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야쿠시마루 히로코] 변치 않은 소녀 감성
2007-11-29
글 : 정재혁
사진 : 이혜정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속편>의 야쿠시마루 히로코

서른번을 넘게 몰라보다니…. 메가박스일본영화제 폐막작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속편>의 배우 야쿠시마루 히로코가 한국을 찾았다. 야쿠시마루 히로코는 1980년대 일본이 아이돌 전성시대를 맞았을 때 영화 <세라복과 기관총>으로 화려하게 떠오른 스타. 개인적으론 한국을 좋아해 서른번 넘게 여행했다고 하지만 영화배우란 이름으로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 한국에서의 인터뷰도 <씨네21>과의 인터뷰가 처음이다. “한국은 싫은 게 없어요. 마음이 차분해지고, 그냥 아파트 식당가 같은 데서 밥도 먹고 그래요.” 1980년대라면 한국이 일본 대중문화를 철저히 금지하던 때니 지금도 그녀를 기억하는 건 소수의 마니아뿐이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아이돌 스타 야쿠시마루 히로코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녀가 부른 <세라복과 기관총>의 동명 주제곡 싱글 앨범은 86만장이 넘게 팔리며 그해 발매된 싱글 중 판매량 1위를 기록했고, 야쿠시마루는 이후 영화 <탐정이야기> <메인 테마> <W의 비극>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청춘의 우상이 됐다. 그녀는 당시 함께 활동하던 다른 두 아이돌 스타 하라다 도모요, 와타나베 노리코와 ‘가도카와 세 자매’로 불렸는데, 이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대다수 가도카와 영화사의 작품인 까닭도 있지만 당시의 영화들이 야쿠시마루의 청순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위해 호텔 방에 들어선 야쿠시마루는 양쪽 손끝을 위로 올린 채 테이블로 걸어왔다. “아직 매니큐어가 다 마르지 않아” 취한 손동작이라 하지만 단아하고 조심스러운 움직임 속에 아직도 소녀의 감성이 느껴진다. 1964년 여름에 태어나 올해로 44살인 야쿠시마루는 1978년 영화 <야성의 증명>으로 데뷔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진촬영 제의를 받았고, 그 사진이 3차 심사까지 통과하며 얼떨결에 배우가 됐다. “노는 기분이라면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때는 연기할 마음이 없었어요.” 이어 엄격하기로 유명한 소마이 신지 감독을 만나 <꿈꾸는 열다섯> <세라복과 기관총>을 찍었고 <세라복과 기관총>에서는 주제곡도 함께 불러 가수로 데뷔했다. 주로 남성의 세계에 던져진 소녀를 연기하며 남자들의 로망을 부추겼지만, 그녀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노래 부르던 다른 아이돌 스타와 뭔가 달랐다. “당시엔 짧은 치마를 입은 귀여운 가수들이 수두룩했어요. 그런데 내가 노래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연예인의 화려한 세계에 물들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죠.” 미니스커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이돌 스타 야쿠시마루는 영화 <탐정이야기> 주제곡을 부르며 “아티스트 작가 선생님을 만나 노래를 부르는 자세, 진지함”에 대해 배웠고, “혼난 기억밖에 없었던” 현장과 대배우인 다카쿠라 겐(<야성의 증면>)과의 연기를 통해 아이돌 스타의 허상에서 일찌감치 벗어날 수 있었다. “소마이 감독님께는 농담으로 ‘부모님도 절 때리지 않으니 때리지 말아주세요’라고 했어요. (웃음) 현장에서도 매일 혼나고 학교에서도 열등생이니 균형이 맞아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오히려 오냐오냐 했다면 현장이 공포로 느껴졌을 거예요.” 야쿠시마루는 일 때문에 학교를 빠질 수 없다는 조건하에 연기를 시작했고 실제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수업을 빠진 일이 한번도 없다. “학교보다 엄한 직장 현장”에서 아침 6시까지 촬영을 마친 뒤 바로 학교로 향하는 나날이 그녀의 학창 시절이었다.

아이돌 스타의 흔한 후유증이지만 야쿠시마루 히로코도 20대가 되었을 때 연예계에 염증을 느꼈다.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고 싶었달까요? 예전에 극장 이벤트를 하면서 사람이 너무 많이 와 사고가 났었요. 그 이후엔 여행이든 일이든 오사카만 가도 경찰에 신고를 해야 했죠.” 대학 들어가 1시간 반 넘게 전철로 통학하면서도 그녀는 50~70명이 넘는 사람들에 둘러싸이기 십상이었고, 그럴 때마다 홀로 헤쳐나가야 했다. “예전 졸업 작품집을 보면 장래 꿈이 평범한 나날을 보내는 거라고 써 있어요.” 영화 <너스 콜>을 끝으로 그녀는 연기를 그만뒀고, 나이 서른이 넘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시기는 그녀가 안전지대 보컬인 다마키 고지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뒤 다시 헤어진 시점과도 겹친다. 조심스레 당시의 기억을 묻자 “개인적으로 무척 원했고, 충실했던 시간이었어요. 그때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았다면 다시 이 일을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어느새 중년이 된 아이돌 스타는 <철인 28호>, 드라마 <1리터의 눈물> 등에서 어머니가 되었다. 주인공을 보조하는 작은 역할이라 쉽게 단정할 수도 있지만 아직도 여전한 봉긋한 앵두입술과 맑은 웃음소리는 세월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특히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속편>에서 야쿠시마루는 여자와 어머니의 경계를 지혜롭게 풀어가는 토모에를 연기했다. 전형적인 모성 안에 싸여 있지만 시대의 역경을 감싸고 있는 듯한 너그러움이 영화의 애틋한 향수와 자연스레 어울린다. 야쿠시마루 히로코는 2006년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으로 일본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그해 <NHK> 음악프로그램 <음악 꿈 클럽>에 나와 자신의 히트곡 <세라복과 기관총> <탐정이야기>를 불렀다. “이 직업이란 게 누군가가 바라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 같아요.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민이 있었고, 지금도 불안함을 갖고 있지만 연기도, 노래도 계속 하고 싶어요. 30년 넘게 관객이 절 지켜봐준다는 건 저에게 기적이에요.” 야쿠시마루 히로코는 올해 <버블에 고!! 타임머신은 드럼식>과 단 한 장면뿐이긴 하지만 <안경>에도 출연했다. 아이돌 스타의 여전한 아름다움, 그녀의 빛은 우리에게도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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