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묘사는 말자. 이연희는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외모를 가졌다. 그 첫사랑이 실재한 누군가든 아니면 가상의 누군가든 간에 말이다. 첫사랑 탐구에 일가를 이룬 이명세 감독의 선택이기도 하니 괜한 추어올림이나 사탕발림은 아니다. 뱉어내는 것보다 빨아들이는 것이 훨씬 많은 스무살 배우는 <M>에서 무엇을 건져올렸을까. 기다랗고 마른 팔을 휘저으며 이연희가 들려준 <M> 스토리.
Meet M
<M> 시나리오를 받은 건 지난해 9월이에요. 받고 당황했을 텐데…. 시나리오 건네주신 분도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어요. 근데 보고 나서 ‘저, 이해 다 했어요∼’ 그랬다니까요. 정말? 에이∼. 감정이나 느낌은 다 알 것 같았어요. 다만 이걸 어떻게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가 궁금했죠. 그때 저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다 드라마틱한 로맨틱코미디였어요. <M>은 특이한 이미지나 요소들이 맘에 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명세 감독은 이연희의 뭐가 좋았을까? 감독님이야 저의 존재조차 모르셨죠. 주변에서 추천받으셨다고 그랬는데. 첫 만남이 좀 뻘쭘했겠네요∼. 감독님은 그때 제가 의젓해 보여서 좋았다 하셨는데, 저도 그때 감독님 수염 보면서 ‘예술가는 다르구나’ 생각했죠. <M>에 대한 이야긴 두 번째 미팅에서 나눴는데요. 이해를 잘 못한 <형사 Duelist>를 다시 보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도 보고 갔어요. 근데 감독님의 질문들이 다 애매했어요. 너의 성격을 색깔로 표현하면 뭐니 뭐 이런 거. 배우 인터뷰 때 이런 질문 한 적 있는데 삼가야겠군요… 애매한 질문에 애매한 답변이 한참 오가다가 제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고 여기셨는지 감독님이 그냥 ‘나 믿고 영화 찍으라’고 하셨어요. 수술당하셨군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되면서도 이거 꼭 해야겠다고 무작정 끌리는 거예요. 유혹에 빠진 거죠.
Me, Mimi
시나리오는 거의 안 봤어요. 감독님은 외국에서 사오신 사진집이랑 뭉크 그림이랑 그런 걸 쓱쓱 넘겨보라고만 하셨어요. 촬영 전에도 리딩하자고 하신 게 아니라 세트장 구경하라고 하시고. 영화는 오직 내 머릿속에 있다는 말씀 같았어요. 감독의 머릿속이 좀 보이던가요? 1시간 전까지 콘티 수정하셨으니까 뭐 알긴 어렵고. 영화 보셨죠? 미미라는 인물이 순수하고 맑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쑥스러워하고 덤벙대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근데 꿈속에 사는 인물이니 그냥 표현하기도 좀 그렇고. 잘한 건 아니지만 감독님이 보여주신 극단적인 이미지들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사실 <백만장자의 첫사랑> 때는 은환이처럼 말고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김태균 감독님이 열어주셨는데 이번 영화는 반대였어요. 답답하진 않았나요? 처음엔 감독님의 요구가 너무 디테일해서 시연하시는 대로 똑같이 따라한 적도 있어요. 근데 그렇게 연기하고 나서 모니터를 보니까 안 좋더라고요. 이렇게 울어볼까요, 저렇게 해볼까요, 뭐 그렇게 감독님하고 인물을 손보면서 조금씩 가까워진 것 같아요. 근데 감독님을 끝까지 믿었어요? 잠에 빠져든 민우에게 일어나 보라고, 꿈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전 사실 바스트 잡아주면 정지 상태에서 대사를 치겠구나 싶었는데. 감독님은 빨리 대사치고 잡아당기라고 하셔서 당황했어요. <M>은 일반적인 영화의 감정이랑 달라요. 저도 찍을 땐 몰랐고 보고 나서야 느꼈으니까. <백만장자의 첫사랑> 때 촬영 중간에 고스톱 치며 시간 때운다고 했잫아요? 누가 그런 이야길 해요? 본인이 그랬잖아요! 지방 촬영이 많았는데 밤에 숙소가면 할 일이 없어요. TV 틀면 모텔에서만 나오는 이상한 프로그램 나오고. 그러다가 그런 놀이문화에 빠져든 거죠. <M>은 어땠어요? <M>은 공무원이었어요.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저녁 먹고 퇴근하는.
Move-On
아직은 영화에 관한 모든 게 좋아요. 그럴 나이죠… 스물인데…. 꼭 나이 때문이 아니라 촬영 스탭들도 좋고 밥차도 좋고. 밥차가 그렇게 맛있나요? 일하고 나서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데요. 밥 먹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촬영 내내 이명세 감독님이 움직여라, 스트레칭해라, 조금이라도 앉아 있으면 준비운동하라고 다그치셔서 힘들긴 했죠. 촬영 초반에 다친 적이 있어서 그러신 건데. 웬만하면 힘들다고 안 하는 편인데 촬영 끝나면 나도 모르게 매니저 오빠한테 “힘들어요” 그랬어요. 정신적으로는? 육체적으로 힘들면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요. 감독님에게 하소연하지 그랬어요? 저 보면 항상 그러세요. 콘티 짜느라 오늘 아침까지 잠을 못 이뤘다, 연희야.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다음은 이한 감독의 <내 사랑>이죠? 홍보하랴 촬영하랴 계속 힘들 텐데…. 촬영 끝났는데요, 뭘. 근데 이번엔 안 아파요. 죽지도 않고. 네 커플이 번갈아 출연하는 옴니버스영화인데, 대신 스탭 언니, 오빠들이 고생했죠. 이 배우들한테 적응할라치면 다른 배우들이 나오니까. 원래 운동을 잘했다면서요? 육상선수도 하고 싶었고. 경찰도 하고 싶었고. 수영도 잘하는 편이었고. 얼마나 잘했어요? 수영은 그냥 물이 좋았고. 육상은 잘했어요. 단거리. 그냥 팀원이었나요, 에이스였나요? 항상 네 번째로 뛰었다니까요. 그런데 어쩌다가 이쪽으로…. 어렸을 때 제가 소풍 가기 전에 레크레이션 준비하는 걸 되게 좋아했는데, 한번은 친언니가 SM엔터테인먼트 콘테스트에 응모해보라고 해서 운좋게 여기까지 왔죠. 근데 무슨 콘테스트에 응모한 건가요? 말하기 싫은데 부문이 되게 많았어요. 저야 춤도 안 되고 노래도 안 되고 해서 얼굴로 응시한 거예요. 근데 3편 하니까 이런 재미가 있어요. <M>을 찍을 때는 <백만장자의 첫사랑> 때가 더 좋다 싶다가, <내 사랑>을 찍으니까 또 <M> 할 때가 좋았던 것 같고. 제 성격이 그런가봐요. 과거에 미련을 두는. 다들 영화 보면 이연희가 예쁘더라는 말 한마디씩 하던데. 저희 편집장께서도…. 으하하하하. 좋죠. 근데 앞으론 연기 잘한다는 말도 듣고 싶어요. 삼순이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고. 서른 되려면 멀었잖아요? 저 의외로 눈치도 있고 웃겨요. 성대모사도 꽤 하고. 남들에게 썰렁하다고 들어본 적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