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임지규] 독립영화에서 건진 배우
2007-11-01
글 : 오정연
사진 : 이혜정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은하해방전선>의 임지규

S#1 2007년 10월 <씨네21> 스튜디오 인터뷰 시작 즈음

기자: 길고 덥수룩한 머리를 영화 초반에 자르셨잖아요. 그것도 제법 잘 어울렸는데. (웃음)
임지규: 걱정했었어요. 자르기 전과 이후가 너무 달라 보이면 내가 영화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기자: 음, 너무 잘생겨 보일까봐 걱정했다는 건가요?
임지규: 뭐, 그런 셈이죠.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그가 너무 멀쩡하고 멀끔해 보여서 한번 놀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엿보이는 이상한 기운에 두번 놀랐다. 한달 간격으로 개봉을 준비 중인 두편의 장편독립영화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와 <은하해방전선>은 소심한 왕따와 데뷔를 앞둔 감독지망생을 원톱으로 내세운다. 양해훈과 윤성호, 첫 장편을 완성한 두 감독은 독립영화계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비장의 카드이기도 하다. 임지규는 그런 영화 두편의 주인공을 연기했다. 각기 ‘한 개성’ 하는 두 감독의 페르소나(로 추정되는 캐릭터)를 연기했으니, 이쪽의 정신세계도 만만찮게 4차원스러우리라 짐작했다. 절반은 맞은 셈이다. 긴 머리에 내복 차림으로 순간이동을 연습하는 제휘(<저수지에서…>)나 상고머리에 뿔테안경을 쓰고 말을 못하는 영재(<은하해방전선>)처럼 하나같이 찌질한 그의 영화 속 모습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배우 임지규의 이 모습이 낯설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조심스럽게 준비한 단벌 의상을 옷걸이에 걸고 하루 종일 볼일을 보며 돌아다녔다는 그의 모습이나, 사진 촬영 때 필요할 것 같아서 빌렸다는 기름종이로 얼굴을 찍어바르는 모습, 작은 키를 보완하려고 늘 군화를 신고 다닌다는 사실을 거리낌없이 밝히는 태도는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의 그것은 분명 아니다. 평범하지 않은 솔직함이 내심 반갑다.

S#2 2004년 언젠가. 단편 <핑거프린트> 관련 회식자리.

임지규: 사실 저, 촬영할 때 22살 아니고 26살이었어요.
제작진: 어쩐지 이상하더라. 클로즈업을 할 때마다 눈가에 주름이 보이는 게….

수학과를 때려치우고, 막연하게 모델을 꿈꾸며 상경한 부산 청년 임지규의 과거는 평범한 배우지망생의 그것이었다. 방송사 공채 낙방, MTM 등록 뒤의 실망, 몇번의 상업영화 오디션 낙방 혹은 캐스팅 근처까지 갔다 돌아서기…. 방송사 촬영스탭에 카페 매니저까지 이어지는 아르바이트 속에 후회보다 희망이 더 많았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한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소년이 주인공인 호러단편 <핑거프린트>의 오디션의 조건이 ‘22살 이하’였고,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 그는 그것이 못내 야속했단다. 해답은 간단했다. 거짓말. 어쨌거나 그의 얼굴을 독립영화계에 알리고, 이를 통해 <저수지에서…> 그리고 <은하해방전선>까지 만나게 한 소중한 거짓말이다. 주연으로 결정된 뒤에도 나이를 밝히면 ‘잘릴까’ 전전긍긍하다가 각종 단편영화제 수상으로 영화가 어느 정도 유명해졌을 때에야 겨우 고백할 수 있었던 그의 소심함은 나아졌을까. <실종자들>의 오디션을 낙방한 바 있는 그가 두 번째로 양해훈 감독을 찾아갔던 <저수지에서…> 오디션 당시. “왠지 조명을 잘 받아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일부러 햇살이 비추는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고. 그 때문에 그가 주연으로 발탁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전히 소심하지만 그러나 당시로선 꽤나 극적인 용기를, 그가 보여줬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S#3 2007년 인디포럼 상영 뒤 <저수지에서…> 뒤풀이자리.

임지규: 춘천에서 촬영하면서 합숙할 때, 저는 일찍 방에 들어가고, 감독님이 밖에서 스탭들과 술 마시면서 그랬잖아요. “배우가 연기를 저렇게 못하는데, 지금 와서 무를 수도 없고, 어떡하냐”고. 사실 그때 저 안 잤어요.
양해훈: 음, 들으라고 한 말이었어요.

임지규는 <저수지에서…>에서 처음 입을 열었다. 이미지 위주였던 <핑거프린트>는 그의 외모를 최대한 이용할 뿐 대사가 없었다. 은둔형 왕따가 교감의 대상을 찾지만, 자신을 괴롭혔던 급우를 만나면서 걷게 되는 잘못된 길을 쫓는 <저수지에서…>는 달랐다. 양해훈 감독은 촬영기간 동안 극약처방도 마다지 않았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부끄러움보다는 오기가 필요했다. “내 안의 남은 걸 짜내보자”는 각오로 촬영에 임했고, 덕분에 지금의 완성본은 “볼수록 아쉬움이 남지만 혼자서만 뿌듯한 장면”도 존재한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29살, “이제는 그만둬야 하는 걸까” 모든 걸 포기하려던 무렵 그를 기억해준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은 스탭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남겼다. 이제 그는 모든 것에 고맙다. 상업영화였다면 불가능했을 “고민거리”를 던져준 두편의 장편이 고맙고, 남들보다 굴곡 많았던 인생도 고맙다. 내년이면 서른. 이룬 것에 대한 뿌듯함보다는 이룰 것에 대한 욕심이 훨씬 큰 그는 더이상 자신의 길을 고민하지 않는다. “빨리 만회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서툰 연기가 용납되는 건 두 작품뿐”이라는 각오 때문이다. 자신을 믿는 자에게는 지름길이 보이는 법. 그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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