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가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별을 달길 원하셨어. 난, 박정희 정권이 3선개헌안과 국민투표법안을 국회에서 변칙 통과시키며 장기집권체제를 연장한 1969년에 태어났지. 베트남전이 한창이었고,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명화 <내일을 향해 쏴라>가 개봉한 해였어. 군인들이 세상을 주름잡던 해에 나를 낳으셔서 그랬나, 아무튼 아버진 내가 별을 달고 세상을 주름잡는 걸 보고 싶어하셨어. 그리고 술만 드시면 박정희 대통령이 해줬다는 친필 사인을 내게 보여주시며 날 협박하셨지.
그런데 난 아버지의 꿈을 묵살하고 비행이라면 둘째가라도 서러워할 만큼 비행청소년으로 성장했어. 학교는 야간이었고, 가출은 기본이었고, 학교 폭력이 일어나면 언제나 그 중심에 내가 있었어. 고등학생 시절 난 제법 싸움을 했었어. 허풍 좀 섞어서, 학교 주변에 있는 학교까지 온통 소문이 났었지. 그때 내가 싸움을 더 잘하기 위해 심취했던 게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영화였어.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홍콩 액션영화에 완전히 빠져 있었지. 이소룡을 관통하고 성룡을 추앙하던 난 그들을 이겨보기로 결심했어. 그리고 쿵후를 시작했지. 난 권법도 꽤 하고 쌍절곤, 창술, 도술, 봉술 같은 십팔병기도 잘 다뤘어. 한마디로 고수였지. 허풍 좀 섞어서 이소룡보다 발차기가 빨랐으며 성룡보다 무기를 잘 다뤘지.
그러던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가 교실로 날 찾아왔어. 학교 끝나고 한판 붙는데 같이 가달라는 거였지. 친구와 난 결투 장소인 성균관대학교 소나무 숲으로 나갔어. 열두명이 나와 있더군. 무지 맞았어. 쿵후도 소용없었고 이소룡보다 빠른 발차기도 소용없었어. 그냥 무지 맞았어. 정확히 열두명한테! 그리고 그날 밤, 미아삼거리에 있던 대지극장이라는 개봉관에서 날 무지 맞을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준 그 친구와 영화를 봤어. <영웅본색>! 이소룡과 성룡에게 미쳐 있던 내게 주윤발과 장국영, 적룡은 생소한 이름이었어. 극장 안에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지. 난 바짝 긴장한 채 어떤 발차기가 나올까, 어떤 액션이 나올까 잔뜩 기대하고 있었어. 그러나 이소룡을 능가하는 어떠한 발차기도 나오지 않았어. 그냥 총으로 한방 쏘면 끝이었어. 그렇다고 성룡 영화처럼 웃기지도 않았어. 총알이 다 떨어지면 싸움 액션이 나올 거야… 멋진 발차기가 나올 거야… 그런데 아니었어. 그걸로 끝이었어. 그때까지 그런 홍콩영화는 없었어. 애들 말처럼 “아무리 무술을 잘하고 싸움을 잘해도 총으로 한방 쏘면 끝이잖아”, 그 격이었어. 난 중간에 일어났어.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누고 집에 갈 심산이었지. 그런데 화장실 거울 속에 엄청나게 얻어터진 주윤발이 서 있는 거야. 자세히 보니 그건 주윤발이 아니라 의리를 찾다 엄청나게 얻어터진 내 얼굴이었어. 그 다음날부터 난 나와 내 친구의 복수를 하기 시작했어. 한놈씩, 두놈씩 찾아다니며 응징을 시작했지.
그렇게 열두놈을 모두 응징한 나는 어떤 마력에 이끌려 다시 극장을 찾았어. 그렇게 난 개봉관과 동시상영극장을 오가며 <영웅본색>이 간판을 내릴 때까지 아주 닳고 닳도록 그 영화를 봤어.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네놈이었는데 바바리를 입고 극장에 오는 놈들이 하나둘 늘어갔지. 물론 나도 바바리코트를 사 입었어. 아니, 솔직히 뺏어 입었지. <게임의 법칙>에서 극중, 박중훈이 <스카페이스>에 나오는 알 파치노의 대사를 따라하듯 극장 안에선 내가 바로 주윤발이었어.
그날 이후, 바바리를 입은 네놈이 구창모의 <희나리>를 부르면서 대학로를 누비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어. 그렇게 <영웅본색>에 빠져 학창 시절을 보내던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사회로 흩어졌지.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한놈은 수유리 참치집에서 참치를 썰고 있고, 또 한놈은 포천에 있는 이동갈빗집 주방에서 갈비를 썰고 있고, 나를 된통 맞게 자리를 주선한 그놈은 쌍문동 운전면허학원에서 운전을 가르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살고 있지. 물론 난 아버지 소원대로 별을 달고 살고 있어, 영화를 만들 때마다 남들이 달아주는 거고, 그것도 이번엔 두개 반밖에 못 달았지만…. 아무튼 갑자기 그 시절 좔좔 외던 <영웅본색>의 엔딩곡 가사가 머리를 스치는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내 냉혹한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말야….
어두운 밤 지나고 해가 떠오르면, 감독들의 모습은 새벽안개 속에 사라져버렸네. 감독되어 무엇이 보람이었나. 영화 위해 목숨 버리는 것이 나의 갈 길이었네. 먼 훗날 내 묘지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말해주겠네. 사나이 죽는 보람은 오직 영화 때문이라고. 감독된 보람이 무엇이었나. 영화로운 죽음 그것뿐이네. 이젠 쉬어야겠네. 차가운 묘지에 누어 산 자를 생각하리.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