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객잔]
[전영객잔] 죽은 히치콕이 산 드 팔마를 지배할 때
2007-11-29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히치콕의 <현기증>에 대한 드 팔마의 욕망 드러내는 <블랙 달리아>

문이 열리면 한 사내가 얼굴에 두건을 쓴 채 누군가의 안내를 받아 호화로운 방에 등장한다. 넓은 침대에는 한 여인이 하얀 다리를 드러낸 채 잠들어 있다. 사내가 주춤거리며 침대 곁에 다가가자 여인은 깨어나고, 두 사람은 오랜 연인처럼 서로를 감싼다. 여인이 남자의 두건을 벗기자 어색하게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이상한 얼굴이 드러난다. 여인은 그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블랙 달리아>에서 세 주인공이 보고 있는 영화의 장면이다. 그 영화는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토대로 1928년에 만들어진 폴 레니의 걸작 무성영화 <웃는 남자>(The Man Who Laughs)이다. 영화 속의 이상한 남자는 아버지의 반역죄 때문에 왕에 의해 얼굴에 지울 수 없는 웃음이 형벌로 새겨진 가련한 사내 그윈플레인이며, 그는 지금 눈먼 공주와 사랑에 빠졌다. 그윈플레인의 두건이 벗겨지고 그의 얼굴이 드러날 때,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케이(스칼렛 요한슨)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의 양옆에 앉은 두 사내, 즉 자신의 애인인 형사 리(아론 에크하트)와 그의 동료형사 버키(조시 하트넷)의 손을 한꺼번에 잡고 자신의 무릎으로 모은다.

이 영화 속 영화장면은 <블랙 달리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한 가지 단서가 되지만, 그것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그 서사상의 기능을 뛰어넘어 영화 곳곳에 흘러다니며 다른 이미지들과 만나고 뒤섞이며 불길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왜 케이가 그토록 ‘웃는 남자’를 무서워했는지, 혹은 왜 두 사내의 손을 한꺼번에 잡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죽은 여자’의 이야기, ‘웃는 남자’의 이미지

이것은 ‘죽은 여자’의 이야기다. 1947년 LA에서 실제로 벌어진 스타 지망생 피살사건과 제임스 엘로이의 동명 소설로부터 이야기를 끌어왔지만 <블랙 달리아>는 실로 기괴한 영화다. 회한의 내레이션이 이끌어가는 1940년대 필름누아르풍으로 시작하지만 <선셋대로> <악의 손길> 등의 클래식 필름누아르에 <대부>와 <차이나타운>이 뒤섞인데다 <쥴 앤 짐>의 삼각로맨스가 끼어들고 데이비드 린치적 악몽까지 가담해 영화는 거의 종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좋지만 적극적으로 옹호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너무 엉성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단서들은 종종 뜬금없이 주어지고, 필름누아르에 어울리지 않게 로맨틱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어딘지 밋밋하고, 인물들 특히 리는 별다른 설명없이 앞질러 나가다가 난데없이 죽어버린다. 심지어 잘못 이어붙인 듯한 장면들도 등장하며 상황과 대사가 맞지 않는 대목도 눈에 띈다. 극중의 버키는 “난 현대 회화(modern art)는 몰라”라고 말하지만, 이 영화야말로 이질적인 것들을 한 평면에 얼기설기 배치한 입체파 회화처럼 보인다.

이것은 브라이언 드 팔마에게 있어선 당연하게도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일 것이다. 인용과 짜깁기에 몰두할 때, 그는 표면을 매끄럽게 만드는 일에 종종 무관심했다. 정말 문제는 <블랙 달리아>에선 <드레스드 투 킬> <블로우 아웃> <바디 더블>과는 달리 그 조각들이 서로 웃고 떠들며 빚어내는 일종의 캠프적 활력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 종류의 활력은 창작자와 창작물이 속한 경제적 규모나 문화적 범주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일급스타를 동원한 대작이다. 그 조각들이 너무 크고 값비싸지는 순간 더이상 서로 대화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몇몇 장면들은 아주 근사하다. 군인과 시민간의 집단 패싸움을 담은 첫 시퀀스는 <악의 손길>의 도입부와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드 팔마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던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의 유머와 냉소가 교차하는 유장한 묘사를 상기시키며 영화적 향수를 자극한다. 버키와 리가 잠복근무하는 장면에서 3층짜리 건물을 넘나들며 거의 날아다니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그것만으로 쾌감이 있다. 왕년의 인용과 표절의 대가이긴 했으나, 이젠 어엿한 거장 대접을 받는 67살의 노장이 되어서도 아직도 이런 영화광적인 유희의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많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영화 속 영화의 ‘웃는 남자’의 이미지가 영화 안에서 번져가는 방식에 있다. 그 이미지는 애초에 형벌로서의 웃음이라는 아이러니를 이미 지니고 있지만 인물들에게 제각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이 정신 사나운 영화에 희미하나마 일관된 축으로 기능한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선 번거롭지만 <블랙 달리아>의 인물들간의 복잡한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블랙 달리아>, ‘죽은 여자’에 사로잡힌 네크로필리아

잔가지를 치고 말하면 <블랙 달리아>는 두 가족의 이야기다. 한쪽은 버키와 리, 그리고 케이. 이들은 한 핏줄도 아니고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함께 놀러다니고 함께 밥먹는 유사가족이다. 다른 한쪽은 매들린(힐러리 스왱크)의 가족. 그의 아버지는 부정한 건축사업으로 떼돈을 번 부호 에머트이며, 어머니 라모나와 여동생, 그리고 정체가 불분명한 정원사 조지가 있다. 매우 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가족이 문제다.

매들린은 아버지의 핏줄이 아니라 정원사 조지와 어머니의 불륜으로 태어난 딸이다. 에머트는 그 징벌로 조지의 얼굴을 흉하게 만들었고(‘웃는 남자’의 변형1) 평생 학대하고 짐승처럼 부리면서도 그를 돌본다. 이 가족의 저택은 거의 악몽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거실 입구에는 박제된 개가 신문을 물고 있는데(‘웃는 남자’의 변형2), 그것은 에머트가 떼돈을 번 뉴스가 담긴 신문을 그 개가 물고 오는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죽여서 박제로 만든 것이다. 어머니 라모나는 이미 정상이 아니다.

두 가족 사이에 매들린과 닮은 엘리자베스 숏이 있다. 끔찍한 변사체로 발견되어 언론에 의해 블랙 달리아로 명명된 이 여인은 할리우드 스타 되기를 갈망했으나 돈과 재능이 없어 몸을 팔았고 레즈비언 포르노영화에 출연한 철없고 관능적인 요부였다. 모두 이 여인을 원한다. 리는 이 여인의 사체를 보고 15살 때 죽은 여동생을 떠올리며 이성을 잃어가고, 버키는 이 여인의 오디션 필름을 넋을 잃고 본 뒤 그녀와 닮은 매들린에게 유혹당한다.

매들린 가족쪽은 더 복잡하다. 지나가듯 묘사되지만 에머트는 매들린과 성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이 암시되며 엘리자베스를 데려다 포르노를 제작했음이 드러난다. 조지는 자신의 친딸 매들린과 닮은 엘리자베스에게 반했고. 이를 안 에머트는 그녀를 돈으로 사서 조지에게 보낸다. 두 아버지 모두 딸과 성교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매들린 자신은 엘리자베스의 방탕한 삶을 동경하며 그를 흉내내기 위해 군복 입은 남자와 닥치는 대로 성교하고 엘리자베스와 동성애를 나눈다.

불륜, 근친상간, 동성애가 뒤섞인 난교의 그물망 외곽에 두 여인이 있다. 한 여인은 감금된 창녀였지만 리에 의해 구출된 아름다운 여인 케이. 그녀는 리와 동거하면서 동료 형사 버키를 유혹한다. 다른 한 여인은 매들린의 어머니 라모나. 두 남자를 가까이 두고 있다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두 여인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라모나는 정부인 조지에게 빅토르 위고의 원작과 피에로 ‘웃는 남자’를 닮은 피에로 그림을 선물로 준다. ‘웃는 남자’의 최종본은 라모나가 완성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조지와 밀회 중인 엘리자베스를 죽여서, 입을 귀 아래까지 찢고 박제를 만들듯이 피와 내장을 뽑아버린 것은 라모나이다.

케이는 그 요부적 자질에도 불구하고 두 남자 리와 버키가 죽은 여인의 환영에 빠져들어가고 있음을, 그것이 곧 죽음의 길임을 알고 있다(“죽은 여자한테 홀려 있다가 너도 리처럼 끝장날 거야”). 세 남녀가 영화를 관람하고 있을 때, 버키에게 ‘웃는 남자’는 살인사건의 단서였지만, 케이에게는 본능적으로 예감된 죽음이었다. <블랙 달리아>는 ‘웃는 남자’ 혹은 ‘죽은 여자’에 사로잡힌 네크로필리아의 악몽 같은 것이다.

<현기증>을 닮고 싶은 드 팔마의 욕망

난잡한 참조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블랙 달리아>는 <현기증>의 혈연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현기증>을 다시 쓰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니, 그건 틀린 말이다. 드 팔마는 그만큼 오만하지 않다. 오히려 히치콕과 <현기증> 가계도의 말석에라도 자신의 영화를 필사적으로 기입하려는 것 같다. 그건 <현기증>처럼 네크로필리아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킴 노박의 아찔한 미모가 말 그대로 현기증을 일으키는 <현기증>에 비하면 <블랙 달리아>의 인물들은 그다지 매력이 없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이상한 장면 때문이다.

리가 자신에게 위협이 될 출소자를 죽이러 간 건물에 버키가 뒤쫓아간다. 위층(몇층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다지 높지는 않다)에서 정체불명의 사내가 리의 목을 조르는 모습을 보고 버키는 계단을 뛰어올라간다. 이상한 일은 버키가 필사적으로 뛰고 있는데도(이 장면은 슬로 모션으로 보여진다) 그 층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버키가 간신히 그곳에 도착했을 때, 리와 사내는 함께 떨어져 죽는다. 이 장면은 <현기증>에서, 매들린이 종탑으로 뛰어올라가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스코티가 뒤따라가며 고통스러워하는 유명한 장면의 표절이다. 그런데 <블랙 달리아>의 버키에겐 고소공포증이 없다. 더 이상한 건 버키가 케이에게 “그때 난 꼼짝하지 못했어”라고 사실과 다르게 말하며 흐느낀다는 것이다.

무엇이 버키의 걸음을 느리게 만들었는가. 심지어 그로 하여금 “꼼짝하지 못했다”고 고백하게 하는가. 텍스트 안에는 답이 없다. 그것은 히치콕의 망령이며, <현기증>을 닮고 싶은 드 팔마의 거의 유아적인 욕망이다. 이쯤 되면 숭배를 넘어 히치콕에 대한 네크로필리아라고 할 만한 것이다. 그 집착은 서사의 논리 위에 있다. 제작사에겐 매우 난감한 일이겠지만, 한 사람의 관객으로선 흥미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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