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남양주종합촬영소. 가족 단위 관람객 덕분에 흥겨운 분위기지만, 지난 10월28일 오후 3시 김경묵 감독의 <청계천의 개> 마지막 촬영장은 고요했다. 전날 새벽부터 세트촬영이라고 들었는데, 이제야 첫 번째 컷을 준비 중이다. 세트제작에 뭔가 착오가 있었다는 한 스탭의 전언. 화면 가득한 인어 그림에서 시작하여, 그림이 걸린 방 안 침대 위 남자주인공의 뒷모습을 비추며 끝나는, 무빙과 조명의 타이밍이 중요한 영화의 첫 장면 촬영이 이어진다. 영화를 통해 커밍아웃하고(<나와 인형놀이>), 미니멀한 형식 안에 파격적인 실험을 담았던(<얼굴없는 것들>) 김경묵 감독의 두 번째 중편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작은 20분짜리였단다. 아무리 보아도 40분은 훌쩍 넘을 듯 보이는 시나리오는 소녀가 되고 싶은 소년, 소년의 환상 속 분신인 소녀, 소년과 소녀를 억압하는 악마 혹은 경찰. 이들이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만난다. 장소는 다양하고, 성적인 표현 수위도 높은데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관통하는 CG도 필요하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서울영상위원회로부터 받은 제작비가 모자라 촬영을 중단한 채 후원금을 모으고, 돈을 벌었다는 김경묵 감독은 “왜 이 영화를 20분이라고 생각했는지. 경험이 없어서 그랬던 모양이다”라고 말한다. 해사한 그 표정이 자신이 찍고 있는 영화, 그 영화가 처한 위기상황과 대조를 이룬다. 든든한 동료들 때문이었을까. 누구보다 시나리오를 잘 이해해준 민수 역의 박지환은 감독이 조연출로 참여했던 <유령소나타>의 주연배우였고, “웬만한 여배우라면 나서지 않을 시나리오를, 멋모르고 시작했다가 심하게 고생했다”는 지영 역의 열리목은 원래 뮤지션. 김경묵 감독이 처음으로 경험했다는 촬영감독과 연출부 등 스탭들은 인터넷에서 만나거나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보수없이 자원한 지인들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 애초의 예산에서 400만원을 넘긴 채 촬영이 종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쇼킹하고 어둑한, 그러나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그의 내면이 궁금하다면, 어떻게든 영화가 완성되기를 바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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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묵 감독의 <청계천의 개> 마지막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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