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알고 봅시다] 그 언젠가 들었던 그 노래
2007-11-08
글 : 문석
<행복> <별빛 속으로>에 삽입된 옛 가요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에 60∼70년대 고전가요들이 삽입돼 나이 든 관객에게는 향수를, 젊은 관객에게는 복고의 신선감을 전하고 있다. 특히 이들 노래는 각각의 영화에서 꽤나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기묘한 우연의 일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1. <M>의 <안개>

정훈희의 <안개>가 수록된 앨범 재킷

이명세 감독의 <M>에서 <안개>는 단순한 삽입곡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M>에서 여러 차례 다양한 버전으로 불린다. 민우(강동원)가 찾은 바의 무대에서 미미(이연희)가 부르기도 하고, 회상신에서는 민우과 미미의 버전과 정훈희가 부른 원곡 버전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안개>는 연주곡으로 편곡돼 이 영화의 테마음악으로 사용됐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가수 보아가 현대적으로 편곡된 버전을 부르기도 한다.

<M>의 아른하고 신비한 정조를 자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한 <안개>는, 사실 우연한 계기로 영화에 쓰이게 됐다. 오수미 프로듀서는 “시놉시스가 거의 완성되던 무렵, 이명세 감독님과 시나리오에 참여한 이해경 작가 등이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이때 이해경 작가가 이 노래를 불렀는데 감독님은 느낌과 정서가 영화에 맞는다며 사용하자고 했다”고 말한다. 게다가 ‘안개’는 영어로 ‘mist’이니 영화 제목 <M>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고, 이명세 감독 영화에 항상 등장하는 스모그의 느낌과도 맞아떨어졌던 것.

이봉조가 작곡한 <안개>는 1967년 고등학생이었던 정훈희에 의해 발표돼 “‘유럽풍’이라는 찬사”(<한국 팝의 고고학 1960>, 신현준 외 지음, 한길아트 펴냄)를 받았던 노래. 이 노래는 트로트가 지배하던 당시의 가요계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으며, 정훈희는 일약 스타로 떠올라 ‘틴에이저 가수’ 시대를 열기도 했다.

2. <행복>의 <짝사랑>

<짝사랑>이 수록된 바블껌의 앨범 <엄마는 아빠만 좋아해>

‘왜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그녀만 보면 그이만 보면/ 설레이는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짝사랑하고 있나봐요-.’ 영수(황정민)와 은희(임수정)가 처음으로 함께 잔 다음날, 영수가 기타를 퉁기며 <짝사랑>을 부르는 장면은 은희에 대한 영수의 은근한 사랑의 감정을 낭만적으로 보여준다. 무뚝뚝해 보였던 영수의 내면을 자연스레 보여주는 이 노래 또한 우연히 삽입됐다. 허진호 감독의 애초 구상은 영수가 은희에게 “나 처음 아니에요”라고 말한 뒤 바로 “우리 같이 살아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실제로 촬영도 그렇게 이뤄졌고, 연기의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고 허진호 감독은 말한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에 따라 장면을 구상하는 허진호 감독은 “뭔가 서정적인 장면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해 황정민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 허진호 감독이 불현듯 이 노래를 떠올린 것은 현장에서 틈날 때마다 기타를 쳤던 황정민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노래를 몇 차례 들었기 때문이다. “연출부들이 요양원을 취재했는데 ‘웃음치료사’가 환자들과 이 노래를 부르더라. 그 웃음치료사는 스탭들의 MT에도 오셔서 이 노래를 불렀다.”

70년대 초 릴리 시스터즈와 바블껌이 각각 불렀던 <짝사랑>은 포크록이 신선한 바람을 몰고 있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반응을 얻었던 노래다. 특히 혼성듀오 바블껌의 이규대와 조연구는 뒷날 결혼을 했고, 이 부부의 딸은 현재 밴드를 이끌고 있는 이자람이다. 이자람은 어릴 적 아버지 이규대와 함께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시작되는 <내 이름>을 불렀던 ‘그때 그 꼬마’.

3. <별빛 속으로>의 <그리워라>

<그리워라>가 수록된 현경과 영애의 앨범 재킷

황규덕 감독의 <별빛 속으로>의 한 장면. 과외를 가르치는 수지(차수연)네 집에서 첫 수고비를 받은 수영(정경호)은 집으로 돌아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교련복을 파트너 삼아 춤을 춘다. 이때 DJ(송승환의 음성)의 소개에 맞춰 흘러나오는 노래는 ‘그리워라 우리의 지난 날들/ 꽃잎에 새겨진 사랑의 이야기들… 지금도 내 가슴엔 꽃비가 내리네’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그리워라>다. 한 음료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였고, <커피 프린스 1호점>에도 등장했던 이 노래는 여성듀오 현경과 영애(이현경, 박영애)가 74년 발표해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서울대 미대 4학년이었던 두 사람은 김민기가 작곡한 <아름다운 사람>을 불러 운동권에서도 상당한 명망을 쌓기도 했다. 왈츠 리듬에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그리워라>는 스페인의 중창단 모세다데스(Mocedades)의 <안녕 사랑>(Adios Amor)을 번안한 곡으로 이현경이 가사를 붙인 것으로 알려진다(<한국 팝의 고고학 1970>, 신현준 외 지음, 한길아트 펴냄).

황규덕 감독은 “이 영화가 79년을 배경으로 하다보니 당대에 불렸던 노래를 써야 했는데, 싱그럽지 않은 시대의 싱그러운 노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한다. 78학번인 황 감독이 대학 시절 “굉장히 동경했던 노래”이기도 한 이 곡은 영화의 후반부 현재의 수영(정진영)이 집으로 들어갈 때 다시 한번 나온다. 황규덕 감독은 이 노래를 영화에 사용하기로 결정한 뒤 이현경, 박영애씨를 만나려고 했으나 접촉할 수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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