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내년 5월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열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10번째 기증품은 임권택 감독이 <천년학> 현장에서 사용했던 점퍼입니다.
‘거장의 100번째 영화.’ 사연없는 영화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은 그 무게감이 무색하리만큼 시작부터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았다. 어느 때보다 힘들었겠지만 그만큼 의미도 컸을 100번째 현장. 촬영이 끝나던 즈음, 자연과 세트,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 긴 여정을 겪어낸 스탭들은 임권택 감독이 촬영 내내 입고 있던 점퍼에 하나둘, 이름을 써넣기 시작했다. 현장 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하던 막내 스탭부터 명콤비이자 속 깊은 영화 동지 정일성 촬영감독, 그리고 모든 이들을 대표해 스크린 가득 얼굴을 새겨넣을 배우까지, 투박한 점퍼 곳곳에 빈틈없이 쓰인 이름들은 임권택 감독의 부인 채령 여사가 현장 구석구석을 돌며 꼼꼼히 받아낸 것이다. “(애) 아빠가 워낙 무심하고 남에게 다 줘버리는 성격이라 영화를 많이 찍었으면 뭐해. 가지고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 그래도 100번째 영화라는데, 이번만은 하나쯤 기념될 만한 걸 만들고 싶었어….” 그마저도 결국 영화박물관에 기증되었지만 박물관을 찾을 관객에게 <천년학> 현장의 생생한 기운을 전할 기념품이 됐으니 이 보다 멋질 수는 없겠다. 스크린으로 완성된 영화와 마주하는 우리 관객은 가끔 카메라 뒤의 수많은 이들이 있기에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곤 한다. 훗날 <천년학> 점퍼에 가득 쓰인 이름에서 그때는 까마득한 막내였던 미래의 명감독, 한국영화의 빛나는 이름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