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이영은] 속 깊은 여동생
2007-10-25
글 : 박혜명
사진 : 오계옥
<바르게 살자>의 이영은

이영은은 막연히 오래된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포털 사이트가 제공하는 필모그래피에 따르면 그의 연기자 데뷔는 2003년 드라마 <요조숙녀>다. 이전 경력이 정말 없나 싶어 확인차 되물으니 그게 맞다고 대답해온다.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며, “제가 고등학생 때 데뷔한 줄 아는 분도 계시더라고요”라고 한다. 평범한 인상이 고민일 것 같았던 이영은은 어릴 때 오히려 자기 얼굴이 “진한 것 같아서 그게 콤플렉스였다”고 한다. “왠지 동남아쪽 같은 인상 있잖아요. 처음에 데뷔할 땐 메이크업도 그런 쪽으로 신경써서 하는 편이었어요. 눈썹도 밝게 하고 머리도 밝은 색으로만 염색하고. (웃음)” 그리고 덧붙인다. “제가 봤을 때 미의 기준은 약간… 이요원씨 같은 스타일? 어딘가 약간 흐리면서 깨끗한 게 제 눈엔 예쁜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서 웃는 이영은은 사랑스럽고 깨끗한 스물다섯. 누가 보더라도 충분히 예쁠 사람이다.

발랄하고 소탈한 인상의 이영은은 누군가의 여동생 이미지로 제격이다. 한때 문근영에게 붙어다녔던 ‘국민 여동생’ 같은 거창한 꼬리표가 아니라 정말 오랫동안 우리 옆집에 살아온 ‘그 애’ 같은 인물 말이다. 순박한 삼포시를 배경으로 경찰들의 은행강도잡기 모의 훈련을 다룬 코미디 <바르게 살자>에서도 영락없다. 은행원 유니폼을 입고 창구 앞에 앉아 눈동자를 굴리는 이영은은 동네 어느 은행에선가 마주쳤을 법한 인상이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3)에서 시끌벅적한 희철(강동원)네 집 막내딸 캐릭터가 그랬던 것처럼. 시트콤 <논스톱4>(2004)의 말괄량이 여대생 영은이가 그랬고, <풀하우스>(2004)의 주책맞은 희진이 그랬다. 이영은은 어떤 캐릭터 속에 있어도 있을 법한 그 사람의 인상을 가지고 있다.

남들이 다 그를 TV에서 봤다고 착각하는 고등학생 시절에 이영은은 계원예고를 착실하게 다니고 있었다. 교외 활동을 제한하는 학교 방침 탓에 이영은은 교내 활동에 충실한 편이었다. “연기자 양성소 느낌이 강한 곳이었어요. 수업도 빡빡하고.” 아쉽긴 해도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연기자였기 때문에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선택이 맞는 것 같아요. 그때 일을 시작했으면,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했을 테니까.” 연극이 하고 싶어서 예고 연극영화과를 택했던 이영은은 졸업 뒤 동덕여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했고 올 초에, 2년 반 늦은 졸업을 했다. 사실 그는 고1 때 모 의류 카탈로그 모델로 활동한 적이 있다. 원래 모델 오디션에 지원한 사람은 그의 오빠였다. ‘내성적인 성격 좀 바꿔보자’는 의도로 집에서 오빠에게 권유했던 거였는데 정작 선발된 건 그였던 것이다. 스물두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연기활동은 지금까지 거의 쉬지 않고 이어져왔다. 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2005), <걱정하지마>(2005~2006), <쩐의 전쟁>(2007). 그리고 올해 초 영화 <바르게 살자> 촬영을 끝낸 다음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지원을 받은 저예산 HD장편 <여름의 속삭임>에서 주연을 맡아 하석진과 차분한 멜로연기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요즘 이영은의 숙제는 성숙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것. <쩐의 전쟁>이 그에게 아쉬움을 남긴 것도 그 숙제를 다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사채업으로 복수를 꿈꾸는 자신의 오빠(박신양) 곁에서 그가 타락하지 않도록 강한 모성적 의지를 발휘하는 은지 캐릭터는 이영은이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역할이다. 누군가의 여동생인 것은 맞지만 보호자의 그늘 아래 곱게 머무는 여동생이 아니다. 지금 촬영 중인 일일드라마 <미우나 고우나>에서도 이영은의 캐릭터 지영은 속 깊고 차분한 여성. “예전에는 생각없이, 하면 하는 대로 연기를 했는데 점점 생각이 많아지니까 힘들어요. 이제 성인 연기를 시작한 건데,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고, 연기도 어렵고.” 자신이 생각했던 캐릭터와 감독이 요구하는 캐릭터가 다를 때 그 의견 조율이 많이 힘들다고 말한다. 이 말을 하는 이영은의 말투는 그러나 별로 무겁게 들리지 않는다. 본인의 설명대로 “무딘 성격” 때문인가. 이영은은 자기 어려움이나 고민을 안에서 여러 번 걸러 가뿐하게 얘기하는 유형 같다. 남에게 힘든 내색하지 않는 강하고 밝은 사람. 어쩌면 이영은은 스크린과 브라운관 안에서만 철없고 순진한 여동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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