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원스> 일상의 조각들로 짠 기적의 퀼트
2007-10-25
글 : 조선희 (한국영상자료원장)
사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안겨주는 소박하지만 잊을 수 없는 영화 <원스>

최근 어떤 자리에서 한 선배가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도 공감했다. 내 자신의 내부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릴 수밖에 없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배신과 훼절과 변태의 충동들! 다른 사람들의 처지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정말 사람은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또 다음 순간, 그 욕망의 도발을 잠재우고 정리하는 힘이 어김없이 작동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라는 게 또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거로구나, 하고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영화관 객석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원스> 같은 영화를 볼 때, 욕망과 충동의 지뢰밭 위에서 날밤 새우는 우리의 슈퍼에고가 마치 적진에서 구원병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한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사랑이라는 것, 마르고 닳도록 써먹은 그 진부한 재료를 가지고 여전히 전혀 손을 타지 않은, 그처럼 새뜻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예전에 빨간 아우디 오픈카를 산 어떤 여인으로부터 “차를 사고 나서 남자들이 프러포즈해오면 헷갈려. 날 좋아하는 건지. 내 차를 좋아하는 건지” 하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하지만 별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사이는 이해관계의 덧칠이 없으니 모든 것이 투명하다. 사랑도 투명하다. <원스>의 주인공 남자는 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진공청소기 수리공이다(전자회사들의 A/S시스템이 눈부시게 발달한 우리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는 직업이다. 그러면 아일랜드에는 냉장고수리공, 세탁기수리공도 있을까).

가난함에서 싹튼 자유로운 상상력의 희망

<원스>가 주는 것은 할리우드 역사에 즐비한 ‘웰 메이드 무비’ 속에 들어 있는 ‘컨벤셔널’한 희망과 감동과는 다른 것이다. <원스>는 <원 나잇 스탠드>의 근육질과는 물론 다르고 <비포 선라이즈>의 발랄상큼함과도 다르다. <원스>에는 기적처럼 반짝이는 뭔가가 있다. 사랑을 기적의 판타지로 끌고 간 극점에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가 있지만 <원스>에서 기적은 일상의 조각들로 퀼트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녀에게>와 다르다.

존 카니 감독은 15만달러의 제작비로 영화를 찍었고 이 영화는 배급사에 100만달러에 팔려서 1천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제작비는 아일랜드영화위원회에서 지원받았고 17일 동안 디지털 캠코더로 영화를 찍었다. <원스>의 상영관 입구에는 ‘화면상태가 고르지 않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카니 감독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감독들처럼 세트도 없이 전문배우도 없이 거리에서 영화를 찍었다. 1972년생인 카니 감독이 전후 이탈리아 좌파감독들과 정치적 견해 및 영화철학을 공유한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양자 사이의 공통점은 어쩌면 ‘가난하다’는 한 가지였는지 모른다. 할리우드에서도 멀리멀리 떨어진 아일랜드, 아일랜드에서도 비디오 캠코더 달랑 메고 헤매는 게릴라 작가, 그 시스템의 자유지대에서 꿈틀대는 상상력은 이탈리아 좌파감독들의 혁명적인 상상력과 만날 수도 있다. 변방에서 혁명이 싹튼다고.

뮤지컬영화의 역사에 새로운 스타일 하나를 추가하는 이 영화의 입지도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과장된 제스처, 작위적인 연출 등 전통적인 뮤지컬영화의 관습을 가뿐히 젖히고 감독 자신의 표현대로 ‘일종의 비주얼 앨범과 같은 느낌의 현대적인 뮤지컬’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어긋남 사이에 찾아오는 완전한 화음들

이 영화에는 몇번의 완전한 화음이 있다. 삶이 온갖 어긋남들투성인 것처럼 이 영화도 그렇다. 대화가 어긋나고 관계가 어긋나고 기대가 어긋나고 행로가 어긋나고. 런던에 함께 가서 밴드 결성하고 곡을 쓰고 노래 부르고 피아노 치고 앨범 녹음하고… 하던 이들의 약속도 어긋난다. 하지만 그 어긋나고 또 어긋나고 하는 사이사이에 완전함에 가까운 몇번의 화음이 있다. 소리의 완전한 화음, 그리고 사람 사이의 완전한 상태. 거리의 가수가 체코 소녀를 두 번째 만나는 날 피아노 가게에서 기타와 피아노 반주와 함께 화음을 맞추던 바로 그 점심시간. 데모CD 녹음을 마친 날 새벽 너무나 아일랜드다운 황량한 바닷가에서 멤버들이 원반던지기를 하며 놀던 시간. 그 완전한 순간들, 결국 지나가고 마는 것일지라도, 결국 깨어지고 마는 것일지라도, 나는 나중에 그 순간들을 떠올릴 때 아주 잠깐씩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곤 한다. 또한, 소녀가 선물받은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튕기면서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영화를 잊기 싫어서,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로부터 잊혀지는 것이 싫어서, 나는 영화 속의 소녀 이글로바의 목소리로 <If You Want Me>를 듣는다. 불법다운로드 추방캠페인에 서명도 하고 사진도 찍었지만 O.S.T를 사러나가기 전까지는 하는 수 없다. 후배가 보내준 다운로드 파일을 듣고 또 듣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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