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오다기리 조] 고독한 여행자의 눈물
2007-11-02
글 : 정재혁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로 한국 찾은 오다기리 조

“사람이 사는 곳엔 머물 수 없다.” <무시시>의 오다기리 조는 말한다. 벌레로 아파하는 사람을 치유하며, 산에서 산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떠도는 무시시는 기이하게 변해가는 자연에 몸을 맡긴다. 우루시바라 유키가 만들고,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이 영상으로 옮긴 이 세계에서 그는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흐름에 자신을 맞추는 남자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벌레를 보고, 불가사의한 능력을 운명의 무게로 짊어진 존재. 영화는 이 불가사의함의 화자로 오다기리 조를 택했다. 수많은 영화와 캐릭터를 통해 끊임없이 방황하고 고뇌하는 배우 오다기리 조는 절대적인 고독, 무(無)로 돌아가는 여정에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린다. 어려서부터 영화관을 탁아소 삼아 지냈고, 미국에서 홀로 2년간 유학했으며, 존 카사베츠와 짐 자무시의 영화를 좋아하는 남자. 그는 연극 <드림 오브 패션>으로 데뷔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밝은 미래>에 출연했으며,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로 국내에서 인지도도 쌓았다. 1999년 데뷔 이후 9년간 출연한 영화는 총 27편. 2005년엔 <박치기!> <메종 드 히미코> <스크랩 헤븐> 등 7편에, 2006년과 2007년엔 각각 5편에 모습을 보였다. 촘촘하고 빡빡한 필모그래피가 숨찬 여행자의 일지를 연상시킨다.

오다기리 조는 영화에서 언제나 고독하고, 방황한다. <헤저드>에선 뉴욕을, <스크랩 헤븐>에선 일본의 화장실을, <빅 리버>에선 애리조나주의 사막을 헤맸다. 돌아온 고향 집에서도 그는 다시 발을 돌려(<유레루> <피와 뼈>) 유랑의 길을 떠난다. 심지어 그는 코미디로 포장된 영화 <인 더 풀>과 드라마 <시효경찰> 시리즈에서도 웃음보단 그 뒤에 가려진 비밀로 설명되는 인물이다. 엉뚱한 사고를 계기로 지속성 발기증에 시달리고, 시효가 다 된 사건을 취미로 수사한다. 오다기리 조는 여행길에 자신을 버리고 웃음으로 고독을 위장한다. 특히 아오야마 신지 감독이 <헬프리스> 이후 11년 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새드 베케이션>에서 그는 “일종의 소도구”처럼 그려진다. 보이긴 하지만 손에는 잡히지 않는 느낌. <새드 베케이션>은 아오야마 감독의 전작과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시 모여 만든 작품인데, 오다기리 조는 이전까지 아오야마 감독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음에도 이 영화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아무런 접점없이 융화가 가능하고, 존재함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의 무게감을 드러낸다. 연기는 물론 음악, 책, 연출에까지 손대고 있는 오다기리 조. 그에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정해진 길보단 새로운 길이 더 의미있어 보인다.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의 한국 개봉을 맞아 오다기리 조가 한국을 찾았다. 2007년 가을 일본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오다기리의 출연작 중 유일하게 일본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작품. 비교적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을 골라온 그의 이력을 생각하면 이 영화는 다소 의외다. 릴리 프랭키가 자신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가 원작이며, <안녕, 쿠로>에서 개와 인간의 우정을 눈물로 그렸던 마쓰오카 조지가 연출했다. 무시시의 말을 빌리면 오다기리는 이 영화에서 드디어 머문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방황의 날을 반성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도쿄타워를 향해 상경했던 이들의 나날을 어머니의 가슴으로 정리한 뒤 여전히 우뚝 서 있는 도쿄타워 앞에 고개를 숙인다. 표지 인터뷰를 위해 강남의 한 스튜디오를 찾은 오다기리도 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를 묻는 질문에 긴 침묵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구체적인 사실보단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다소 추상적인 단어로 뱉어내는 모습. 숨차게 달려온 여행자의 길 앞에 놓인 정적이 겹친다. 실제로도 모친과 단둘이 생활했던 오다기리 조는 이 영화를 어머니께 바친다고 말했다. 27번의 방황과 9년간의 여행. 그는 지금 엄마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오다기리 조의 답변과 그 사이의 침묵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최대한 그의 어투를 살렸다.

-아직까지 원작 소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읽지 않았다고 들었다. 영화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여러 요소가 있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음…. 도망칠 수 없었달까. 이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작품 같단 생각이 들었다.

-도망칠 수 없었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왜 여러 가지 우연이 겹칠 때가 있지 않나. 음…. 간단히 말하면 이런 거다. 이 영화를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인 같은 게 느껴질 때. 분명 괴로워지겠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구나, 최종적으로 내가 이걸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뭐 이런.

-실제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고 알고 있다. 모자(母子)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개인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컸나.
=그렇다. 뭐랄까. 나의 실생활과 닮은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그걸 일로써 표현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본을 읽기만 해도 내가 괴로워질 게 눈에 보였다. 뭔가 큰일이겠구나,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엔 계속 출연 요청을 거절했다.

-아까 우연이란 말을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는 건가.
=(웃음) 상세하게 쓰고 싶은가보다. 뭐랄까, 예를 들면 연출이 마쓰오카 감독이란 것도 우연이다. 뭐 그건 내가 보기에 우연인 거지만. (웃음) 감독님이 어머니의 친구분이다. 만일 다른 감독님이 연출을 하는 거였다면 또 안 한다고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뭐랄까…. (한참 생각하다) 그냥 그 우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일로써 표현하기 꺼려지는 이야기를 이번 영화에서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뭔가.
=정말 간단히 말하면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라는 것. 마사야라는 역할을 연기하면서 내가 어머니에게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매우 좋아하지만 부모한테는 그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지 않나.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전하지 못하고. 물론 이런 걸 일로써 드러낸다는 것 역시 매우 서툰 방법이지만, 그냥 이런 방법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어머니도 영화를 봤나.
=보셨다. 영화를 보고 서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기뻐해주셨다.

-마사야가 아버지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했다. 가끔씩 나타나고 거의 가정을 버리듯이 한 사람이지만 아들에겐 영향도 많이 주는데.
=그냥 타인 같은 거 아닐까. 아니면 선배 같은 거. 나는 아버지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기대하는 감정을 그(영화 속 아버지)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가벼운 이야기는 할 수 있는 정도의, 그런 사람과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면 자연스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모 인터뷰 기사에는 영화관을 탁아소 삼아 지냈다고도 했던데, 실제로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나.
=한국의 이혼율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일본의 이혼율은 꽤 높다. 그건 내가 어릴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한반에 두세명은 부모가 이혼한 애들이었다. 나도 그랬지만 이혼한 가정은 보통의 행복한 가정과는 형태가 다르지 않나. 하지만 다르면 다른 대로 행복하게 살았고, 재밌게 자랐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가정도 일반적인 행복의 모습보다는 내 실제 생활과 더 가깝다. 아마 소설을 읽었던 보통의 독자보다 내가 이 이야기에서 느낀 게 더 많았을 거다.

-혼자 있는 시간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언제나 혼자였다. … 내가 뭘 하며 지냈는지는 모르겠는데 혼자인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긴 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이런 직업을 깆게 된 게 아닐까.

-어머니를 연기한 기키 기린과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 같다.
=기키씨는 일본에서 대배우다. 그분을 대신할 사람은 없을 정도의 존재감이랄까. 꽤 엄격했고 그게 작품에 좋은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개성이 매우 강하고. 내가 친어머니를 기키씨와 겹치지 않고 연기할 수 있을 만큼 개성이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적으로도 매우 편안했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로 실제 기키 기린의 딸인 우치다 아야코가 출연한다. 연기하면서 그 둘이 모녀관계라는 게 느껴지던가.
=일단 우치다씨와 나는 같이 있는 장면이 단 하나라서…. 뭐랄까, 그녀는 기키씨와 가지고 있는 게 전혀 다른 사람이다. 우치다씨는 지금까지 연기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고, 기키씨는 연기밖에 안 한 사람이고. 하지만 어머니의 재능은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매우 좋은 감성을 가진 여성이다. … 음. 부럽다. 그렇게 재밌는 어머니한테 태어났다는 게.

-영화는 전체적인 회상구조와 교차편집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는 느낌이 크다. 실제로 영화에서 중요한 것도 이야기의 결말보다는 상황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 어머니에 대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연기하면서 가슴에 크게 부딪혔던 특정 장면이나 감정이 있나.
=에~? 개인적으로? 음…. 다 내가 연기하고 있는 거니까, … 어떤 장면도 다 나니까. 특별히 ‘이거다’라는 건 없었던 것 같다.

-영화가 당신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내레이션은 촬영 뒤 이틀간 녹음 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목소리가 꽤 저음인데 그렇게 오랜 시간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에 대해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되지않나.
=특별한 느낌은 별로 없었는데. (웃음) 녹음 작업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했다. 영화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도 있지 않나. 전반부 어릴 때는 내가 연기하는 게 아니고 내가 연기하는 건 후반부뿐이니까. 그걸 연결하는 게 내레이션이라 가장 신경이 쓰이긴 했다. 어쩌면 그래서 내 목소리가 이렇구나, 저렇구나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던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레이션을 하자는 느낌이 컸으니까.

-영화의 내레이션 속에 빙글빙글(구루구루, ぐるぐる)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단어는 어감도 귀에 계속 남고, 단어 자체가 도쿄타워 주변을 어쩔 수 없이 헤매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그 단어는 왠지 느낌을 탄다. 의식을 하고 말하는 게 아니라, 리듬으로 남는다. 내레이션 녹음을 할 때도 감독님이 구루구루를 느낌대로, 쉽게 해달라고 하셨다. 또 그게 두번, 세번 나오니까 효과적으로 갖는 느낌도 있고. 나는 구루구루의 의미보다는 어감에서 오는 효과를 더 노렸던 것 같다.

-배우 오다기리 조의 맥락에서 보면 구루구루라는 단어가 지금까지 당신이 연기해온 캐릭터를 설명하는 키워드 같았다. 어딘가를 방황하고, 헤매고, 여행하는. 그러다 이제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는 의미랄까. 이번 영화를 두고 ‘최종적인 골(Goal)’로 생각한다는 멘트를 봤는데,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 궁금하다.
=나는 어머니와 둘이 계속 지내왔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게 가장 편하다. 내가 아는 건 그것뿐이고, 표현자로서 내가 강한 것도 그 부분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종적인 골이라 표현한 거다. 다만 이 영화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그게 벌써 와버렸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좀더 뒤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왔으니 좀 이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절했던 거다. 촬영은 1년 반 전이었는데 당시는 이 이야기가 나의 골이라 생각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전부 표현한 거고. 하지만 이 작품이 특별한 목표라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까지 출연했던 모든 작품들도 나에겐 다 목표였던 거니까.

-2003년엔 단편 <바나나 껍질>, 2005년엔 <페어리 인 메소드>, 올해는 TV드라마 <돌아온 시효경찰>의 8화를 직접 연출했다. 현재는 또 다른 단편 <벚꽃인 사람들>을 편집 중이라고 들었는데, 연기와 달리 연출자로서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뭔가.
=나는 원래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보였고 그게 좋았다. 감독의 캐릭터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건 나이가 들면서부터다. 이 감독이 이런 방법을 쓰니 영화가 좋게 나왔구나, 라고. 나는 영화에서 새로운 걸 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기 때문에 각본을 쓰는 게 가장 즐겁다. 각본을 다른 형태로 옮기는 감독의 일은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이게 책보다 더 재밌게 찍힐까, 그건 아직 모른다. 그래서 내가 지금 단편을 만드는 건 각본을 쓰고 싶어서다.

-당신을 스타덤에 올려준 TV드라마 <가면라이더 쿠우가>에 대해 당신은 “소속사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거”라는 말을 자주 하더라. 대중적인 것, 대중과의 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또 2006년에는 앨범을 <화이트>와 <블랙>, 두장으로 나누어 발매했다. <화이트>는 멜로디 라인이 비교적 강한 곡 중심이었고, <블랙>은 전자 사운드가 강한 라운지 계열의 음악이었다. 이 시도도 당신이 대중과 갖는 거리에 대한 고민의 반영처럼 보였는데.
=대중과의 거리는 항상 고민하는 문제다. 하지만 나는 대중적인 걸 표현하지 못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대중적이지 않으니까. 물론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계속 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특히 음악이 그런데, 나는 음악에서는 비즈니스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까 말한 <화이트>와 <블랙>도 대중적인 것과 인디적인 것을 나누어 발매한 건 아니다. 굳이 이야기하면 <화이트>에는 내가 그냥 평소에 만들었던 음악을 넣었고, <블랙>은 내가 출연한 영화에 실었던 곡들을 넣어 일종의 사운드트랙 같은 형식으로 만들었다. 음악으로는 대중적인 걸 만들 생각이 없다. 그 음반은 일본에서도 전혀 팔리지 않았다. (웃음)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음악하는 사람들은 내가 배운데 음악까지 한다며 싸움 걸기 쉬워한다. 회사와의 이해관계로 만드는 거 아니냐며. 하지만 내가 하는 음악은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 물론 배우에 관해서라면 생활이 걸려 있는 거라 다르다. 가능하면 인디적인 작품에, 내 본질을 잃지 않으며 출연하려 하지만 생활을 위해서는 CF나 메이저의 작품도 할 수 있다. 그건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그 사이의 밸런스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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