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티모시 올리펀트] “이번엔 악당이 아니다. 히어로다.”
2007-11-27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히트맨> <다이하드 4.0>의 티모시 올리펀트

티모시 올리펀트가 지난 10여년간 연기한 배역에서 키워드를 찾으라면 ‘미워할 수 없는 사이코’ 정도가 될 것이다. <스크림2>(1997)에서의 어벙한 살인마, <고>(1999)의 능글능글한 엑스터시 판매상, <걸 넥스트 도어>(2004)의 포르노필름 제작자. 다시 말하자면 이런 거다. 멀쑥하니 잘생기긴 했으나 어쩐지 주연급으로 내세우기에는 모자란 조연급 남자배우. 하지만 울리펀트의 어정쩡한 입지는 지난 2년간 완벽하게 상승했다. 먼저 그는 할리우드에 서부영화 붐을 열어젖힌 <HBO> 시리즈 <데드우드>의 보안관 ‘세스’ 역으로 전 미국의 심장을 앗아갔고, <다이하드4.0>에서는 브루스 윌리스를 손바닥 위에 갖고 노는 테러리스트 두목을 연기하며 블록버스터 입성에 성공했다. 개봉을 기다리는 게임원작 액션영화 <히트맨>은 티모시 울리펀트가 생애 처음으로 단독 주연을 맡은 메이저 액션영화. 지난 11월17일 뉴욕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울리펀트는 “이런 대규모 홍보 투어는 난생처음”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마도 새로운 액션스타의 탄생을 자축하는 너스레였을 것이다.

-‘에이전트 47’ 역할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자비에르 젠슨 감독과 미팅을 한 다음날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촬영까지 6주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 때 이후로 그렇게 열심히 운동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보디빌딩 계통의 운동이었는데 1∼2주 동안은 하루에 2번씩 다양한 운동을 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에어로빅 운동을 못하게 하더라. 살이 빠지면 안 되니까. 군살은 빠지고 근육으로만 15파운드(약 6.8Kg) 정도를 늘렸다. 165파운드(약 74.9Kg)에서 180파운드(약 81.7Kg)로. 게다가 트레이너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리스트를 보내줬다. 설탕도 안 되고, 소금도 안 되고, 유제품도 안 되고. (웃음) 단백질 음식 위주로 하루에 5∼6끼 먹었다. 검도도 연습을 많이 했는데, 검도장면을 촬영할 때는 ‘칭! 칭! 칭!’(칼싸움 소리를 흉내내며) 칼싸움을 하다가 누군가가 실제로 맞아서 ‘아악!’ 하고 소리지르면 ‘컷!’ 하기를 계속 반복했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멍도 많이 들고. 두 번째 손가락 사이가 찢어졌는데 촬영 때문에 병원도 못 간 채 대충 싸매고 계속 찍었다.

-<히트맨>의 캐릭터는 대머리다. 머리 깎을 때 어땠나.
=이 역할은 <다이하드4.0>을 찍기 전에 제의받았는데, 비디오 게임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말만 들었던 탓에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자비에르와 이야기를 하고 나니 믿음이 생겼다. 스튜디오에서 나를 믿고 이렇게 큰 역할을 준 것만도 고마웠다. 하지만 머리 깎는 건 별로 맘에 안 들었다. 역할에 필요하니까 한 거다. 나도 아내도 대머리는 별로 안 좋아했다. 대머리 남자들도 처음에는 동질감을 느끼다가 일부러 자른 걸 알면 반감을 느끼더라고. (웃음) 어떤 사람들은 직접 와서 기분 나쁘다고 말하더라. (웃음) 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꼭 다시 하고 싶다. 좋은 경험이었다.

-<히트맨> 게임을 해본 적이 있나.
=해본 적 없다. 원래 비디오게임하고는 안 친하다. 캐릭터와 게임에 대해 읽어보긴 했는데, 나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결정내리는 것을 좋아한다. 과거에 열심히 리서치해서 연기한 적이 있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 직감을 믿고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대본이 좋았고 감독인 자비에르가 게임 팬이었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됐다. 이 캐릭터를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만으로 보기도 했다. 히트맨이란 것이 고립되고 인간관계가 거의 불가능한 직업이잖나. 그런 세계가 갑자기 무너진다면 당신은 어떡하겠나.

-<다이하드4.0> 이후 악역을 자주 맡는 것 같다.
=악당 역을 맡으면 더 자유로운 게 사실이지만, 이 역할은 악역이 아니다. 잘 생각해보면 히어로라고도 할 수 있다. 자비에르는 우아하고 스타일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처음 미팅에서 히트맨이 걸어가는 장면을 설명하는데, 거의 발이 땅에 닫지 않고 떠가는 모습으로 설명해줬다. 그래서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뒤에서 찍는 장면이 특히 많았으니까.

-대사보다는 폭력장면이 더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폭력장면을 찍을 땐 그게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되는지, 먼저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를 먼저 납득시키는 게 우선 아닌가. 그리고 원래는 대사가 많았는데 준비 작업을 하면서 대사를 많이 없앴고, 편집하면서도 많이 들어냈다. 행동과 표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캐릭터는 처음보다 더 말이 없어야 할 것 같았으니까.

-니카 역을 맡은 올가 쿠리렌코와의 연기는 어땠나. 특히 누드장면.
=신인배우지만 무척 열심히 하는 게 보여서 참 편하고 좋았다. 누드장면에서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저 나와 감독을 믿고 따라줘서 고마웠을 뿐이다. 또 자비에르 감독이 촬영장 분위기를 연기하기 편하게 만들어줬다. 근데 나는 올가보다도 더 열심히 운동했는데도 벗는 장면이 없더라. (웃음) 자비에르가 그러더라. 히트맨은 게임에서 절대 벗는 법이 없다고. 그래도 돈 받고 운동하는 건 역시 좋은 거 아니겠나.

사진제공 이십세기 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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