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히트> -안흥찬
2007-11-16
고개를 하늘 높이 쳐들 수 있게 그렇게 살려고

영화라는 매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편의 영화가 인생을 바꿀 수는 없다. 아니, 바뀐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다. 때로는 현재와 허상을 구분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픽션의 세계로 도망치듯 몰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도망일 뿐이지 않나. 나도 영화의 그런 특질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그런 가치를 지닌 영화는 있다. <엔젤 하트>가 그러했고, <이터널 선샤인>이 나에게는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와 공상을 자극하는 영화들이었다. 나는 때때로 그렇게 공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영화들이 부럽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길은 다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멀 것이란 생각에 그만둔 적이 많다. 내 인생에 있어 영화는 나의 철학적 수단이라고 할 정도로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픈 추억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책을 읽기보다는 한편의 영화에 함축된 이야기로 남들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빠르고, 쉽고, 관음증적인 쾌감 덕분에 우리는 영화에 몰입하고 열광하는 것이리라.

1995년 즈음 군대를 마치고 음악과 생의 딜레마에 빠진 시절이 있었다. 이 시기에 나를 더욱 견고하고 깊은 심호흡을 하게 만든 영화 한편이 있으니 바로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이다. 이 영화는 나에게 삶의 치밀함과 남자의 승부욕과 적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혼돈 속에서의 침착함을 가르쳐주었다. ‘왜’라는 토를 달기보다는 말없이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그런 우정과 함께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과론에 집착하며 살아간다. 나에겐 언제나 과정론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찌보면 뻔할 수 있는 결과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데, 그렇게 드러나는 현실이 매우 차갑다. 오버액션도 오버감성도 선정적인 영상도 없다. 웅장한 음악이나 화려한 액션도 없다. 다분히 미국사회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마이클 만 감독은 잔잔한 듯한 치밀함으로 묘사한다.

왜 이 두 아저씨들은 남들이 하는 말과는 다른 포스를 보여주는 걸까. 냉정함과 인간미가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 좋은 예를 나에게 여지없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닐은 젠틀한 범죄자이면서 냉소적이라 할 만큼 이성적이다. 닐을 연기한 로버트 드 니로의 시니컬한 표정은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따라해보고 싶은 표정일 것이다. 러닝타임 내내 사람들의 현실적이고도 이성적인 고뇌를 곱씹게 만들어준다. 알 파치노가 연기한 한나는 노련하고 직감적이며 과격할 정도로 이성과 감성의 사이를 넘나든다. 그들 둘의 행동과 대화는 생에 있어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인격체를 그려내는 것 같다. 혹시 이 느낌은 나만의 망각인가? <히트>에서는 이렇게나 멋들어진 두 중년 아저씨들이 멋지게 남자들의 삶에 대해 털어주신다. 닐과 한나가 노가 커피숍에서 대화하는 장면은 ‘이것밖에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을 토대로 서로의 삶에 대해 공감하고 격려하고 행운을 빌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남자는 형사와 범죄자의 관계지만, 사실상 이 대화에서는 둘도 없는 친구이다. 이쯤 되면 영화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 될 법도 하다. 하지만 마이클 만 감독은 비극으로 결말을 지어버린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방식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 나로 하여금 정의는 과연 무엇인지, 어느 쪽이 정의이며 선과 악 중 어느 것을 선으로, 어느 것을 악으로 정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반드시 범죄자가 악인 것만은 아니다. 생에 있어 범죄라는 것을 어디까지 헤아릴 수 있을까.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삶의 기로에서 우린 범죄 아닌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왔다(물론 아주 개인적 사견에 의한 해석이니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이 글을 읽어주시길 바란다. 현실주의적인 차원으로 바라본 나의 견해를 서술한 것이니 양해를 바라겠다). 삶을 살아가는데 굳이 선과 악을 구분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은 그저 나의 삶이다. 때로는 선하게, 때로는 악하게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정의는 승리할수도 있지만 참된 진실은 간혹 처절한 잔혹함으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곤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과거의 위인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요즘에도 있을까. 영웅을 바라보고 영웅처럼 살아가고픈 모든 남자들의 로망. 지구촌 수십억의 머릿속에 있는 꿈들. 살아오며 배우며 느낀 모든 개똥철학들. 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으며 그 답이라고 나온 것은 죽을지언정 동료와 나 자신만의 약속을 지키고 뚜렷한 삶의 목적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었다(혼잣말인데 완전 장엄하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의 목표과 주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나에게 물을 때마다 고개를 떨구곤 한다. 고개를 하늘 높이 쳐들 수 있는 그런 삶을, 그런 삶의 이야기를 만드는 그날까지 이 영화가 남겨준 여운은 나의 삶에 오랬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안흥찬/ ‘크래쉬’ 보컬 겸 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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