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는 크리스마스 대목에 맞춰 개봉하는 사랑에 관한 가벼운 외화들 중의 하나이다. 동거하던 여자와 헤어지고 아버지와 동생이 사는 옛집으로 돌아와 드러누운 형과, 한없이 가벼운 '연애질'에 빠져 하루에도 세명의 여자와 정분을 나누는 동생과, 큰 아들 걱정과 성탄 장식으로 분주한 아버지가 나오는 이 영화는 흡사 TV 명절특집 가족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연애니 실연이니 하는 지극히 사적인 문제에 관한 감정들을 부자지간과 형제지간에 나누는 광경이다. 나이 든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닭고기 스프를 끓여 먹이려다 거부 당하고, 작은 아들에게 네 형한테 신경 좀 쓰라고 잔소리를 퍼붓다 무시당하는 광경은 자꾸만 어머니와 두 딸의 광경으로 겹쳐보인다. (한국에서는 남자들끼리 살가운 대화는 커녕 집에서 부딛히는 것조차 어색해하는 가족이 많지 않은가?) 한국에서 '여성적'이라 일컬어지는 김소월의 <진달래 꽃>을 번역하여 들려주면 프랑스인들은 시적 자아를 남자라고 한다더니, 멘탈리티와 젠더의 문화적 차이가 실감되는 대목이다.
황진미/영화평론가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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