길 바란다.

-질문이 좀 유치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양해 바란다. 음악과 영화 중 어떤 것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나.
=마르게타 이글로바: 두 종류의 예술 중에서 무엇이 더 훌륭한지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예술이 모든 예술가에게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모든 예술은 동등하게 가치가 있다. 영화를 보는 것을 음악을 듣는 것만큼이나 좋아하지만, 나에게 음악이 좀더 편안하고 즐기는 일인 건 사실이다. 게다가 음악을 만드는 건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지 않나!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글렌 한사드: 아직도 영화 때문에 매우 바쁜 상태다. 내년 3월에는 뉴욕에 가서 영화연출을 공부하려 한다. ‘스웰 시즌’(The Swell Season, 한사드가 처음으로 만든 솔로 앨범으로 마르케타와 함께 만들었다)의 또 다른 앨범을 곧 내야겠지만, ‘더 프레임즈’의 또 다른 앨범도 만들고도 싶다. 나와 마르케타의 관계는… 우리 둘은 이번 영화를 비롯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매우 가까워졌는데, 우리에게 그건 매우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앞으로는 그저 이 관계가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지.
=마르게타 이글로바: <원스>를 홍보하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중이다. 이 여행은 앞으로 6개월간 계속될 텐데, 중간중간 새로운 노래를 만들면서 ‘스웰 시즌’의 새 앨범을 준비 중이다. 이 여행이 끝나면, 개인적으로도 계속 노래를 만들 것 같다. 운이 좋다면, 그 음악들이 또 다른 영화에 사용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언젠가 그 노래들을 모아서 앨범으로 만들고는 싶다. 연기에 대해서는… 또 다른 영화에 출연해도 좋고, 더이상 연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 개인적인 장래희망은 언어를 공부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를 갖고, 집을 장만하고, 가족이며 친구와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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