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돌아온 그 남자들의 숙명적 만남
2007-10-25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권상우·송승헌 주연의 <숙명> 부산 촬영현장

“거참 고집세네, 씨팔!” 현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걸쭉한 욕지거리를 내뱉는 사람은 아니나 다를까 김해곤 감독이다. 10월17일 밤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차려진 <숙명> 촬영현장, 김해곤 감독은 두만 역을 맡은 민응식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아니 씨벌, 고개를 좀 들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냐?” 보기에 따라 모욕적일 수도 있는 감독의 거친 ‘지적’에도 민응식은 별로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민응식은 김해곤 감독과 함께 <장군의 아들> 공개 오디션을 통해 발굴된 배우. 김해곤 감독의 입이 그 누구보다 걸다는 점을 잘 아는 그는 그저 다음 테이크의 연기만을 생각하는 듯 보였다.

입만 열면 욕설을 쏟아내는 김해곤 감독의 기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숙명> 현장의 중심은 뭐니뭐니해도 주연인 송승헌과 권상우였다. 제대 이후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송승헌과 <청춘만화> 이후 별 활동이 없었던 권상우 모두에게 <숙명>은 ‘복귀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다들 당연히 TV를 선택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시끄럽게 군대를 다녀온 이 시점이 뭔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해 좀더 완성도 높은 영화를 택하게 됐다”는 송승헌의 이야기나 “2년 동안 고생을 심하게 하고 나니 처음 시작하는 느낌으로 이 영화를 골랐다”는 권상우의 말로 미뤄볼 때 <숙명>은 서른둘 동갑내기 두 배우의 야심이 짙게 묻어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촬영을 시작한” 지성과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제대해 이 영화에 동참한 김인권 또한 네 남자가 펼치는 운명의 변주곡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듯했다.

이들 4명의 남자배우를 전면에 내세우는 <숙명>은 어둠과 폭력의 세계에서 인연을 맺은 네 친구의 배신과 의리, 그리고 우정을 그리는 누아르 스타일 영화. 김해곤 감독은 “현실 속 사람들은 자기를 살고 자기를 말할 뿐인 탓에 한번 꼬인 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건 소통의 문제인데, 이런 이야기를 풀려다보니 장르가 누아르로 기울었다”고 설명한다. 그동안의 여릿한 멜로 이미지를 떨치고 싸움의 달인으로서 강한 남성성을 보여주는 송승헌이나 친구를 배신하는 악역을 맡게 된 권상우의 변신 또한 이 영화의 관심거리다. <숙명>은 11월 중순 촬영을 끝내고 2008년 초 개봉할 예정이다.

“송승헌은 친구라서 더 경쟁심도 느낀다”

<숙명>의 배우 권상우

-처음으로 악역을 연기하게 된다.
=시나리오를 받고선 (송)승헌이가 연기하는 우민 캐릭터를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사실 악역에 해당되는 철중 캐릭터가 멋있게 느껴졌다. 마침 승헌이가 우민 역을 선택했다고 해서 캐릭터도 안 겹칠 것 같고, 철중이 이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인 것 같아서 선택했다.

-철중 캐릭터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친구를 배신하는 나쁜 놈이지만 그 행동에는 결국 정당성이 있다. 그래서 감정기복이 심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했던 어떤 영화보다 마음에 드는 캐릭터다.

-절친한 친구인 송승헌과 함께 작업한다는 게 특별한 의미가 있나.
=승헌이와는 <일단 뛰어>를 함께 찍으면서 친해졌는데, 이번 경우는 ‘친구따라 강남 간다’ 차원이 아니라 함께 연기하면 서로의 장점을 캐릭터로 잘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서로 친하기 때문에 더 경쟁심이 생기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출연작을 고르는 상황이 됐는데, 앞으로 소화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좀더 성숙한 멜로영화를 찍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신인급 감독님들과만 작업해왔는데 스타 감독님과도 일해보고 싶다. 장진 감독님과도, 김지운 감독님과도…. 근데 안 불러주시네. (웃음) 허진호 감독님 스타일 영화도 해보고 싶다. 내가 좋은 작품에서 맡은 역을 잘 소화하면 그런 기회도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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