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냉정과 열정 사이] 그 남자만의 사모곡
2007-11-16
글 : 김애란 (소설가)
관객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는 영화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네개의 명사와 하나의 접속사, 그리고 부사. 영화의 원제를 구성하는 문장 성분이다. ‘도쿄타워’는 그 첫머리에 홀로 서 있고, ‘엄마와 나’는 ‘와’란 접속사로 친밀하게 묶여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쉼표 바깥에서 ‘때때로’와 함께 호명된다. 각각의 항은 공간, 관계, 시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중 ‘사연’의 그림자가 어리는 것은 마지막 항이다. 그러니까, 때때로 + 아버지. ‘가끔’이나 ‘종종’보다 더 띄엄띄엄한 느낌을 주는 시간의 마디. 우리는 그가 가족에게 손님 같은 존재였으리란 걸 눈치챌 수 있다. 그런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였을지. 그런 아버지를 둔 자식의 기분이 어떠했을지도. 동시에 우리는 제목만으로,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마사야’(오다기리 조)는 일찌감치 아버지를 멀찍이 떼놓고 호명하지만, 한 박자 쉬고 부르는 쉼표 안에서, 그가 옛 시절을 매만지는 손길과 애정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쉼표는 ‘마사야’가 자신의 가족사를 돌아보는 전반적인 시선과 호흡이기도 하다. 영화의 제목은 영화에 충실해 보인다.

영화는 명백한 사모곡이다. 아이는 자라고 부모는 늙는다. 자식은 철이 없고 어미는 헌신적이다. 아비는 여기 없지만, 이상하게 꼭 있어야 할 시간, 있어야 할 자리에 우연찮게 와 있다. 부모는 쇠하고 자식은 부모의 부모가 된다. 그리고 그들 주위에 한 가족이 공유한 시대의 조형물이 있다. 화투, 오락기, 전보, 기차 등 작은 소품에서부터 거대한 도쿄타워까지. 인물들은 귀엽고 건강하며 엄살이 없다. 가장 건강한 인물은 어머니이며, 가장 말도 안 되는 인물처럼 그려지는 아버지도 착한 편이다. 아버지는 ‘때때로’ 나타나지만 인상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가 다른 인물들에게는 없는, 소중한 것 중 하나, 결함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부재하고 아들은 나태할 따름인데, 마사야는 내내 미안해한다. 어머니의 젊음, 노동, 음식 등 모든 것에 자신이 빚지고 있다는 걸 알아서이다. 아들은 자꾸 미안해하는데, 사실 마사야와 어머니 사이에 큰 갈등은 없다. 마사야의 후회, 반성이 담담하게 다가오는 건 그가 딱히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사야의 비행은 평범하고 사소하다. 유급을 맞는다거나, 노름을 한다거나 하는. 마사야의 진짜 죄책감은 철없던 시절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먼저 스러지는 것이 있어야 피어나는 것도 있다는 단순한 진리, 삶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고통에서 나온다. 그것은 우리가 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섭리이기도 하다. 감독은 어머니를 사실적으로 그리려 노력한다. 작게 말하되 꾸준히 말하기. 절색도 박색도 아닌 외모에 담배를 즐기고, 외간 남자에게 흔들리기도 하는 모습으로. 그래도 사모곡은 사모곡. 영화는 어머니를 이상화시키지 않지만, 어머니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만큼은 멈출 수 없어 하는 것 같다.

영화의 흐름은 더디고 잔잔하다. 그 리듬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감독이 공들여 설명하는 인물들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다. 영화는 ‘정서’를 중요하게 여기되 그것의 바탕이 되는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깊숙이 초대하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이 가족의 일화는 두께를 가지기 전에 멈춰버리고 툭툭 끊어진다. 전개와 전개가 연속되는 느낌. 잘라내야 하는 감정뿐 아니라 필요한 감정까지도 제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 그것을 ‘거리두기’라고만 부를 수 있을지 잠시 갸웃거려졌다. 그래서였을까? 소소한 일화와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난 뒤, 마사야의 진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는 슬픔을 강요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나누려고도 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만이, 상대를 잘 대하는 것은 아닐 텐데. 내가 우는 것은 당신의 이야기가 신파이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문득 이야기를 통해 형성될 수 있는 교감 혹은 우정이란 사실 우리가 기피하는 일종의 ‘모자람’ 속에서 만들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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