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정] “감정이 말라 비틀어질 정도로 꾹꾹 눌렀어요”
2007-10-31
글 : 김민경
사진 : 오계옥
<경계>의 서정

“제 이름처럼 천천히 가는 것 같아요.” 이지상, 임창재 감독의 단편영화에 출연하면서 서정은 제 이름을 새로 지었다. 예명이니 무슨 뜻이 있는 건 아니었다. 평소 어감이 좋았던 ‘서’ 자를 따서 성으로 썼고, 본명에서 한 자를 따와서 ‘정’이라는 외자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배우로 살았던 10여년의 삶을 돌아보니 남들보다 한참 느렸다. <박하사탕>을 시작으로 <섬> <거미숲> <녹색의자>, 그리고 곧 개봉을 앞둔 <경계>까지 출연작을 세어봐도 얼마 안 된다. 물론 다른 배우들처럼 스타덤의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섬>을 끝내고 난 직후에는 그의 집 앞에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자신의 소속사로 오라며 러브콜을 경쟁적으로 보내기도 했고, 한때 그 또한 시류에 따라 TV에도 얼굴을 내밀었으나, 그닥 큰 흥미나 자극을 느끼지 못했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무 뜻이 없던 ‘서’가 ‘천천히 서’가 아닐까 싶었던 것도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하긴 세상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보다 꼭꼭 숨겨진 본능을 찾는 것이 배우로서의 그에겐 훨씬 급하고, 가치있는 일임을 몰랐다면 <경계>처럼 오지에서의 촬영을 즐겁게 견뎌낼 재간 또한 없었을 것이다. ‘천천히’(徐) 가는 배우 서정을 만나 앞으로 어떻게 ‘빛나고’(晶) 싶은지를 물었다.

-출연작마다 영화제에 가잖아요. 그것도 복인데.
=많이 간 건 아니에요. 다만 중요한 영화제이고, 다 경쟁으로 가게 돼서 그런가.

-<섬>으로 레드카펫을 처음 밟았잖아요. 그땐 처음이라 많이 당황하지 않았나요.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영화가 그전에 <씨받이> 말고 없죠? 아, <거짓말>이 있었구나. 어쨌든 모두들 경황이 없었어요. CJ도 그렇고, 명필름도 그렇고. 감독이랑 배우도 해외영화제가 다 처음이고. 칵테일 파티를 어떻게 즐겨야 하며, 시간 조율을 어떻게 해야 하며, 등장은 또 어떻게 해야 하며. 모든 것에 서툴렀어요. 마음으로는 와 베니스영화제, 그러면서 즐겨야지 하는 생각이었겠지만. 저는 사실 많은 걸 우려하고 대비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옷과 신발을 갖고 갔어요. 같이 가신 분들이 ‘서정은 왜 저렇게 짐이 많아’ 그럴 정도로.

-가져갔던 옷은 다 한번씩 입어보긴 했나요.
=거의 다 입었어요. 알다시피 <섬>이 그해 영화제 이슈가 됐잖아요. 상영하고 나서 포토콜과 인터뷰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왔어요. 유럽 전역에 생방송하는 프로그램부터 패션잡지들까지. 하루가 인터뷰 일정으로 빼곡했어요. 다들 옷 많이 가져간 게 다행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경계>로 베를린영화제까지 갔잖아요. 이젠 영화제에 가도 실컷 즐길 것 같은데.
=베를린에서도 심하게 즐기다 왔죠. 그전에 <녹색의자> <거미숲>으로 선댄스, 산세바스찬에 다녀왔는데. 선댄스에 두 번째 갔을 때는 뒷골목 지리까지 다 알고 있으니까. 제가 우리 팀들을 데리고 다녔어요. 파티도 재밌는 것만 찾아다니고. 어딜 가야 좋은 사람들이 있는지, 맛있는 것이 있는지 아니까. 한국에서는 좀 위축되는 편인데 외국 나가면 좀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기자회견도 부담없이 즐기는 편이고. 영화제라는 곳이 끔찍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잖아요. 배우에 대해서 예우해주고 특히 나이 지긋한 분들하고의 인터뷰는 정말 좋죠. 그냥 친구 만나듯이 대화하니까.

-장률 감독을 처음 만난 건 언제였나요.
=지난해 초였어요. 시나리오가 왔어요. 시나리오를 읽어보니까 꼼꼼하게 정리된 건 아니었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망종>이랑 감독님 전작을 보진 못했지만 같이 동봉한 이력들 보면서 신뢰가 갔고. 그래서 바로 감독님을 &#48476;는데 저를 뜩∼하고 보시더니 제 앞을 왔다갔다 하시다가 ‘서정씨, 으∼ 우리 영화 같이 좀 합시다’ 그래요.

-다른 말은 없었나요.
=아, 그리고는 ‘사인해주쇼’ 그러세요. 중국 가서 자랑하신다면서. 농담을 잘하세요. 감독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농담일 때도 있어요.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여서 오해한 적은 없었나요.
=그것보다 감독님 농담은 그 안에 진심이 있어요. 한마디도 허투루 들을 수가 없죠. 본인께서는 한국말이 퍼펙트하지 않으시니까 계속 축약하고 단순화해서 한마디로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첫 만남에서 ‘아, 참 재밌는 분이다’ 그랬어요. 촬영할 때도 저에게 하시는 말씀은 하나뿐이셨어요. ‘서정씨, 그냥 그 뭐 좀 나왔으면 좋겠다’고. ‘뭐’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걸 다 이야기하세요. 제가 ‘감독님 이 장면은…’ 그러면 ‘뭐 나왔으니까 됐다’고 그러고. ‘감독님 제가요…’ 그러면 ‘자네, 뭐 있으니까 괜찮다고’ 그러시고. ‘뭐’로 시작해서 ‘뭐’로 끝나요. ‘뭐’가 ‘뭐’인지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죠. 다만 감독님하고 근본적으로 통하는 게 있는 걸 좀 느꼈어요. 삶을 바라보는 시각 같은 거. 서로 기운이 통했고, ‘감독님 영화 합시다’ 그렇게 된 거죠. 그 뒤에 바로 몽골로 떠나게 됐고.

-<경계>의 최순희는 탈북여성인데요. 그 인물의 궤적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감독님도 미팅할 때만 해도 상상이 잘 안 됐을 거예요. 근데 전 막연하게 자신있었어요. 몽골에 들어가면 그때는 ‘하리라’ 하는 마음이 있어서 서울에 있을 때는 나를 안 괴롭혔어요. 그러다가 몽골 가면서 허리까지 오던 머리 싹둑 자르고 한약이랑 추리닝만 챙겨가지고 들어간 거죠. 원래 저는 어떤 역할로 들어가면 서정이라는 자신이 불편해지는 스타일이에요. 다행히 <경계>도 그렇고 그전에 <섬> <거미숲>도 그렇고. 다 외딴곳에서 촬영을 해서 그렇지. 집에 오가면서 촬영을 했으면 방 구조를 모두 바꿔야 했을 거예요. 평소에 즐겨 듣던 음악, 만나던 사람, 입던 옷까지 모두 거부감이 생기거든요. 역할이 처한 환경에 들어가 있는 게 더 편안하게 느껴지고. 그런 성향이 자신감을 갖게 했을 거예요.

-최순희가 어떻게 초원으로 흘러들어왔는지에 대해 영화는 자세하게 이야길 해주지 않는데요.
=탈북여성이라는 거 말고는 힌트가 없으니까. 감독님은 최순희의 전사(前史)에 대한 시나리오는 저보고 쓰라고 하셨어요. 맘껏 상상해서, 맘껏 몰입하라고. 이 여자가 왜 북한을 빠져나왔는지, 함께 탈북하던 남편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그녀가 아들과 함께 고비 사막이 시작되는 초원까지 어떤 일을 겪고서 오게 됐는지.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하고 실제 탈북하신 분들을 만나기도 하고. 근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데다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그래서 몽골에 스탭들보다 보름 정도 먼저 갔죠. 가서는 최순희처럼 무작정 걸었어요. 미친 듯이 살 태우다보니 조금 계산이 섰어요. 2년 정도 그 여자가 걸었으면 자세가 이러겠구나.

-장률 감독님이 사전에 배우를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은 없었나요.
=유목민들하고 일주일 동안 살게 하셨죠. 사전에 준비를 다 해놓으셨는데 이 배우가 따라줄까 싶어서 말을 못하시다가 울란바토르 도착한 다음날 감독님이 그래요. 외딴 초원에 가서 좀 살다 올 수 있겠냐고. 원래 누가 그러면 한수 더 뜨는 성격이라 간다고 했죠. 그렇게 유배 생활이 시작됐는데. 할머니 한분하고 7∼8명 되는 아이들이랑 그리고 저 밥 해주실 아주머니 한분이랑 지냈어요. 일주일 동안 한번도 안 씻고. 혼자 덜렁 남아 애들이랑 땅바닥에서 자고, 땅바닥에서 먹고. 그러면서 글쓰고 시나리오 정리하고.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지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감독님이랑 스탭들이 지프 타고 부르릉 떠날 때만 해도 아무 생각없이 그냥 ‘안녕히 가세요’ 그랬어요. 근데 감독님이 언제 데리러 오신다는 말을 안 했거든요. 가져간 생수는 떨어져 가지. 휴대폰은 안 되지. 일주일이 다 되어갔을 무렵에는 정말이지 이 사람들이 나를 버린 것 아닌가 싶은 거예요.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런데 묘해요. 분장이 필요없겠다 싶을 정도의 몰골을 보신 감독님이 가자고 하시는데 이번엔 애들하고 정이 들어서, 울란바토르 도착할 때까지 계속 울었어요. 메이킹 필름 보면 그런 게 다 찍혀 있어요.

-영화 속 새까만 최순희를 보면서 서정 맞나 싶긴 했어요.
=낮엔 50도까지 올라가니까 하루만 태워도 까매져요. 저는 심하게 피부가 까졌어요. 나중에 감독님이 오케이한 뒤로는 스탭들이 우산을 씌워줬어요. 더 타면 연결이 튄다면서. 촬영 들어가서도 한동안은 분장 지우기 위해 스탭들이 어렵게 구해준 물로 씻고 했는데 얼마 뒤로는 그것조차도 귀찮아지던데요. 다행히 워낙 건조한 지역이라 안 씻어도 냄새가 안 나요.

-실제 탈북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좀 도움이 됐나요.
=스탭 중에 탈북하신 분이 있었어요. 촬영 전에 그분하고 두달을 같이 살았어요. 이북 말도 그렇게 배웠고. 최순희라는 여성은 영화에도 조금 힌트가 있는데 배고파서 나온 사람은 아니에요. 광복거리에 살았다고 하니까 최고위 상류층이었죠. 그런 사람이 갑자기 사막을 걸어야 하니 더 처절한 거죠. 제게 도움말을 주신 분도 상류층에 속한 분이어서 극중의 최순희와 비슷한 면이 많았어요.

-그분들이 쉽게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던가요.
=처음엔 안 그러죠. 근데 한방 쓰고 친밀해지니까 어느 순간에 토설(吐說)하듯이 자기 이야기를 하셨어요. 언제 끊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대개 탈북하신 분들은 자기 이야기 꺼내면 처음부터 끝까지 우세요. 스탭 분도 이북에 남편이랑 자식 둘을 두고 오신 분이었는데 토설하면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걸 끊임없이 내 것처럼 해야 하니까 담아내고 흡수하고 그러다보면 아픔이 전이되는 거고, 내가 겪은 것 같은 최면 상태가 되기도 하고. 저도 밤마다 계속 울고.

-그런데 영화를 보면 최순희는 그저 탈북여성이라고만 볼 순 없는 것 같아요. 전에 베를린에서 기자회견한 걸 보니까 장률 감독이 최순희에게서 빠져나오라고도 했다던데요.
=내일모레 촬영 들어가는데 감독님이 이제 최순희에게서 빠져나오라고 해요. 그게 무슨 얘기인가 싶었는데, 슬픈 사람은 슬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데요. 분장사에게도 감독님은 가난하고 찌들고 빈티나는 분장을 하면 안 된다고 하시고. 그냥 오래 걸은 사람의 피곤함과 지친 모습 정도면 된다고. 사실 제가 좀 볼살이 있어서. 감독님에게 볼살이 안 빠져요, 그랬는데. 저한테 살 빼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또 엄마라는 감정도 버리라고 하셨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엄마가 ‘내 새끼 내 새끼’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안 그런다고. 사우나 가서 자식들 다루는 엄마 모습을 한번 보라고. 탈북자들이 갖고 있을 것 같은 억울하고 처절한 감정에서 빠져나오라고 그렇게 툭툭 이야기하시는데 최순희한테 갖는 동정심을 거두는 게 쉽지가 않죠. 그러면서 <경계>가 어떤 영화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최순희라는 인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놓고 촬영 중간에는 감독과 의견 차이가 있진 않았나요.
=우리 영화 건조하잖아요. 1초도 끈끈한 걸 허락하지 않는 사막 같은 영화예요. 감독님의 주문은 생존을 위해 걷는 여자의 무의식 정도였어요. 근데 최순희가 남편 사진을 꺼내 보는 장면 촬영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쑥 나오는 거예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신경질적으로 NG를 팍 내시더라고요. 그 소리 들으니까 흘러나왔던 눈물이 쭉 들어가데요. 감독님은 현장에서 항상 불안해했어요. 내가 감정 보일까봐. <섬> 하고는 반대였어요. <섬>이 폭발이었다면 최순희는 억눌렀으니까. 감정이 말라 비틀어질 정도로. 자기 자신도 누르시는 분이니까. 현장에서도 스탭들하고 대화를 많이 안 하세요. 배우들한테도 아까 말했다시피 뭐, 뭐 정도이고. 그렇게 안 누르면 외로움이 안 나온다고 하시니까. 감독님이 지금 촬영 중인 <이리> 프로젝트의 중국 촬영 분량을 보신 분이 굉장히 쇼킹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 듣고 나서 그랬어요. 드디어 눌러놓으셨던 것이 폭발했구나. 장률 감독님도 속에 ‘뭐’ 있거든요.

-다른 배우들에겐 어떤 연기를 주문했나요. 헝가이 역의 바트을지는 상대적으로 수월했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감독님은 헝가이가 언제나 죽은 생선의 눈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표현 기막히죠. 근데 바트을지는 몽골에서 굉장히 유명한 이를테면 최고의 국민배우예요. 근데 우리로 치면 신성일식 연기를 하죠. 대사도 그렇고. 눈빛도 카리스마가 항상 나와야 하고. 이전에 갖고 있던 연기나 대사 톤을 다 부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유목민 특유의 구부정한 걸음거리나 자세도 익혀야 했고.

-최순희의 아들 창호 역을 맡은 아역배우는 조선족인가요.
=한국 사람이에요. 모든 상황을 참아낸 아이나 매니저 일을 하는 그의 아버지나 대단하죠. 아이의 입에서 “나 이제 그만 걸을래”라는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하려고 일부러 촬영장에서 숙소까지 같이 걸은 적이 있어요. 가방도 일부러 무겁게 해서. 차로 가도 3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반나절을 같이 걸었어요. 중간에 아이가 코피를 몇번 흘리는 걸 보면서는 가슴이 미어지는데 그래도 어떻게 해요. 둘이 있을 때는 이북말로 했는데. 일어나라, 일어나라, 해서 끌고 가기도 하고 잡고 가다 내팽개치기도 하고. 저 멀리 뒤따라오는 아버지 심정에서는 그걸 지켜보는게 쉽지 않았겠죠. 올해 부산영화제 가서 아이 아버지한테 죄송하다고, 대단하다고 계속 그랬어요.

-배우 입장에서 최순희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어떤 건가요.
=순희가 아들에게 오늘 만난 ‘할머니가 나한테 좋아 보인다고 그러더라’ 그러면 창호가 ‘아이고 그 할머니가 조선말 참도 잘하겄다’고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면은 제가 만든 건데. 할머니가 좋아 보인다는 말은 실은 최순희의 마음이고 심리인 거잖아요. 헝가이라는 남자랑 있는 지금이 안전하고 좋고, 내 아들은 더 좋아하고. 창호한테 네 아버지도 똑같은 말을 했다는 대사로 최순희의 과거를 조금 보여주기도 하고.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함축적으로 응축되어 있는 장면이죠. 근데 사실 이 장면 찍으면서 배우가 이 정도의 독백을 할 때면 감독님도 영화에서 확 피어오르게 해줄 줄 알았어요. 근데 영화 봤더니 역시나 그 장면도 영화 속에 묻혀 있더라고요. (웃음)

-헝가이와 관계를 갖는 대신 어린 군인과의 섹스는 결국 받아들이는데.
=헝가이가 떠나고 나서 그를 기다리는데 어떻게 다른 남자에게 몸을 허락할 수 있느냐고 감독님한테 묻기도 했어요. 근데 감독님은 보통 사람은 아니야. (웃음) 욕망이라는 게 한번 열리면 가능해진다면서. 줄 사람에게 안 주고 엉뚱한 데 가서 사랑을 주는 일이 많다면서 그러셨어요. 슬픈 욕망인 거죠. 그 장면 찍고 민망하게 차 안에 남아서 혼자 울었는데, 스탭들은 다 빠지고 탈북자 선생님이 와서는 아이고야, 아이고야 같이 울고. 그 장면 찍고 나서 어찌나 억울하던지. 근데 그 장면 찍으면서 감독님이 다리 연기에 집착하셨어요. 관계를 맺는 장면에서 다리만 요만큼 보여주는데, 감독님이 순진한 소년 표정으로 여자의 심리가 다리에 나와야 한다면서, 뭐 좀 나와야 한다고 해서. 근데 보통 20, 30대는 그 장면을 이해못하는 것 같아요. 어르신들만 이해하는 장면이랄까.

-스탭들도 꽤 고생했을 텐데요.
=특히 카메라요. 카메라가 25kg인데. 엄청난 무게잖아요. 게다가 핸드헬드에 다 롱테이크 촬영이니까. 촬영감독님도 체력의 한계가 있으니까 배우들이 NG를 내면 큰일나요. 큰 카메라 메고 1분 지나면 흔들리거든요. 2, 3번씩 NG나면 못 찍어요. 배우들끼리 매번 우리가 정말 잘해서 NG내지 말자 약속하곤 했어요. 그래서인지 필름을 정말 많이 남겨왔죠.

-<섬> 찍고 나서 허리가 19인치가 됐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허리가 많이 줄었나요? 그때가 아주 젊을 때긴 했는데.
=배우에게 아주 젊었을 때가 뭐야? 지금도 젊거든요. 허리 안 재본 지 몇년 됐어요. <경계> 찍고 나서는 2kg 정도 빠졌어요. 저는 힘들면 상반신이 많이 빠지는 편인데 소음인이라서 그렇데요.

-몽골에 갈 때 미처 챙기지 못해서 후회한 게 있나요.
=과일이 정말 먹고 싶었는데. 한번은 제작부가 울란바토르에 있는 한국 슈퍼 가서 복숭아 캔을 사온 적이 있는데, 그것도 며칠 먹으니까 질리던데요. 박스째 샀다가 결국 스탭들 나눠줬죠.

-지금까지 출연작 수를 봐도 그렇고. 남보다 더 많이 갖겠다는 성취욕 같은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가끔 기도하러 가서 그래요. 욕망 좀 달라고. 너무 없어서 걱정이 들 때가 있죠.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조언들이 제게는 그닥 도움이 안 돼요. 살면서 점점 단순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움직이는 동선도 줄고. 집에서는 거의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니까. 물론 그 안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긴 한데 습관이 되다보니.

-연극을 해보는 건 어때요.
=연극 했었어요. <로펌>이라는 드라마도 했고. 드라마는 작가랑 감독이랑 트러블이 생겨서 대본이 안 나오는 바람에 다 접고. 이후에 김지숙 선생님이랑 자유소극장에서 <두 여자>를 연기했어요. 제 대본은 거의 책 한권이고, 선생님은 침묵으로 끌고 가시고. 정말 정신없이 준비해서 올렸는데, 무대에서는 햇병아리 배우인 제가 베테랑과 함께 다들 서보고 싶은 극장의 무대에서 연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족하죠. 연장 공연에 들어가서 참여하고 싶었는데 영화 스케줄과 겹쳐서 못했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도전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맡은 배역들 중 기억나는 인물들은 말을 하지 않기에 신비하지만 말을 하면 위험한 존재가 아닌가 싶어요. 감독들도 그런 여성들을 많이 맡기는 것 같고. 이번 영화에서도 대사가 별로 없고.
=꼭 그런 것 같진 않은데. 근데 갈수록 제가 심플해지고 싶어해요. 작품 봐도 뭐가 이렇게 대사가 많나 싶고. 그래서 계속 쳐나가고.

-혼자서 여행을 자주 갈 것 같은데요. 자주 가는 곳이 있나요.
=만해마을이라고. 문인들이 작품활동을 하면서 영감을 받기도 하는 곳이에요. 소설책 싸들고 가서 혼자 며칠씩 머물다 오기도 하고. 근처에 선녀탕이 있는데 물이 너무 좋아서 목욕도 하고. 유명한 황태구이 사먹기도 하고. 다음 작품 들어가기 전에 한번 가야 하는데.

-다음 작품은 뭔가요.
=아직 말하긴 그런데. 지금까지 선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대신 접근하는 방식은 좀 다르게 해보려고요. <섬>이든 <거미숲>이든 <경계>든 나를 찾아오면 거기에 맞게 한번 살아보자 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또 그 안의 또 다른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하는 기대 때문에 영화를 하는 것 같아요. 적나라하게 필름에 그 반응이 담겨서 관객과 만나는 것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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