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디즈니 공주의 뉴욕 원정기
2007-11-13
글 : 황수진 (LA 통신원)
<마법에 걸린 사랑> LA 시사기

디즈니 동화의 나라 앤달라시아. 진정한 사랑을 믿는 주인공을 오늘날의 삭막한 현실에서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작가인 빌 켈리는 진짜 동화 나라에서 주인공을 데려왔다. 진정한 사랑과의 키스를 꿈꾸며 동물들에 둘러싸여 노래하는 지젤(에이미 애덤스)은 에드워드 왕자(제임스 마스덴)와의 결혼식 날, 사악한 왕비(수잔 서랜던)의 꾐에 빠져 더이상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가 통하지 않는 현실 세계로 떨어진다. 그녀가 하얀색 결혼식 드레스를 입고 맨홀에서 기어나와 접하게 되는 것은 냉소적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도시인 뉴욕의 한복판, 타임스스퀘어이다.

2001년, 케빈 리마 감독이 처음 접한 시나리오 <마법에 걸린 사랑>(Enchanted)은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였다. 이 프로젝트가 7년을 개발단계에서만 진척없이 머물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디즈니에 대한 디즈니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관객의 좀더 복잡해진 취향을 만족시켜야 했고, 그 때문에 전체적인 톤을 찾는 데만 몇년을 보낸 것이다. 디즈니의 애니메이터 출신으로 <타잔>과 <101 달마시안2>를 연출했던 케빈 리마 감독은 로맨틱코미디의 포맷에 담긴 고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마주로서 <마법에 걸린 사랑>을 해석했다. 그래서 그의 프레임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유명한 순간들, 독사과를 건네는 노파, 탐스러운 사과를 베어무는 공주 등이 실사 화면에 새롭게 탄생해 영화의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섹스 & 시티>의 캐리와 친구들에게 더 어울릴 것 같은 거대한 도시 앞에서 커다란 눈망울로 여전히 진정한 사랑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지젤의 모습을 보면 솔직히 한숨부터 나온다. 그런 그녀를 이해해주고 손을 내미는 존재는 엄마가 없는 소녀 모건(레이첼 코비)과 이혼전문변호사 로버트(패트릭 뎀시)뿐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실사로, 뮤지컬로, 나중에는 사악한 용과 싸우는 액션물로 쉴새없이 전환되는 <마법에 걸린 사랑>은 2차원의 분명하지만 단순한 세계의 지젤이 어떻게 복잡한 3차원의 세계에서 진짜 인간으로 변신하는가를 그리고 있다. 꿈을 가진 소녀와 그녀 앞에 선 현대의 거대한 도시.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가 찾아낸 것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 왕자다.

천진난만한 눈망울의 지젤은 대부분의 관객에게는 낯선 얼굴일 에이미 애덤스가, 동화에서 빠져나온 에드워드 왕자는 <엑스맨>의 사이클롭스로 익숙한 제임스 마스덴이, 아내가 떠난 뒤 뉴욕에서 혼자 어린 딸을 키우고 있는 현대판 왕자는 <그레이스 아나토미>의 패트릭 뎀시가, 그리고 사악한 왕비로는 수잔 서랜던이 열연했으며 주인공을 지켜주는 동물 조력자로는 줄무늬 다람쥐가 등장해 그 특유의 귀여움으로 어린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음악은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에 참여한 디즈니의 전설적인 작곡가 앨런 멘켄이 맡았다.

케빈 리마 감독

“여전히 마법의 세계는 존재한다”

-현대판 디즈니 이야기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지젤은 현실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진실한 모습, 디즈니의 공주의 모습을 버릴 필요가 없다. 긴 머리를 자르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지 않아도 됐다. 사람들은 마치 공주 이야기가 더이상 어린아이들에게 다가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여전히 그 마법의 세계는 존재하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갈 뿐이다. 나는 어른들이 그 세계를 너무 일찍 아이들에게 빼앗고 있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

-3D애니메이션이 대세인데 앞부분 8분가량을 2D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화는 고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마주로 시작한다. 그 8분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엑기스만 꼭꼭 눌러 담은, 말하자면 디즈니 통조림이다. 그 위에 물만 좀 부으면 그 자체로 88분짜리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된다. (웃음) 고전이 공존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주인공으로 얼굴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에이미 애덤스를 선택했다. 그때에는 그녀가 <준벅>으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션이 되기 전으로 들었는데.
=사실 스튜디오에서는 스타 캐스팅을 원했다. 하지만 동화 속에서 막 빠져나온 순수한 주인공으로 이미 익숙한 스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00명 정도의 배우들을 오디션했다. 처음 에이미를 보았을 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큰 눈에 흰 살결을 한 디즈니의 완벽한 공주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녀가 캐릭터를 바라보는 태도였다. 그녀는 캐릭터를 섣불리 어떻다고 판단하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은 비웃지 않았다. 스스로 마음 한구석에 캐릭터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를 바라보는 관객은 어떻겠는가. 일단 에이미를 캐스팅하고 나서 패트릭 뎀시, 제임스 마스덴, 수잔 서랜던이 하나하나 들어왔다.

-패트릭 뎀시를 현대판 왕자로 캐스팅한 것은 절묘했던 것 같다. <그레이스 아나토미> 이전에 캐스팅한 것인가.
=아니다. 그가 <그레이스 아나토미> 시즌2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현대 여성들은 이제 백마 탄 왕자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상처입은 왕자를 스스로 구해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언제 가장 힘들었나.
=센트럴파크에서의 뮤지컬 장면이다. 영화를 보는데, 그때 겪었던 스트레스를 떠올릴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동선을 기획하고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데 그 규모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구경꾼은 패트릭 뎀시 때문에 어린 소녀에서부터 할머니까지 난리도 아니었다. 그가 나오는 대부분의 야외 촬영분은 다들 ‘사랑해요’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다 후시녹음이다. 게다가 촬영 당시의 뉴욕은 비가 자주 왔다. 지금 영화를 보면 쨍쨍한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지만, 그 뒤에서 나는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춤추고 노래하는 동물들은 진짜 동물들인가.
=반은 실제로 현장에서 똥을 싸는 동물들이고 반은 컴퓨터로 만들어냈다. 패트릭이 지젤을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온 다음날 아침 직접 손으로 들어올려 내보내는 동물들은 다 실제 쥐와 비둘기들이다.

-줄무늬다람쥐가 내는 소리를 직접 연기했다고 들었다.
=원래 &#54614;에게는 목소리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현장에서 상대배우를 위해 직접 찍찍거리는 소리를 내주면서 그 캐릭터가 진짜 살아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통해 그 생기가 덧붙여져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지젤’역의 에이미 애덤스

“지젤은 성장하는 캐릭터다”

-자신과 지젤의 닮은 점이 있다면.
=사람들의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한다는 점? 물론 지젤이 나보다 훨씬 그 점에서 뛰어나지만. 긍정적이고, 아직도 순진한 구석이 있다는 것 정도.

-이 영화는 동화나라의 지젤이 서서히 변화해나가는 이야기다. 언제 그런 순간이 왔다고 생각하나.
=아마 공원에서 로버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핫도그도 먹기 시작하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그 속의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녀는 변화한다. 그날 저녁 그녀는 화를 내기까지 하지 않는가.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진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소리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배우로서 변화를 경험한 순간을 이야기해줄 수 있나.
=<준벅>을 찍었을 때였던 것 같다. 이전까지는 그냥 TV시리즈에서 역할이 주어지면 그냥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맡았다. 그런데 스캇 윌슨이나 엠베스 데이비츠 같은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면서 내 진짜 목소리를 찾는 일, 그리고 내 행동과 선택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젤은 결국 현실세계에 남기로 한다. 그녀의 그러한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 일단 변하지 않는 것은 한번 깨닫게 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깨어나면 다시 잠들 수 없는 것. 그게 성장이지 않을까.

-본인을 동화 속 주인공이랑 비교한다면 누구?
=신데렐라? 열심히 일하니까. 공주는 아닌 것 같다.

‘에드워드 왕자’ 역의 제임스 마스덴

“사랑이란 서로의 무게를 느끼는 것”

-<헤어스프레이>에 이어 뮤지컬적인 요소가 담긴 영화에 또 출연하게 되었다.
=그러게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가 나오게 되었다. 이전에 내가 <수퍼맨 리턴즈>나 <엑스맨>에서 맡은 역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마법에 걸린 사랑>은 뭐랄까 브로드웨이 쇼를 연상케하는 작품이다.

-에드워드 왕자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순진한 나르시시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감과 자기애로 넘쳐나지만 그가 거만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의 의도가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우리와 달리 모든 것이 단순한 세계에 살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것. 서로 같이 웃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말하고 나니까 정말 낯뜨겁다. 음. 함께 같은 속도로 성장해가는 것?

-에드워드 왕자는 지젤을 사랑했을까.
=왕자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 자체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지젤은 바로 육체를 가진 그 아이디어 자체이고. 그런 그가 자신이 상대의 진정한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의심을 갖게 되는 순간, 성장하는 것이다. 순수한 나르시시스트가 어느 순간 내가 아닐 수도 있다라고 인식하는 순간 변화하게 되고, 처음으로 희생을 하게 된다.

-타임스스퀘어 앞에서 동화 속 의상을 입고 수많은 관광객 앞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 어땠나.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이건 악몽이야라는 생각과 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라는. 그리고 이왕 하는 것이라면 즐기자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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