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파라노이드 파크> 혁신적 영화언어로 축조된 해방구
2007-11-27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구스 반 산트의 신작 <파라노이드 파크>가 개봉한다. 2000년대 접어들어 <게리>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로 신기에 가까운 영화언어를 새로 창조해냈던 그가 마치 이 영화들에 대한 후기를 쓰듯 <파라노이드 파크>를 만들었다. 어쩌면 구스 반 산트가 다시 메인스트림으로 돌아갈 경우 다시 보기 힘들지도 모를 미궁의 이미지와 사운드가 가득하다. 한 소년의 성장기에 갑자기 들어선 거대한 무엇으로서의 그 공원, 그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도 잠시 호흡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구스 반 산트가 걸어온 길은 좀 유별나다. 개인적인 성격이나 풍모, 하는 행동이 괴짜여서가 아니라 그가 선택해온 영화적 행보가 독특하다. <파라노이드 파크>의 원작자 블레이크 넬슨은 말하기를 “(내 고향) 포틀랜드 사람들은 명석하지만 이상하다”고 했는데, 역시 포틀랜드를 오래도록 안식처 삼아 영화를 만들고 있는 구스 반 산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명석하고 이상한 주민에 속할 것이다.

미국 인디영화의 총아로 시작하여 할리우드 메인스트림 깊숙이 안착하는가 싶더니 그는 나이 50이 다 되어서야 느닷없이 새로 말을 배운 아이처럼 이전의 영화 형식을 놀라울 만큼 뛰어넘는 죽음 삼부작의 형태로 <게리>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를 내놓았다. 이 작품들을 동세대 영화의 화법 중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꼽는 데 크게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신작 <파라노이드 파크>에 이어 구스 반 산트가 착수한 다음 작품이 미국의 70년대 게이 정치가 하비 밀크에 관한 전기영화이며 여기에 숀 펜과 맷 데이먼이라는 걸출한 할리우드 스타가 출연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내가 하비 밀크 프로젝트를 만든다면 좀더 메인스트림의 영화가 될 것”이라고 구스 반 산트는 말한 적도 있다. 그러니 이 점을 감안할 때 삼부작과 ‘하비 밀크 프로젝트’ 사이에 놓인 <파라노이드 파크>의 위치를 점쳐볼 수 있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마침내 실험적인 삼부작의 그 대단원에 놓인 어떤 후기처럼 보인다.

‘죽음 삼부작’에 덧붙인 이상한 후기 <파라노이드 파크>

특히 삼부작과 <파라노이드 파크>를 공통으로 잇는 내용이 죽음에 연루되어 있는 청년(소년)들의 이야기라는 건 흥미롭다. 삼부작은 죽어간 그들이 미제로 남겨놓은 사연에 대한 구스 반 산트의 상상력이자 그 죽음 자체에 대한 연구였다. 다만 <파라노이드 파크>에서는 소년이 죽음을 마주하는 형세가 역전된 것 같다. 소년이 서서히 자신의 죽음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벼락처럼 소년의 생활 안으로 틈입한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죽음을 대면한 한 소년의 두렵기 그지없는 그런데 매우 경쾌하기도 한, 그래서 무척 이상한 성장통이다.

크리스토퍼 도일(왼쪽)과 구스 반 산트.
구스 반 산트와 배우들.

알렉스는 이혼을 준비하는 부모를 볼 때 괴롭고 오로지 자신을 상대로 처녀를 면하려고 아등바등하는 여자친구 제니퍼를 대할 때 무심하다.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의 그는 남들보다 잘 못 타는 스케이트보드를 조금 더 잘 타는 것 말고 큰 욕심이 없어 보인다. 어느 날 친구 제라드와 함께 스케이트보더들의 천국 파라노이드 파크에 늦은 밤 찾아가리라 서로 약속하지만 제라드는 약속을 어기고 알렉스는 거칠기로 소문난 그곳에 두렵지만 홀로 간다. 거기서 알렉스는 부랑자 같은 청년에게서 함께 기차를 타러 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신나는 마음으로 함께 모험을 즐기러 갔다가 그만 경비원에게 쫓기게 된다. 그리고 단순히 그를 물리친다는 것이 돌이키지 못할 큰 실수를 낳게 된다. 영화는 사건이 벌어진 뒤 한달 뒤 시점에서 시작하고 시간은 이러저리 이동하며 사건과 알렉스와의 관계는 시종일관 의중으로만 진행되다 중반이 되어서야 실체를 드러낸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일부는 실화에서 소재를 얻었던 삼부작의 사례를 떠올리며 이것이 포틀랜드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이냐고 묻거나(포틀랜드에 실제로 그 공원이 있기는 하다) 혹시 1500여명의 오디션을 뚫고 선택된 아마추어 배우 알렉스 역의 게이브 네빈스와 이 소재가 혹시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냐고 자주 물었다. 하지만 신문기사의 내용에서 시작되었던 삼부작과 달리 <파라노이드 파크>는 포틀랜드에서 젊은 성인용 소설을 써온 블레이크 넬슨의 소설이 원작이며 애초 구스 반 산트는 블레이크 넬슨의 <파라노이드 파크>가 아닌 그의 다른 작품 <록 스타 슈퍼스타>를 영화화하길 원했으나, 그것 대신 이 작품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원작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만들게 된 것이다.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두드러진 건 지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미지와 사운드의 직조술이다. 실은 구스 반 산트는 <게리> 이후 꾸준하게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이 남긴 잔영을 직조하는 데 힘을 쏟는데, 그것이 구스 반 산트의 지금 영화의 독창성이다. 특히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가 실재의 잔영을 구조화한 것이라면 <파라노이드 파크>는 소설에서 받은 인상을 구조화해낸다.

이미지의 절단과 재배치

<파라노이드 파크>에서 그 구조화의 방식이란 우선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와 마찬가지로 몇개의 덩어리가 되는 신들을 설정한 뒤 그것을 앞뒤로 잘게 나누어 리듬과 정서에 따라 다시 재배치하는 과정으로 총체성을 이루는 것이다. 구스 반 산트는 대화장면을 찍을 때도 대개 두대의 카메라로 서로 다른 각도에서 잡아내 같은 장면이 되풀이될 때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벨라 타르나 샹탈 애커만, 미클로시 얀초 혹은 앤디 워홀의 롱테이크에서 자신의 영화적 정서를 발견한 바 있던 구스 반 산트는 때때로 롱테이크를 선호할 때도 있는데, <엘리펀트> 당시 각본에는 이렇게 쓰여진 부분이 있었다고도 한다. “소년들이 풋볼을 한다. 6분간….” 많은 장면 지시가 없는 만큼 <파라노이드 파크>의 각본은 도합 56쪽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파라노이드 파크>에는 35mm카메라로 찍힌 세계와 슈퍼8mm로 찍힌 두개의 세계가 있다. 35mm로 찍힌 세계가 정교하게 재조립되는 그 사이로 알렉스의 판타지 혹은 그의 소망이 삽입된다. 그러니까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길거리에서 즐겁게 연습하는 스케이트보더들의 아름다운 몸의 움직임들은 슈퍼8mm로 촬영됐다. 영화의 대부분 장면인 35mm 촬영은 촬영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이 했지만, 이 스케이트 보딩 장면들은 레인 캐시 리라는 전문 스케이트보드 촬영감독이 따로 맡아 찍었다. 구스 반 산트의 말을 요약하자면 “스케이트보더들에게 어울리는 카메라의 종류는 무겁고 비싼 35mm가 아니라 싸고 간편한 슈퍼8mm”라는 것이다. 이 대답은 구스 반 산트가 학생 시절에나 쓸 수 있는 16mm 카메라의 화면비를 고려하여 <엘리펀트>의 정사각형 포맷의 1.33:1의 비율을 선택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 <파라노이드 파크>에서 두 카메라의 혼용은, 찍고자 하는 대상이 속해 있는 문화권 안에서 필연적인 형식을 선택하는 구스 반 산트의 현명함을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영화에는 몇몇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다운 장면들이 있다. 우편엽서 같은 그러나 시간의 변화가 느껴지는 첫 장면. 화면의 중앙에 다리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아래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과 차들, 배들이 지나가는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물론 <엘리펀트>의 첫 장면을 연상시킨다. 형사가 알렉스를 불러 이런저런 심문을 할 때 탁자 저 끝에서 천천히 전진해오다 알렉스의 얼굴에서 멈추는 카메라의 트래킹은 <엘리펀트>에서 탈의실에 앉은 여학생의 얼굴로 향해 들어가던 카메라의 무빙과 일치하는 것이거나 <라스트 데이즈>에서 블레이크로부터 하염없이 멀어지던 장면과 대구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중에서도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는 사건을 일으킨 뒤 아무도 없는 제라드의 집 욕실에서 샤워하고 있는 알렉스의 얼굴 혹은 그 얼굴을 감싸쥐고 있는 알렉스를 슬로모션으로 잡아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구스 반 산트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이런 이미지들이 펼쳐질 때 어김없이 심정적 풍경으로서의 사운드는 들려온다. 게다가 구스 반 산트가 편집작업 중 조수 에릭 힐의 컬렉션 목록에서 선택했다는 대다수의 음악들(그러나 영화에 사용되는 니노 로타의 음악은 구스 반 산트 본인의 컬렉션에서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은 <파라노이드 파크>가 음울한 분위기로만 지속되는 걸 방해하면서, 곧잘 모호한 발랄함으로 이끌어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자유롭고 신비한 세계로의 초대

<파라노이드 파크>만의 한 가지 마술이 있다면 얼굴이다. <파라노이드 파크>에서 게이브 네빈스의 얼굴과 클로즈업은 이 영화의 숨은 정서적 열쇠와도 같다. 물론 구스 반 산트의 인물들은 자주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들은 마치 희로애락이 없는 인물들처럼 보이고, 캐릭터로서 양식적인 연기를 하기보다 살아 움직이는 식물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만큼 조용하고 무성적이다. 특히 <파라노이드 파크>에서는 누군가 “천사의 얼굴”이라고 부르고, 또 누군가는 “보티첼리 그림의 미소년”이라고 부른 게이브 네빈스의 얼굴이 대표적이다. 이 소년의 얼굴은 지금까지 구스 반 산트의 인물들이 보여준 식물성 연기 중 가장 신비한 축에 속한다(한눈에 이걸 알아본 건지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은 오디션장에서 “카메라로 잡으면 정말 멋질 것!”이라며 게이브 네빈스를 강력히 추천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울 때 이 영화는 우리의 판단을 잠시 유보하게 하거나 혹은 반대로 그의 내면 안으로 강렬하게 우리를 끌어들이는 마술을 부린다. 차라리 이 주인공 소년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는 어딘가 딴 세상으로 잠시 인도되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그곳 파라노이드 파크 같은 곳으로!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한 평자는 <죄와 벌>에 느슨하게 기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블레이크 넬슨의 원작 소설에 비해 “구스 반 산트는 죄의 논점을 급진적으로 더 톤 다운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영화 속) 사건이 구스 반 산트의 천사(알렉스)를 자유롭게 하며, 위락 공원(파라노이드 파크)이라는 것으로 변형된 세계의 운동과 물질, 그 미적 경험 안에 그(알렉스)를 입회시킨다”며 이건 “윤리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미적 경험으로의 진보적 발전”이라고까지 썼다. 실은 파라노이드 파크란 단순히 범죄 구역이나 금단의 지역이라는 배경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곳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건은 오히려 소심한 주인공 알렉스와 우리에게 스케이트보더들로 대변되는 그 자유로운 운동감의 미적 경험을 마침내 보고 느끼게 하는 해방구의 실마리가 된다는 뜻일 것이다. 여기에 다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있다. 알렉스에게 파라노이드 파크가 동경과 불안이 공존하는 신묘한 신천지였던 것처럼 구스 반 산트의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는 우리에게 기이한 보기의 경험을 안겨주는 우울하면서도 쾌활한, 신묘하기 그지없는 감정의 해방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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