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삶에 희망걸기, <하나 그리고 둘>
2001-10-31

“영화가 좋아요?”

“왜 영화가 좋아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뭐예요?”

“특별히 좋아하는 감독은 누구예요?”

다른 사람들의 궁금증이 이쯤 되면 난 내가 영화와 관련된 일을 선택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게 되고는 한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감독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들에게 설명하고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이것은 최소한 다른 직업을 가진 그 누군가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들에 대해서 그렇게 집요하게 “좋아하는 것”에 대한 취조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나의 넋두리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이건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2001년 10월17일 새벽.

내가 좋아하는 숫자는 23, 좋아하는 색은 블랙 & 화이트, 좋아하는 맥주는 하이네켄 병맥주. 다시 가만히 기억을 되씹으며 생각해낸 내가 좋아하는 것들…. 비틀스의 음악,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 이병우의 기타소리, 서태지의 자유, 김광석의 열정, 이상의 삶, 무라카미 하루키 스타일의 낙서, 장정일의 일기, 이중섭의 힘, 고흐의 욕망, 눈 내리는 겨울바다, 산 속의 풍경소리,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리고 내가 본 모든 영화들…. 그러나 지금 이것은 모두 거짓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나의 실체라기보다는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해”라고 말하고 싶은, 그래서 남들에게 나를 포장하고 싶은 나의 욕망의 부속품들에 가까울 수 있다. 그래도 내가 부정하기 싫은 것은 최소한 영화에 대한 욕망, 영화를 향한 욕망은 나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건 영화에 대한 나의 이야기이다.

영화 중에는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있고, 심하게는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혼자서 몇번이나 반복하여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 물론 소장용 작품들도 때론 세월의 무게에 순위가 밀려 가끔은 폐기처분되기도 하지만….

지난해 가을, 나는 아주 오래간만에 소장하고 싶은 작품을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다소 특수한 흥청거림 속에서 사뭇 낯설게 만난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처음에는 상영시간이 2시간40분이라는 부담을 안고 극장에 들어섰지만 난 영화가 끝났을 때 2시간40분이 아닌 그 몇배에 이르는 감동을 안고 극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에도 3번이나 다시 극장을 찾아 그 감동을 확인했다.

긴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시선…. 따뜻한 애정으로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찬찬히 쓰다듬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손길은 마치 오래 전 일기장의 독백처럼 가슴 한구석을 아련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잊어버리고 스치던 일상을 한편의 영화를 통해서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 그리고 둘>은 나를 충분히 극장으로 몇번이나 끌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나 역시 세상의 거울 같은 영화를 만날 때는 너무나 행복하다. 세상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투명하게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그네들의 대화와 행동을 엿보는 순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되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이건 나의 이야기다. 나에게는 지금 3살된 아들이 있다. 난 이상하게도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을 보면서 내 아들이 생각났다. 특히 이 아이가 내게 그려준 한 장면의 그림 그리고 한순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의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던 그 당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아이는 태어나서 백일이 지난 뒤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았다. 그 아이가 수술을 받기 전날 나는 병원에서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혹시 이 아이가 수술을 받다가 위험에 처할 경우가 수십 가지가 되더라도 보호자의 입장에서 수술에 동의한다고….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이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의 품에 안겨 있다가 처음 보는 간호사의 품에 안기면서도 이 아이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빠! 나, 잠깐 저기(수술실) 들어갔다가 올 거니까 기다려….” 아마도 살아오면서 난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했던 적은. “이 아이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면…. 그런데…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 사람은 내가 되겠다고….” 진짜로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나를 희생한다고 기도했던 적은…. 그리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느꼈던 것도…. 어쩌면 난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아이는 너무나도 맑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고 그 투명함은 나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을 주었다.

지금 내 아이는 무척이나 건강하다. 그리고 난 행복하다.

난 그 이유가 바로 그날 이 아이가 나에게 세상을 밝게 희망적으로 바라보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삶이란 충분히 희망을 갖고 살아갈 만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2001년, 나는 34살이다. 그리고 이제 한편의 영화를 제작한다.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흥분된다. <하나 그리고 둘>의 대사 중에는 에드워드 양 감독이 스스로를 위안하는 말이 있다. “영화가 생기면서 우리는 세배는 더 오래 살 수 있게 됐어….” 난 이렇게 생각한다. 영화는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거울이자 마음의 창이라고….

글: 홍지용/ 시네와이즈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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