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중국영화가 아닐까? <검은 땅의 소녀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어로 대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 찍은 영화도 아닌데 그랬던 건 지금 한국에도 저런 일이 있나 싶어서였다. 지아장커나 리양 같은 중국 감독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가난과 궁핍을 21세기 한국영화에서 보는 것은 참으로 낯선 일이었다. 폐광촌에 카지노가 들어섰다는 뉴스만 보고 들었던 나 같은 사람에겐 <검은 땅의 소녀와>가 보여주는 현실이 몇 십년 전 일처럼 보인다.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 이후로 탄광촌의 막장인생에 카메라를 들이댄 다른 영화가 없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독립영화조차 탄광촌을 다룬 경우는 드물었기에 그곳의 삶은 모두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전수일 감독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가난한 이들의 안간힘과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궁지의 나락을 그린다. 그것을 단지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에 한 발짝 다가서는 의지가 읽히는 영화라는 점에서 <검은 땅의 소녀와>는 주목할 만하다.
<검은 땅의 소녀와>의 기자시사회는 스무명 남짓한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눈에 띄는 스타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다 전수일 감독의 전작들이 인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 탓에 다른 영화보다 현격히 적은 수의 기자들이 자리했고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영화에 관한 기사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도 관객도 많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드는데 그래서인지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검은 땅의 소녀와>는 신파로 만들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징하게 관객을 울릴 만한 이야기다. 진폐증으로 탄광에서 일할 수 없게 된 아버지, 정신지체를 겪는 11살 된 아들,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책임지는 9살 된 딸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불행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을 다룬다. 제발 저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두번 등장하는 미지의 여인(강수연)이 아이들의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검은 땅의 소녀와>는 한눈팔지 않고 그들의 불행을 지켜보기만 한다. 실제 그들의 삶이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것을 영화가 구원할 수는 없다는 원칙처럼 보인다. 가족은 막다른 궁지에 몰리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 선택을 하는 위치에 서는 것이 9살 소녀일 때 영화는 시적인 분위기로 고양된다. 소녀의 작은 어깨에 얹힌 엄청난 삶의 무게를 어찌할 것인가? <검은 땅의 소녀와>를 보는 것은 그 무게를 짐작해보는 경험이다. 가끔은 그런 무거움이 깃털처럼 가벼운 영화에 지친 당신의 영혼을 맑게 해줄 것이다.
P.S. 김혜리 편집위원의 휴가로 이번호 메신저토크를 쉬게 됐다. 그리고 지난호부터 <팝툰>의 만화작가를 인터뷰하는 코너가 생겼는데 개편과 더불어 너무 재미있어진 <팝툰>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지난호 정기독자 선물로 새로워진 <팝툰>을 보내드렸으니 이런 심정 이해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