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장사가 된다. 하지만 그건 다국적 무기상 혹은 <폭스뉴스>나 <CNN>에만 해당되는 소리인가보다. 수많은 ‘이라크 전쟁 관련 영화’들이 하반기 미국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자신의 영화가 이라크 전쟁을 다룬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기려 애쓰는 중이다. 지난 10월19일 개봉한 <렌디션>(Rendition)의 경우에는 아예 이라크 전쟁이라는 말을 모든 홍보 전단과 트레일러에서 쏙 빼버렸다. 리즈 위더스푼이 미국 정부에 납치당해 고문받는 이집트 출신 미국인 남편을 찾아 헤맨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무엇으로 보나 현 중동정세를 다룬 정치적인 영화다. 하지만 뉴라인시네마는 <렌디션>이 리즈 위더스푼, 제이크 질렌홀, 메릴 스트립 등 스타들이 총출동한 스릴러영화라고만 홍보 중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신작 <리댁티드>(Redacted) 또한 마찬가지다. 이라크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한 미군의 전쟁범죄를 다룬 이 작품은 드 팔마의 전작인 <전쟁의 사상자들>을 연상시키는 대단히 논쟁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의 예고편에 나오는 것은 검은 화면과 보이스오버, 그리고 드 팔마의 화려한 수상경력뿐이다. 제작사인 마그놀리아픽처스는 “이것은 이라크영화가 아니라 영화광들을 위한 풍요로운 영화적 경험을 제공해줄 영화”라며 아리송한 소리를 하고 있다.
뭐가 문제일까. 당연히 대답은 하나다. 전쟁영화들은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급 스타들이 등장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마이티 하트>는 안젤리나 졸리라는 초특급 스타를 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9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고, 토미 리 존스와 샤를리즈 테론이 출연한 <엘라의 계곡>(가제) 역시 현재까지 640만달러의 처참한 흥행성적을 기록 중이다. 왜 전쟁영화들은 돈이 안 되는 것일까. 한 할리우드 제작자가 지적하는 실패의 이유는 “시기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디어 헌터>나 <귀향>처럼 성공한 베트남전 영화들도 베트남전이 끝난 뒤에나 만들어졌다. 이라크전은 현재 진행형의 전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굳이 그걸 재확인하려고 주말 밤에 극장으로 달려가진 않는다.” 정치적 양심 선언에 너무 이른 시기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장사에 너무 이른 시기란 확실히 존재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