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이건주] 다시 카메라 앞에 선 순돌이
2007-11-22
글 : 이영진
사진 : 오계옥
<스카우트>의 이건주

<스카우트>에서 어린 선동열이 고깃집에 등장하는 장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관객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멍게 여드름 가득 얼굴에 붙인 이건주(26)를 보고 “선동열 감독과 닮았다”면서 그냥 웃는다면 10대. “아, 순돌이다!”라는 반가움이 튀어나온다면 그 이상이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10여년 전까지 순돌이는 ‘국민 막동이’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10년 가까이 방영된 장수 일요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을 기억하는지. 만물수리점을 운영하며 자칭 맥가이버라 여기는 임현식을 아버지로, 목청 높은 잔소리로 정을 과시하는 박원숙을 어머니로 뒀던 그 순돌이가 벌써 스물여섯이 됐다. “동선을 알았겠어요, 리액션을 알았겠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던 거죠. 자고 먹고 뛰어놀 나이에 카메라 앞에 섰는데요, 뭘. 그래도 신기하게 칭얼대고 울고불고하면서도 카메라 앞에 서면 잘했대요. 임현식, 박원숙 선생님이 그때 이야기하시면서 ‘넌 (연기) 오래 할 줄 알았다’고 하시죠.”

<스카우트>를 홍보하느라, 드라마 <왕과 나>의 먹보 내시 송개남을 연기하느라 인터뷰 일정을 수차례 변경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건주는 “다시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전혀 몰랐다”. “올해 초에 공익근무 끝내고 나서 집에서 석달 넘게 뒹굴뒹굴하면서 ‘일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기회가 없었다. 올 봄 타이에 여행 가 있는 동안 <스카우트> 제작진을 통해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도 설마했다. “공익근무하는 동안에도 짬을 내서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계속 떨어지니까 풀이 죽죠. <스카우트>는 전화받고 나서도 좀더 놀다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오디션 봐도 떨어질 게 뻔한데, 그랬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매니저 일을 대신해주던 고모가 재차 연락을 해 김현석 감독이 “사진만으로 거의 오케이를 내렸다”는 귀띔을 해주지 않았다면 찾아든 기회를 날려버렸을지도 모를 일. “연락받고 비행기 티켓이 없어서 좀 늦게 들어가게 됐어요. 근데 의상팀장님이 그랬대요. ‘선동열이 도대체 누군데 싸가지없이 제때 옷 맞추러 안 오냐고.’ (웃음)”

사실 <스카우트>가 이건주의 첫 영화는 아니다. 과거 <어른들은 몰라요>를 비롯해 어린이영화 10여편에도 출연했다. “비디오영화까지 치면 꽤 되죠. 근데 많이 달라졌어요. 이전에도 촬영현장에 모니터가 있긴 했는데 한번 촬영하고 맘에 안 들면 다시 찍는 지금 같은 식은 아니었어요. 배우로서는 지금이 좋죠. 맘에 안 들면 다시 하고, 다시 하고. 그래서 최고의 것을 관객에게 보여줄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까. 아, 그리고 밥차! 보쌈은 얼마나 맛있는지.” 멋진 투구폼을 보여주진 않지만, 극중에 잠깐 등장하는 신문에 쓸 선동열 사진을 찍기 위해 과거 야구선수였던 이에게 직접 사사하기도 했다고. “선동열 감독님이 VIP 시사회에 오시면 인사드리고 나중에 야구 보러 갈 때 좋은 자리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올림픽팀을 이끄시느라 해외에 가시는 바람에 못 뵀어요. (웃음) 실존 인물에게 나랑 닮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스카우트>에서 백일섭, 양희경을 부모로 모시며 제작진으로부터 “진짜 가족 같다”는 말을 수시로 들었다는 이건주는 “배우를 챙겨주는 자상한” 김현석 감독을 다음번에는 직접 ‘스카우트’하고 싶단다.

배우로서 다시 설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던 2007년이 그에게는 각별하다. “중학생 때 청소년 드라마 <스타트>가 마지막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20살 돼 매니지먼트에 소개받아 간 적이 있는데 대놓고 저보고 ‘너가 뭘 하려고 그러냐’ 하셨어요.” “연기 말고 딴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그에게 세인들은 ‘넌 이제 안 돼’라고 상처를 줬고, 그 상처가 아물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거슬러 유명세를 탔던 아역배우들이 흔히 겪는 유년 시절의 고통에 대해 물었더니 웃기부터 한다. “그 기사를 보셨어요? 그 인터뷰하면서 힘들었다고만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우울증에,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고 나오던데요. (웃음)” 사춘기 때 누구나 겪는 만큼의 방황을 했다면서 그는 다만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을 견뎌내는 일이 수월하진 않았다고 덧붙인다. “어려서부터 일을 시작해서 그런가.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저보고 연예인이라 건방지다는 둥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절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는 거죠. 처음에는 내가 잘못 안 했는데도 매달리고 그러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저도 그래요. 제가 싫으면 가시라고. (웃음)”

하지만 오래 참고 원했던 배우 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사람 때문이었다. “그래도 제가 인복이 있어요. 잊혀질 만하면 다시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서로 “살 빼”라고 면박주며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한살 터울의 배우 이재은을 비롯해 “곁에 남아 조언을 아끼지 않는 친구들과 옛 기억을 떠올려 출연 제의를 해주던” 이들이야말로 소중한 동력이었단다. “정말 나쁜 놈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스크린 속으로 들어와서 저를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로. <살인의 추억>의 박해일처럼”이라고 말하는 이건주. 스스로 “그런 모험을 할 만한 감독님들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모험을 하고 싶다면 출연료가 싼 지금이 적기”라고 덧붙인다. “가끔 주위에서 그래요. 어떻게 제 입으로 뭐 잘할 수 있다고 뻔뻔하게 말하느냐고. 근데 지금은 제 스스로 매니지먼트를 해야 하거든요. 저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교만을 떨어볼 기회가 한번쯤은 있었으면 싶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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