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가 단편소설 <리지아>에 쓴 적절한 표현을 빌리면, 배우 미아 커시너는 “아편에 취한 자의 환상처럼” 아름답다.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에게 영감을 줄 법한 그녀의 얼굴은 두터운 화장을 해도 청순하고, 메이크업을 지워도 야하다. 큼직한 눈동자는 한쌍의 캐츠 아이처럼 영롱하지만, 바늘 끝처럼 작은 동공은 모르핀 중독자처럼 몽롱하다. 그녀의 낮은 음색 밑바닥에는 알 수 없는 이물질이 항상 바스락거린다. 스트립클럽의 소녀 댄서로 분한 출세작 <엑조티카>(1994)에서도, 소설가가 되려는 열망에 들뜬 늦깎이 레즈비언으로 분한 근작 TV시리즈 <L워드>(2004∼2007)에서도 미아 커시너는 애처롭다. 영화 <블랙 달리아>에서 커시너가 분한 20대 초반의 가난한 배우 지망생 엘리자베스 쇼트는 1947년 겨울 LA의 공터에서 난도질된 시체로 발견된다. 이내 고인과 스타들의 숨은 관계를 억측한 스캔들이 무성하게 일었고, 베티의 아버지는 신문사에 딸의 생전 사진을 팔아먹었다. 하지만 커시너가 그려낸 베티 쇼트의 초상은 망자를 둘러싼 요란한 소문에 초연한 채 다만 가련하다. 여기에는 배우 미아 커시너의 결의도 반영돼 있다. “실존인물인 그녀의 인간성과 명예를 지키는 것이 나의 최우선 목표였다. 나는 모든 억측을 무시하고 입증된 사실만 갖고 연기했다.”
<블랙 달리아>가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유일한 순간은, 스칼렛 요한슨이 하얀 속살에 새겨진 흉터를 노출하는 장면도, 힐러리 스왱크가 광기를 발산하는 대목도 아니다. 그것은 가난한 배우지망생 베티가, 화면 밖의 에로영화 감독이 희롱처럼 던지는 질문에 진심을 다해 답하는 오디션 필름이다. 흠집투성이 흑백 프레임 안의 젊은 여인은 절망적이지만 끝내 가느다란 존엄을 잃지 않는다. <애수>의 비비안 리처럼. “좀더 매달려 빌어봐.” 감독의 요구에 순순히 굴종하던 그녀는 스칼렛 오하라의 대사를 암송한다. “신에게 맹세컨대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어. 거짓말하거나 훔치는 한이 있어도.” 마법이 일어나고 관객은 한 영혼과 카메라가 만들어낸 지극히 은밀한 순간에 눈치없이 끼어든 낭패감을 갑자기 느낀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대계 캐나다 소녀 미아 커시너는 노스 토론토 극장에서 팝콘을 팔다 <프레쉬맨>의 엑스트라로 참여하며 배우 경력을 시작했다. 1993년 드니 아르캉 감독의 <가면 속의 정사>를 거쳐 아톰 에고이얀 감독의 <엑조티카>에 발탁된 그녀는 유괴, 살해된 딸을 잊지 못하는 남자 앞에서 교복을 입고 매일 밤 춤을 추는 스트립댄서 크리스티나 역으로 영화의 기억을 통째로 삼킬 만큼 진한 잔상을 남겼다. 이후 국경을 넘어 일거리를 찾아나선 커시너는 래리 클라크 감독의 화제작 <키즈> 오디션에서 클로에 셰비니에 밀려 고배를 들었지만, <일급살인>(1995), <크로우: 천사들의 도시>(1996), <매드 시티>(1997), <센츄리 호텔>(2001) 등 다수의 미국영화에 출연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성공적 TV시리즈 <L워드>와 <24>가 이력에 추가됐다.
색깔도 목표도 천차만별인 출연작들이 창조한 커시너의 캐릭터는 약속한 듯 야심과 정념을 품은 우울한 미인이다. 그녀의 미모는, 영화가 짐짓 모른 체해 도리어 신비화되는 보통 여배우의 그것과 달리 캐릭터가 생존을 위해 이용해야 하는 명백한 조건이다. 미아 커시너가 분하는 캐릭터의 비극은, 아름답고 섹시하기 때문에 그녀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자신이 욕망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즉, 그녀들은 매력을 ‘팔아’ 얻은 대가- 돈이든 감정이든- 를 다시 진정 원하는 것과 교환하는 복잡하고도 고통스런 거래를 벌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미아 커시너가 분한 여자들은 허방을 딛기도 한다. 성 정체성도 재능도 확신하지 못하는 <L워드> 초기의 제니는, 버림받은 강아지마냥 손 내미는 아무에게나 안겼다가 상대가 진짜 사랑을 느낄 무렵 떠나기를 반복했다. “이 계집애야 그렇게 좀 살지마”라고 등을 두들기고 싶을 지경이었다.
영화 속 세상은 언제나 그녀를 탐닉했지만 소중히 여겨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미아 커시너는 이 세계에서의 삶을 탐닉하고 소중히 여기는 듯하다. 습관적 여행자로 알려진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들이 처한 조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이후 5년간 아프리카, 멕시코 등지에서 여성과 아동 난민들의 고된 삶을 취재하고 보고한 책 <나는 이곳에 살고 있다>를 공동 편집했다. “내가 사는 세계를 둘러보면 가끔 울고 싶어져요.” 절대로 울리고 싶지 않은 여자가 이렇게 말할 때, 우리는 한없이 불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