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11월24일(토) 밤 11시
밤의 흔적이 널브러진 거리를 지나 어두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택시를 타고 다시 집으로 향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어둠으로부터 나를 구해줄 택시를 간절히 기다리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밤을 함께 나눈다는 불안과 쓸쓸함이 엄습하는 순간을. 그와 나는 동일한 행선지를 가고 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나눌 수 없는 완전한 타인. 도시의 택시는 스산하다. 짐 자무시의 <지상의 밤>은 해질녘부터 해가 뜰 무렵까지 로스앤젤레스,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를 차례로 돌며 그 도시의 시간을 달리는 택시 안에서 이야기를 찾는다. 그저 깜깜한 밤거리일 따름인데 영화는 인물들의 대화와 분위기, 그리고 가끔씩 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카메라를 통해 각 도시의 풍경을 택시 안으로 끌어들인다. 도시의 화려한 중심이 아니라 어둠에 버려진 듯한 구석들이 눈에 밟힌다. 추운 밤 길 한가운데서 택시를 기다리는 자와 거리를 돌고 돌며 손님을 기다리는 자 사이에는 새벽 밤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는 자들의 공통된 계급적 운명 같은 것이 있는데, 짐 자무시는 거기서 어떤 외로움의 공유 같은 것을 본다.
이를테면 로스앤젤레스의 노숙한 소녀가 베벌리힐스로 향하는 중년 여인을 태울 때, 표면적으로 행운의 여신은 여인쪽에 있는 듯하지만, 에피소드가 끝날 때쯤, 우리는 반문하게 된다. 허황된 꿈을 좇는 대신, 진짜 현실에 밀착된 소녀의 삶이 더 행복해 보이지 않는가. 혹은 뉴욕의 변두리, 화려한 도시의 중심으로부터 배척당한 두 남자가 택시 안에서 서로를 궁금해할 때, 외로운 남자들의 따스한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한편 생존과 싸우며, 사회의 편견과 싸우며 점점 지쳐가는 흑인 기사가 눈은 보이지 않지만, 사회의 편견을 가볍게 넘어서는 신비로운 여인을 만날 때, 영화는 묻는다. 과연 진정으로 보지 못하는 자는 누구일까. 헬싱키의 술 취한 세 남자와 운전기사가 무료한 표정으로 삶의 불행과 슬픔을 나눈 뒤, 밝아오는 도시 속에 홀로 남겨질 때, 우리가 보는 건 또다시 반복될 낯설고 외로운 도시의 일상이다. 위노나 라이더, 지나 롤랜즈, 로베르토 베니니, 베아트리체 달 등의 강한 개성이 물씬 배어 있으며, 지상에서 가장 고독한 음색의 소유자 톰 웨이츠가 ‘지상의 밤’에 연민의 노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