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그들은 ‘우리 동네’에 사는 이웃이 아니다
2007-12-13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스릴러와 드라마의 갈림길에서 길 잃은 <우리동네>

(*스포일러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동네>는 연쇄살인의 범인이 누구인지 추적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의 행적을 따라가는 전형적인 스릴러물과는 애초에 다른 길을 택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미 4건의 살인이 벌어졌고, 그 뒤에 경주의 우발적인 살인이 벌어진다. 경주는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희생자를 연쇄살인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게 된다. 연쇄살인의 범인인 효이는 경주가 살인자임을 금방 알게 되고, 경주의 친구인 재신은 이번 사건이 모방범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동네>는 철저하게 ‘우리 동네’에서 모든 것을 말한다. 경주와 효이 그리고 재신은 모두 같은 동네에 있을 뿐 아니라 죽마고우이며 스승이고 또한 적이다. 경주가 모방범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오래전 경주가 저지른 살인을 효이가 따라한 것이다. 경주의 살인은, 재신의 우발적인 과실치사에 이유가 있다. 그들은 모두 사람을 죽였고, 그에 따른 대가를 결국은 치르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 모두가 서로를 위해 선의의 손을 내밀고, 그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그들은 모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것이다. 아니 ‘우리 동네’에서 수십년의 세월을 함께하다보면,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단지 동네 집값이 떨어진다며 호들갑을 떠는 것보다는 서로 따귀를 때리며 한번쯤은 붙어보고 화해하는 것이 낫다. 함께 죽던가.

‘스릴러’라고 하기엔 너무 멀리 나가다

<우리동네>가 애초에 다른 길을 택한 것은 좋다. 그리고 동시에 스릴러의 길도 포기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우리동네>는 할리우드고 뭐고 따질 것 없이 스릴러와는 거리가 먼 영화다. 그냥 효이와 경주의 마음만을 파고드는 드라마였다면 회생할 길은 충분히 있었다. 아니 <우리동네>의 본질은 스릴러가 아니라 작은 동네의 관계성을 추적하는 드라마다. 그러나 <우리동네>는 오리무중의 길로 스스로 빠져 들어간다. <우리동네>의 중심은 효이의 살인으로 변질된다.

그는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심지어 자신이 기르는 개조차 무참하게 죽여버릴 정도로 사악한 그는, 어째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 효이는 사채업자인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그 충격으로 모든 인간관계나 감정에서 단절된 채 살아왔다. 성인이 되어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실연을 당한 효이는 그 충격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가 보았던, 경주가 어머니를 죽인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여기까지는 이상할 게 없다. 일반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경주와 효이의 관계는 그것만이 아니다. 효이는 경주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그를 따라서 동네에 왔다는 등의 말을 한다. 에필로그에는 괴롭힘을 당하던 어린 효이를, 경주가 몇번이나 구해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효이에게 경주는 어떤 존재였을까? 다정하면서도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존재? 아니면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자신도 능히 감싸줄 수 있는 이중적인 존재? 하지만 어느 쪽이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효이의 마음에는 하나가 빠져 있다. 효이는 단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무참하게 죽이려는 마음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을 모두 없애려는 유치한 마음밖에는 없다. 그것은 경주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경주는 결코 ‘명분없는’ 살인자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명분이 확실한 살인자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하류계급이, 그들의 최소한의 행복조차 빼앗으려는 자들에게 가하는 대항적인 폭력인 것이다. 사채업자는 아버지의 공장을 뺏었고, 집주인은 행복한 시절을 담은 경주의 가족사진을 부수고 짓밟았다. 경주에게는 명분이 있다. 명분이 없는 것은, 경주에게 무엇인가를 배운 효이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을 때, 경주의 방식을 따라하고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은 그저 변명일 뿐이다.

그들은 특수한 인물들, 설득력이 부족하다

사실 스릴러라는 외피로만 본다면 <우리동네>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효이가 희생자를 묶어놓은 것을 보았을 때, 왜 경주는 자신의 살인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왜 경주는 희생자들을 그런 방식으로 묶어놓은 것일까? 단지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효이는 자신의 살인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싶은 극장형 살인자였을까? 아니면 단지 경주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소설가인 경주가 집주인을 죽이는 장면을 쓴 소설을 보고, 어떻게 재신은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무엇을 쓴 것도 아니고 단지 상황만인데. 효이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재신은 혼자 행동하는 것일까? 심지어 동료를 둘이나 죽인 위험한 인물인데도.

<우리동네>는 수많은 의문을 건너뛰면서 진행된다. 하지만 그것은 장르적인 논리이기 때문에 넘어가줄 수도 있다. <우리동네>의 진짜 문제는, 그들 모두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우리의 이웃이라는 점이 크게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특수한 상황에 처한, 특이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특수함을 설득하려면 그들의 내면이 더욱 드러났어야 한다. 하지만 스릴러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복잡한 설정으로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그럴 여력이 없었다. 결국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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