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류덕환] 소년은 머물지 않는다
2007-12-06
글 : 주성철
사진 : 오계옥
<우리동네>의 류덕환

류덕환이 완전히 변했다. 전작 <아들>에서 아버지 차승원을 보고 ‘살인자의 얼굴’이라며 꺼려하던 그가 살인자가 된 것이다. <우리동네>에서 류덕환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 연쇄살인범을 모방해 시체를 처리한 경주(오만석)를 추적하는, 진짜 연쇄살인범 ‘효이’를 연기했다. <웰컴 투 동막골>과 <아들>을 통해 언제나 ‘학생’ 혹은 ‘동생’ 같은 느낌을 줬던 류덕환에게 이번 <우리동네>는 이른바 ‘180도 변신’이라는 식상한 표현도 딱히 틀리지 않다. 그가 이 같은 변신을 하게 된 데는 ‘어느 시상식장에서 류덕환의 얼굴에 깃든 서늘함을 봤다’는 정길영 감독의 순간적인 인상 때문이었다. 그 인상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류덕환은 촬영 내내 칼과 친해지기 위해 머리맡에도 칼을 두고 잤다. 그것은 영화에서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연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전까지 자신의 고정된 모습을 지우고 없애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배우가 변신을 꾀할 때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 사이코패스로 변신한 류덕환을 향해 으레 따라붙는 말은 ‘성인 신고식’이라는 표현이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아역’의 인상과 느낌이 강했던 그였기에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류덕환은 그런 표현이 썩 달갑지는 않다. “사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 좀 거슬려요. 그럼 나중에 내가 베드신을 하게 되면 또 어떤 얘기들을 할지. (웃음) 권상우 선배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교복을 입고 연기했다고 해서 청소년 연기를 했다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그냥 차근차근 성장해가는 배우로 봐줬으면 해요.” 그렇게 류덕환은 자신을 구분해서 정의하려는 시선들, 여전히 ‘아역’이라는 이름으로 가둬두려는 고정관념이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를 향한 관심은 한국 영화계에서,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진화해간 배우들의 리스트가 빈약해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어린 나이에 묘한 의무감을 등에 업은 배우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사이코패스를 연기한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경쟁을 유발하는 일이다. 올해 충무로만 해도 <검은집>의 황정민이 사이코패스를 연기했고, 할리우드영화들로 범위를 넓히면 참고하고 비교할 만한 수많은 사이코패스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류덕환 역시 도움이 될 만한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영화들의 DVD를 잔뜩 구해 쌓아다놓았지만 어느 순간 보다가 멈춰버렸다. 그걸 모방하건 따라하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저 상상의 그림만 그리기로 했다. <우리동네>의 효이는 갑자기 울다가 웃기도 하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폭발시키는 인물이다. 살인을 전혀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와 반대로 극도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이코패스다. 류덕환은 효이가 천재적인 살인마가 아니라 ‘완성되지 않은 사이코패스’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켰다. 그런 와중에 오히려 도움을 준 영화는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었다. “조니 뎁으로부터 치료를 받는 난쟁이를 보면서 뭔가 찌릿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우리동네>를 준비하던 중이라 평범한 장면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 것이겠죠. 혼자서 얘기하고 답하는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조금 다른 모습의 사이코패스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할이 역할이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동네>를 끝내고서도 효이로부터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스스로 말하길 ‘번지점프 좋아하고, 놀이기구 전혀 안 무섭고, 공포영화 혼자 보는 게 가장 좋은’ 사람이지만 섬뜩한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살인신이 너무 힘들었어요. 심지어 꿈에서 상대배우를 진짜로 죽이는 꿈을 꿨어요. 게다가 그분이 한참 동안 안 일어나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진짜 죽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싹했어요. (웃음)” 촬영 내내 공포에 시달렸던 만큼 <우리동네>는 지금껏 정서적 스트레스가 가장 큰 작품이었다. 게다가 영화에서 애완견이자 그의 상대역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개 ‘쏘냐’와 함께했던 고충도 빼놓을 수 없다. “개랑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은데 너무 말을 듣지 않는 거예요. 개가 보통 약해 보이는 상대는 무시한다는데 일어서면 나보다 큰 개라 그랬나봐요. (웃음)”

류덕환은 <우리동네>를 끝으로 당분간 영화는 쉴 생각이다. 뭐 오래 쉴 생각은 아니지만 어쨌건 현재로서는 제의가 들어온 작품들을 모두 미뤄둔 상태다. 당분간 학업에만 전념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천하장사 마돈나> 당시 연기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심각하게 고전했던 그로서는 <우리동네>는 휴학을 하고 출연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당분간은 성실한 학생이 될 생각이다.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동갑내기 대학생 문근영과도 언제나 학교 얘기를 많이 한단다. 그래서 지난주엔 동기들과 함께 연습한 연극 <버지니아 그레이의 초상>도 무대에 올렸다. “여자 유령 4명이 등장하는 연극인데 그걸 남자 유령으로 바꿨고요. 10분 정도 출연하는 ‘유령4’를 연기했어요. 일종의 부조리극인데 장진 감독님의 블랙코미디에 익숙하다보니까 즐겁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당분간 그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류덕환은 그렇게 건강하고 밝은 연기자로 성큼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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