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늘 배용균 감독이 떠오른다. 1989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받은 그는 한국영화에 전무후무한 1인 제작시스템의 감독이었다. 촬영, 조명, 편집, 미술 등을 직접 했던 배용균 감독과 그의 두 번째 영화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을> 개봉 때 서면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가장 인상적인 얘기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후반작업을 하던 때를 술회한 대목이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배용균이라는 감독이 장편영화를 찍어왔는데 코닥 매뉴얼을 줄줄 외면서 현상과정 하나하나에 간섭했고 색보정실에선 연일 고성이 오고 갔다는 이야기가 영화진흥공사에서 전설처럼 떠돌던 차였다. 그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시절 색보정실에서 우리는 주먹이 오고 가지는 않았지만 연일 비명이 새어나왔기 때문에 흡사 난투극이라도 벌였던 느낌이 든다”며 “최초의 35mm프린트를 밤늦게 떠서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 홀로 앉아서 보고는 심하게 충격을 받았다. 이런 걸 하나 만들기 위해 내 삼십대를 몽땅 바쳐왔구나 하는 회한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시사가 끝난 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나로선 배용균 감독의 이 말 자체가 충격이었는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당시 제작된 어떤 영화보다 뛰어난 화질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던 것은 그가 머리에 그리고 있던 이미지와 최종적으로 프린트에 들어 있는 것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던 탓이리라. 어떻게 하면 그 차이를 줄일 수 있을까? 촬영감독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것일 것이다.
내친김에 배용균 감독의 말을 조금 더 인용하자. “촬영과 조명을 빛의 예술로 화가와 비교했지만 커다란 차이점도 있다. 화가는 자신의 손끝에서 표현되고 있는 세계를 매 순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촬영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눈으로 보이는 빛의 세계와 그것이 필름에 담겨 최종적인 현상과정을 거쳐 영사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그 사이에 가로놓인 복잡한 비밀을 알았을 때 그 세계를 지배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손에 쥐게 된다. 촬영과 조명은 흡사 보이지도 않는 원거리의 목표물을 향해 미사일을 쏘아올려 예측한 대로 명중시키는 기술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표현이 그렇듯 기술은 기본적인 요구조건일 뿐이며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회화적 상상력과 창의력, 열정과 집념 그리고 개성이 구비되어야만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촬영감독은 감독의 머리에 있는 세계와 필름이 보여주는 세계 사이를 중재하는 복잡한 비밀을 아는 사람이다. 가끔 감독이 촬영감독을 대할 때 갈구하는 눈빛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떨어진 사람에게 통역자가 절박하듯 생사여탈권을 쥔 존재가 촬영감독이다. 내겐 당신밖에 없어, 라며 아양을 떨어도 이상할 게 없다.
수많은 신인감독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그들의 동료로서 젊은 촬영감독이 늘어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가 다양해지고 기술적으로 발전한 것도 새로운 재능들이 대거 출현한 결과일 것이다. 물론 거꾸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최근 한국영화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여간 나온 좋은 영화들은 수준급 스탭을 만드는 영화학교 노릇을 했다. 이번 특집에 소개하는 촬영감독들도 그런 혜택을 입으며 성장하고 모험심을 키웠을 것이다. 아마 한국영화에 희망이 있다면 그래도 영화계가 호황이던 시절 이런 인력을 많이 키웠다는 데 있는 게 아닐까. 겸손하지만 열정적인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한국영화의 미래에 대해 조금은 안심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