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의 영화는 위험했다. 강원도 시골 총각으로 분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희철이나, 반항과 애교를 함께 품고 있던 <늑대의 유혹>의 태성, 사형수의 세월을 눈물과 사랑으로 토해냈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윤수는 모두 강동원이란 피사체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배반하고 위협했다. 큰 키와 작은 얼굴, 여리게 떨어지는 팔과 몸의 라인은 영화란 텍스트를 담아내기에 서툴러 보였고, 슬랩스틱코미디(<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친근함, 애달픈 사랑(<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뜨거운 눈물은 마치 그의 것이 아닌 양 어색해 보였다. 그의 정적인 이미지를 최대한 살려낸 영화 <늑대의 유혹>에서조차 그는 애교 섞인 대사와 누나란 호칭 앞에서 왠지 주저하는 것 같았다. 웃음을 주기에 그는 냉정해 보였고, 사랑을 하기엔 다소 무심해 보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두 남녀의 애절한 사연보다는 강동원과 이나영이 가진 신비로운 느낌이 죽음 앞의 사랑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꾸며내 성공한 영화에 가깝다. 이는 CF와 런웨이로 활동을 시작한 그의 이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동원의 얼굴과 몸, 나아가 그가 옷을 통해 표현하는 분위기와도 관련이 깊다. 강동원의 옷은 아무리 화려한 장식을 달고 있어도 무심한 뉘앙스를 풍긴다. 마른 남자를 패션의 새로운 모델로 내세웠던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의 옷을 그는 국내 연예인 중 가장 먼저 입었고, 이와 반대로 화려한 라인 보단 모던함과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일본 브랜드의 최신 트렌드도 누구보다 잘 소화한다. 일본 브랜드 중 하나인 넘버나인의 디자이너 미야시타 다카히로도 “강동원이라면 옷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첨단의 패션을 입지만 이를 절대 선도하려 하지 않는 강동원. 트렌드 세터이자 무심한 패셔니스타인 그가 대중과 갖는 거리는 마치 캐릭터와 이미지 사이에 작용하는 일종의 척력 같아 보인다.
하지만 <형사 Duelist>와 <M>은 다르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 <늑대의 유혹>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강동원이 연기한 게 이야기였다면 <형사 Duelist>와 <M>에서 그는 이미지를 연기한다. 심지어 <M>은 미스터리, 안개, 멜로, 메모리, 몬스터 등 강동원으로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를 M이란 이니셜로 열거한다. 그리고 강동원은 마치 자신이 뿌려놓은 이미지의 이니셜을 하나씩 주어가듯 미스터리와 안개 속을 헤매고 멜로와 메모리를 더듬은 뒤 몬스터의 형상으로 사라진다. 기억과 꿈을 찾아나선 한 남자의 이야기인 <M>은 어떤 의미에서 강동원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단편들을 유영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강동원은 <M>에서 더이상 자신의 고향 사투리(드라마 <위풍당당 그녀>와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쓰지 않고, 몸을 가려 비밀스러움(<그놈 목소리>)을 만들지도 않는다. 이명세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겠지만 강동원은 <M>에서 자신이 가진 정적인 이미지를 광기와 코미디로 변주하고 과장의 액션으로 가능한 경우의 수를 시험한다. 이는 <형사 Duelist>에서 보여준 리듬감의 연장이며, <그녀를 믿지 마세요> <늑대의 유혹>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에서 미끄러진 캐릭터들의 변형이다. “표면에, 스크린에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이명세 감독을 만나 희미했던 영화적 고집을 확신하게 됐다는 강동원. 그는 <M>을 통해 자신의 이니셜이 가진 능력을, 그 뒤에 숨겨진 비밀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M>은 <형사 Duelist>를 찍을 때부터 이명세 감독과 다시 같이 하기로 했던 작품이라고 들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느낌은 어땠나.
=처음엔 나랑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단 내가 하고 싶었던 캐릭터가 아니고, 재미를 못 느꼈다. 물론 분명히 재미있는 장면이나 하고 싶은 신들은 있었지만 전체적인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워낙 자신하셔셔. (웃음) 여러 가지 준비해보니 재밌기도 했고.
-<형사 Duelist>를 하면서 이명세 감독에 대한 믿음이 생긴 건가.
=그렇다. 완전히 믿었다. 내가 디테일하고 치밀한 걸 좋아하는데, (스튜디오에 음악이 들리자) 저기 음악 좀요. 감독님도 그런 부분이 장난이 아니더라.
-상대방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일식집 장면이나, 동일한 대사를 반복적으로 소리높여 하는 대목이 있다. 그 부분들이 전체적인 영화에서 조금 튀는 느낌을 주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일단 영화가 현실적인 톤은 아니지 않나. 꿈인지 소설인지. 민우의 상상이라 생각하고 연기했다. 더 과장되게 한 테이크도 있다. 행동이나 대사를 더 크게 하고 다음엔 좀 줄여서 하고. 영화에서 쓴 건 줄인 테이크다.
-본인은 일식집 장면이 가장 즐거웠다고 한 멘트를 봤다.
=즐겁기도 했고 민우에게는 가장 중요한 신이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상황이 조금씩 바뀌면서 반복되지 않나. 민우가 많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도 있었고, 이게 꿈인지 소설인지에 대한 의문도 던져줘야 했다. 마지막에는 민우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완전히 뒤섞여서, 뭐라고 해야 할까, 멋지게 말하면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허물어진달까.
-연기가 어색하다기 보다 그 장면을 즐거워했다는 멘트가 어색하게 다가왔다. 가령 그 장면의 연기는 분명 강동원에게 있어 의외의 이미지인데 그걸 표현한다는 걸 단지 즐겁다고 느꼈을까 싶었다.
=글쎄.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제일 욕심났던 신이 일식집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있나보다. (웃음) 연기할 때도 당연히 그 장면들이 가장 재밌었다. 편집을 하면서 끊어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네신 중 두신은 원테이크로 갔다.
-음, 가령 이번 영화에서 지르는 장면들도 그렇다. 일반적인 감정을 폭발시키는 지르기는 아니지 않나. 그런 느낌들이 기존의 강동원 이미지와 부딪치는 부분이 있다.
=나는 멋진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연기를 잘해서 멋져 보일 순 있다고 생각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한 이미지를 통으로만 기억하고 있어서는 아닐까. 이번 영화에서 지르기가 목표라고 한 것도 감정을 폭발시키는 지르기라기보다는 그냥 카메라 앞에서 놀아보자는 의미였다. 준비는 최소한으로 하고 카메라 앞에서 다 쏟아보자고. 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분이 일식집 장면을 어떻게 본 건가. (웃음) 기자님도 아까 일식집 장면이 약간 떠 보이는 것 같다고 한 것 같은데, 그런데 그건 미미도 그렇지 않나. 음, 이런 것도 있다. 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스타일이라 항상 계획을 짜거나 무언가 디자인을 하는데, 어쩔 때는 내가 지금 입 밖으로 말을 했는지 속으로 생각만 한 건지 구분이 안 간다. 화장실에 앉아서 생각을 하다가도 그렇다. 앞에서 욕하고 싶을 때도 차마 직접 말하진 못하고 속으로 ‘이 한심한 인간아’라고 생각할 때가 있지 않나. (웃음) 뭐, 그 장면이 튀어 보였다면 비단 내 연기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웃음) 감독님이 분명히 그렇게 요구하셨고(웃음), ‘다금바리 한 접시’도 감독님이 시킨 거다. 감독님은 꼭 자기는 모르는 것처럼 대답하셨더라. 나는 모르는 일인데 그렇게 느껴졌다면 그건 걔 잘못이지 않겠느냐, 뭐 이런 식으로. (웃음) 같은 배를 타고 혼자 빠지시기는. (웃음) 그 대답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웃음) 질문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대답이 마음에 더 안 들었다. (웃음)
-어떤 의미에서 <M>이 강동원의 이미지를 굉장히 많이 의식한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강동원의 이미지를 이니셜로 늘어놓고 그 안에서 미로를 즐기는 듯한. 그리고 <M>에서의 다소 과장되고 인공적인 연기도 그 이미지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유형의 연기, 배우를 본다는 건 즐겁다. 잘하거나 못하는 연기가 아니라서 반갑기도 하고.
=엄청 좋은 칭찬인 것 같은데. 나는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인데. (웃음) 아, 요즘엔 좀 보는구나. 일단 누군가를 쫓아가는 건 싫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기 발자국을 남기고 누군가가 따라와주길 바라지 누가 이미 간 길을 따라가는 건 재미가 없지 않나.
-이명세 감독은 강동원이 감정을 연기하는 것보다 세트에서의 촬영, 상황을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 이 부분이 아까 이야기한 당신의 연기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계산적이거나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느낌은 빠르다고 생각한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내 장점이라면 순간 집중력이 좋다는 거. 대신 길게는 안 간다. (웃음) 잘 조절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캐치하는 건 내가 눈치가 빠른 편이라 그런 것 같고. 물론 단점도 많다.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면 이명세 감독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는데 그게 본인의 연기에 끼치는 영향이 있나.
=훨씬 편해졌다. 예전에는 무조건 하나의 상황에 집중해서 반드시 이걸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내가 너무 집중을 하면 오히려 보기에 더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감정을 다 가지고 가면 좀 답답하다. <형사 Duelist>는 워낙 보여지는 면이 많아서 특별히 답답한 건 없었지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때에는 내 고집 부리고 감정을 다 가져갔더니 결과적으로 답답한 부분이 보였다. 이건 아니구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연기를 흉내내듯 한다는 건 아니지만 100%의 감정을 80%만 표현했을 때 오히려 120%의 느낌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다면 <형사 Duelist> 이후 본인의 연기, 영화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건가.
=달라졌다기보다는 좀더 확고해졌다. 내가 갈 방향을 찾았다는 느낌이랄까. 예전엔 ‘어떤 연기자가 되어야 하나’, ‘나의 연기 톤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면 <형사 Duelist>를 하면서는 그냥 내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정된 이미지나 연기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나의 작품을 하고 다른 작품을 했을 때 전작의 느낌이 다시 묻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배우로서의 욕심이나 꿈도 훨씬 커졌다. 하지만 <형사 Duelist>나 <M>이 계기가 돼서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M>은 어차피 흘러갈 거고 또 새로운 작품이 올 거다. 그렇게 하나하나 배워가고, 끝날 때마다 발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형사 Duelist>를 하면서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하면 이명세 감독님과 만났다는 것. 지금까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이 세분 있는데 첫 번째가 중학교 2, 3학년 때 담임이었던 하정아 선생님이고, 두 번째가 전 소속사 사장님, 세 번째가 이명세 감독님이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은 어떤 점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그분이 항상 하셨던 말씀이 진실되게 살라는 거였다. 그게 어린 마음에 크게 다가왔다. 꼭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러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렇게 살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진심으로 다가가도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예전에 같이 다니던 매니저, 그 아래 있던 동생에게도 배신을 당했다. 하지만 상처가 아물면 다시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선생님의 가르침을 제일 잘 받아 잇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닐까, 정말로 장담한다. (웃음)
-낯을 많이 가린다고 하던데 일을 하는 데 어렵지 않나.
=일하는 데 있어서는 많이 나아진 편인데, 사적으로는 더 심해졌다. 일을 하다보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서 스트레스가 많아진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우물을 파고(웃음), 집에서 계속 삽질한다. 지금은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필요하다면 바꿀 생각은 있다. 집에서 우물 파는 게 내 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웃음)
-집에서 우물 팔 때는 주로 뭘 하나.
=음악 많이 듣고, 공부도 하고. 영어공부, 조금, 대충, 독학으로 한다. (웃음)
-스트레스는 어디서 제일 많이 받나.
=사람들에게. 내 계획이 틀어지면서 오는 스트레스도 크다. 내가 좀 융통성이 없어서, 성격이 안 좋다. (웃음) 어찌됐든 나는 보여지는 직업을 갖고 있으니까 상대방이 어떤 잘못을 해도 나에게 돌아오는 게 있다. 그래서 요즘엔 차라리 아무것도 안 부딪혔으면 좋겠다. 물론 마음이 더 넓어지면…. 글쎄, 예전엔 이 모든 걸 다 수용하는 삶을 추구했다. 그게 진짜 옳은 줄 알았고, 사람이라면 자신의 인격 형성을 위해서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다 필요가 없더라. 내가 모든 걸 다 받아들이면 정작 내가 가야 할 길은 못 간다. 요즘엔 귀 막고 내 길만 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도 구설수가 적은 편 아닌가.
=나는 뒷소문이 많다. 못됐다고. 까탈스럽다, 뭐 정신병 수준이다. 나를 잘 모르는 분들이 이런 말을 한다.
-그럼 이제 그런 말에는 어떻게 대처하나.
=옛날에는 그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훨씬 재밌고, 어느 정도는 그냥 차단한다.
-미니홈피도 하지 않는 것 같더라.
=그건 가입해본 적이 없다. 아주 싫어한다. 공대생이라 인터넷에서도 웬만하면 단축키 쓸 정도로 컴퓨터랑 친하지만 미니홈피는 싫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남들이 알면 무서워서. (웃음) 사생활에 대해서는 확실히 선을 긋고 거기에 침범하면 아주 불쾌해다. 나는 팬클럽도 없다.
-예전에 팬덤 취재를 하면서 강동원 팬카페 운영진을 만났더니 어디서 뭘 하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밖에서 팬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미안하다.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사고가 있을 수도 있고. 팬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혼자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웃음) 팬들이 나를 쫓아오면 그 자체가 미안하다. 차라리 만나서 이야기하면 좋겠는데 그건 또 불가능하고. 미안하니까 차라리 안 받았으면 좋겠다. (웃음) 10시간씩 기다려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악수나 인사 정도지 않나. 팬클럽을 안 만드는 건 내가 감당할 여건이 안 돼서지만 만들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일년에 한두번 가서 노래하고, 같이 놀고. 이것뿐이지 않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고.
-본인 스스로 완벽주의자란 말을 하는데 평소 생활에서도 그런가.
=아버지가 워낙 꼼꼼하셔서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일단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에 대해선 철두철미한 편이다.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청소, 옷정리 이런 건 엉망이지만. 옷방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웃음)
-완벽주의자라고 의식하게 된 건 언제부턴가.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다. 기숙사 학교에 들어갔는데 거기서부터 내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사회생활이 시작됐다고 할 만한 변화가 있었던 건가.
=십몇년 동안 가족들과 지내다 생판 모르는 애들과 만나서 지내야 했으니.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고, 한방에 12명씩 잤다. 군대 내무반이랑 똑같다.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공간은 딱 어깨 너비 정도밖에 안 되고. 그러다보니 친구들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 트러블을 해결해나가는 방법, 이런 게 중요했다.
-학창 시절은 어땠나.
=나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에게 ‘나는 애들하고 사이좋고 잘 지냈잖아’ 그랬더니 그 친구가 ‘웃기고 있네’라고 하더라. (웃음) 되게 까탈스러웠고, 친구들한테 냉정했다고. 따뜻한 말 잘 안 건네고, 친구에게 좋아한다 고백도 안 하는 스타일이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했다고 알고 있다. 처음엔 연기할 맘이 전혀 없었나.
=연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길거리 캐스팅은 안산에서 학교 다닐 때였는데 서울에 놀러갔다가 명함을 받았다. 그런데 그렇게 찾아간 곳이 질이 매우 안 좋은 곳이었다. 나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가수를 하라고 하더라. 매일 노래 연습, 춤 연습 시키고, 거기 소속된 가수들 CD 돌리게 하고, 포스터 붙이게 하고. 그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밥도 안 사줬다. 매일 친구랑 빵, 우유, 컵라면 먹으면서 왔다갔다 했다. 차 끊기면 거기 가수들 자는 숙소에서 눈치보며 끼어 자고. 나중에 부모님이 잘 해결했고, 촬영하면서 만난 분이랑 마음이 맞아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 거기서 연기 수업을 3년 받았다. 막연했지만 연기가 나에게 잘 맞는 것 같았고, 내가 할 일을 찾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그게(<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연기) 3년 넘게 수업 받은 거다. (웃음)
-배우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쇼에 섰던 건가.
=그렇다. 모델이 되고 싶은 꿈도 전혀 없었다. 처음엔 창피했다. 패션쇼는 지금도 별로 안 좋아한다. 예전에 한 인터뷰를 보면 모델하던 때가 그립다고 했는데, 다시 하라고 하면 별로 하고 싶진 않다. (웃음)
-키는 언제부터 컸나.
=중학교 입학할 때 154cm였고, 중학교 졸업할 때 183cm였다. 중2 때, 1년 안에 다 컸다.
-몸이 그렇게 변하면 자기 몸에 대해 인식하게 되지 않나. 옷도 어떻게 입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중학교 1학년 봄소풍 때 사회를 본 적이 있다. 말을 잘해서 본 게 아니라 당시 성적이 좀 좋다는 이유로 어떤 여자아이랑 사회를 봤다. 그냥 모범생이라서. (웃음)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란 게 중학교 봄소풍 때 추리닝을 입고 온 사람이 나밖에 없더라. ‘브렌따노’ 초록색 추리닝 바지에 흐물흐물해진 색 바랜 누런 목폴라를 입고 갔다. 처음으로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에게 이야기했는데 엄청 상처받으신 것 같더라. 그 이후에 옷에 신경 쓰기 시작했고, 부모님도 돈 되는 대로 최대한 지원해주셨다. (웃음) 당시 충격 때문에 그때부터 옷을 내가 직접 골랐고, 고등학생 때부터는 내가 직접 옷을 사입었다.
-그럼 고등학생 때에는 옷을 꽤 잘 입는 아이였겠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좀 꾸미는 아이? 조금은 잘 입는 아이였다. 항상 옷 잘 입는 애들을 따라잡고 싶었다. 나는 옷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경력이 짧으니까. (웃음) 무조건 돈 생기면 옷 사려고 저금했다.
-10월호 <에스콰이어>를 보니까 스타일리스트가 강동원이더라. 본인이 직접 스타일링한 건가.
=그렇다. 예전에도 한번 했었는데 그때는 기자분이 내 이름을 빠뜨렸다. (웃음) 이번엔 꼭 써주기로 했다. 지금 스타일링해주는 친구는 시크(chic)하고 플랫(flat)한 걸 잘하고, 나는 좀 복잡하고 그런지한 걸 좋아한다.
-예전에 한번은 화보 촬영차 호주에 가서 거의 모든 멀티숍을 뒤졌다고 하던데.
=그건 내가 잡지사쪽에 멋진 멀티숍을 찾아놔 달라고 부탁한 거다. 나를 호주까지 데려갈 거라면 그 정도 성의는 보여달라고. 알겠다고 했는데 못 찾아놨더라. (웃음)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았다. 그냥 돌아다니다 보면 멋진 멀티숍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렇게 쇼핑하는 걸 좋아해서 각 유명 도시의 괜찮은 숍들은 다 알고 있다.
-패션쪽 사람들은 강동원을 옷을 자기 몸처럼 소화시키는 컬러를 가졌다고 평하더라.
=일단 옷은 나에게 어울리는 게 기본이다. 그리고 그 위에 실험을 한다. 이건 재밌을까, 저건 어떨까. 새로운 디자이너를 찾아보기도 한다. 나를 꾸미는 걸 좋아하지 다른 사람을 꾸미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라서 직업적인 욕심은 없다. 오늘 같은 촬영도 나는 준비 못한다. 내가 하면 이상해질 거다. 하지만 저번에 일본에서 발행했던 사진집은 내가 스타일리스트, 사진작가, 디자인, 종이질까지 다 관여했다. 종이는 마음에 안 들어서 내가 1천만원을 지불했다. (웃음) 다른 화보집과는 달라서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